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된 역사의 고통 ‘소리굽쇠’

2014.11.19 11:18:08

해방 이후에도 돌아올 수 없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비극

해방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중국 거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최초의 극 영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첫 극 영화
일제강점기 방직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거짓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간 소녀 귀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해방이 됐지만,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귀임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채 조선족 할머니가 됐다. 70년간 중국 땅에서 통한의 삶을 살아온 귀임 할머니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손녀 향옥이다.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된 손녀 향옥이 할머니를 고향 땅에 모셔오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떠난 후, 귀임 할머니는 홀로 중국에 남아 손녀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린다.
영화 ‘소리굽쇠’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해방이 됐지만,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했던 할머니의 아물지 않은 상처와 근 현대기를 거쳐 대물림되는 고통을 담아냈다. 한쪽을 울리면, 다른 한쪽도 똑같은 음을 내며 공명하는 음향 측정 기구를 ‘소리굽쇠’라고 부른다. 이 영화의 제목은 70여 년의 세월을 초월해 역사적 비극의 고통이 대물림된 현재의 아픔과 공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작진은 결코 지나간 역사가 아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적 아픔을 보다 많은 대중과 나누고자 다큐가 아닌 극영화이 형식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전 세계인이 아픔을 공유하는 역사적 비극임에도, 그간 대한민국에서 탄생된 위안부 관련 영화는 10편이 채 되지 않으며, 이 또한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장르에 국한돼 있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벌어진 또 하나의 아픈 역사인 ‘홀로코스트’ 관련 소재의 영화가 1,000여 편에 달한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부끄러운 수치임에 틀림없다. 또한 지난 2012년, 고교 동아리 ‘위안부 문제 연구회’가 전국 5개 지역의 고교생 53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위안부 문제 의식조사에 따르면, 86%(464명)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잘 알지 못한다’고 응답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보다 많은 대중의 환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문화계 전반에 작은 움직임이 지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올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한 국내 최초의 창작뮤지컬 ‘꽃신’이 막을 올려, 2014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어워즈에서 창작뮤지컬상을 수상했으며, 연극 ‘봉선화’, 만화 기획전 ‘지지 않는 꽃’ 등이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재능 기부 및 기금으로 탄생, 중국과 합작
영화는 배우 조안, 김민상, 이옥희를 비롯한 전 출연진, 제작진의 재능기부와 펀딩을 통한 이름 모를 개인 후원자들의 응원과 지지 속에 탄생됐다. 그 첫 번째 주자는 조사관 역할로 깜짝 출연하기도 한 배우 겸 감독 추상록이다. 극 영화화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뜻 깊은 일이라 생각해 선뜻 참여하게 됐다고 전한 추상록 감독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비극이 가져다 준 아픔을 지닌 모든 분들께 헌정하는 마음으로 연출에 임했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손녀 향옥 역할을 맡은 배우 조안 또한 재능기부로 참여할 수 있어서 오히려 영광이라는 소감을 전해왔으며, 향옥의 든든한 지원군인 덕수 역할의 배우 김민상은 첫 미팅 당시 제작진의 따뜻한 기운과 진정성 어린 제작 취지에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 외에도 중국 거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귀임 할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 이옥희를 비롯해, 배우 이율, 노영학, 조영진, 지대한 등이 재능기부로 선뜻 출연의사를 밝혀왔으며, 뮤지션 하림, 한희정이 음악 재능기부로 후원 행렬에 동참했다.
‘소리굽쇠’는 중국과의 합작으로 탄생된 작품이며, 전체 촬영 분 중 60% 가량이 중국 로케이션으로 촬영됐다. 중국 북경에서 차로 3시간 이상 떨어진 오지 중의 오지 ‘평곡’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평곡’은 실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항일격전지였던 곳으로, 그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또한 극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기 위해, 1930~40년대 일본군이 사용했던 막사용 민가가 그대로 보존된 장소를 섭외하여 촬영이 이루어졌다. 수은주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 속에서 난방조차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배우를 비롯한 전 제작진의 뜨거운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한편, 중국의 국가 1급 배우이자 실제 조선족인 배우 이옥희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역할을 맡아 한층 극의 무게감을 더해주었으며, 배우 조안의 연변 사투리 특훈을 도맡기도 했다.

정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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