“정치인은 사회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2007.06.05 21:06:06

젊은 나이에 3선의 관록을 갖고 있는 김영선 의원은 스스로를 사회디자이너라고 한다. 정치인은 사회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있는가?
‘국회의원 김영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두가지 정도다. 하나는 최연소 여성 야당대표이고 또 하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터줏대감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출신도 힘들어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현재 위원들 중 가장 오랜 기간인 6년째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 의원의 정치적인 비전이 담겨 있다.
15대 의정활동을 마치고 2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김 의원은 소위 ‘눈이 크게 열리는’ 경험을 했다.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원동력을 본 것이다. 그 원동력은 바로 최첨단 선진기술이었던 것. 우리나라의 갈 길도 이것이라고 생각했고, 비례대표로 다시 의정활동을 시작하면서 곧바로 과기정통위에 자청했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국회 과기정통위원회 터줏대감
김 의원은 보수세력이란 구질서를 수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성장시키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는 정치세력이라고 생각한다. 분배도 고려하지만 그래도 성장을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성숙된 사회, 이것이 바로 김영선 의원이 추구하는 한국의 미래이다. 이러한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첨단과학기술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창조적이고 창의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고 이러한 첨단기술을 토대로 고급경제시스템을 만들며 국제적으로도 국력에 걸맞는 활동을 하는 것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개방과 경쟁을 도입하고, 고급일자리를 충분히 만들며 다양한 투자기법을 발전시켜 국민의 부를 증대시키는 정책을 개발하고 실시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경쟁에서 밀려난 사회약자층에게는 사회가 다시 재도약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원대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과기정통위원회에서 붙박이로 있는 것이다.
최연소 여성 야당 대표가 한나라당과 국민에게 전한 메시지
지난해 6월. 대선출마를 위해 대표직을 물러나는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전당대회 때까지 27일간의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었다. “27일이면 충분한 기간이다. 이 기간이면 한나라당이 뭘 해야 하는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고, 새로운 방향을 한나라당원과 국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라고 심중의 생각을 말했던 김 의원은 취임사에서 본인의 정치적 포부를 밝혔다.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서 김 의원은 한나라당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을 이끌고 고급경제에서 나오는 고급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어 내도록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꾸려지는 당 지도부들 역시 한국경제를 선진경제로 나아가도록 ‘땀흘리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할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기업인들, 여성과학자들, 여성CEO들을 만날 때마다 역설했다.
김 의원은 우리 사회를 따뜻한 사회로도 만들려고 한다. 이것이 두 번째 디자인 계획이다.
당대표 시절. 사회적인 약자들의 어려움을 듣고 함께하는 행보를 폭풍처럼 몰아쳐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치매병원, 일본군 위안부들, 성매매 피해자들, 미혼모들, 탈북자대표들을 만났으며 대학생들에게 창업과 경제경영을 가르치기 위한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또한 휴일에는 전북 고창의 복분자 밭에까지 찾아가 민생 속에 직접 들어가서 살펴보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짧은 대표임기기간이었지만 그는 특유의 경쾌하면서도 따뜻한 정치를 보여주려 애썼으며, 삶의 사각지대나 오랜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아직 해결점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가 정책적 조력을 주고자 노력했다.
김 의원은 “정치의 가장 큰 역할은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면서 미래를 이끌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이고 다른 말로 사회를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자신의 소명을 설명했다.
이러한 김 의원의 비전과 열정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가 살아온 길을 되짚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될 것이다.
광(光)나는 일보다는 내가 필요한 곳에 간다
김 의원은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설부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서울로 전근하면서 중학교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아버지 혼자 벌어서 우리 여섯 식구와 할머니, 삼촌, 사촌, 육촌들 다 합쳐 늘 12명 정도가 함께 살았으니 빠듯했죠.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기라곤 제삿날 정도만 먹었으니까요. 가족이 많다보니 웬만큼 큰일이 일어나도 가뿐히 넘어갈 정도로 트레이닝이 되었어요”라며 씩씩하게 웃는 김 의원은 자신의 성격을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의 주인공 하니 스타일이라고 했다.
1981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면서 사회과학서적을 공부하기도 하다가 28세인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변호사 개업한 뒤에는 소비자문제 및 공정거래연구회 간사, 경실련 시민입법위원회, 참여연대 공익소송센터 실행위원, 녹색소비자연대 이사, ‘아름다운 가게’ 협동이사 등의 시민단체활동을 활발히 했다. 당시 의식있는 변호사들이 노동문제에 관심을 두던 것과는 거리가 있는 선택이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나가기 시작한 거죠. 이미 성공해서 안착된 데는 다들 돕는데, 알려지지 않은데는 안 도와주니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도와보자. 그래서 나간 거죠”라고 했다.
“실생활과 연관된 법이 뭔가 찾아보니 공정거래법, 독과점거래법, 소비자보호법 등이더군요” 김 의원은 경실련이나 참여연대가 유명하지 않았던 그때부터 일찍이 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일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정치에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이런 활발한 시민운동을 하던 중에 정계로부터 입당 제안을 받았고, 법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정치적인 활동이 개혁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열정과 헌신 그리고 끊임없는 배움, 이러한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영선 의원의 사회디자인 정치 열정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줄지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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