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2007.07.27 11:07:07

‘인간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올릴 때마다 이 말이 떠오르는 것은 나의 불효가 막심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다섯 번에 걸쳐 아버님께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질렀다. 모두 나와 우리시대의 역사에 대한 진지함에서 불거진 것이었다.
첫 번째 불효는 사춘기 시절. 필자는 어떻게 살고 죽느냐와 인격을 닦아나가는 길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씨름하다가 마침내 출가(出家)를 결정했다. 이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서울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행동거지가 의젓해서 너의 생활에 대해서는 일체 간섭이나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너를 믿어서다. 그런데 네가 나와의 인연을 끊고 ‘중’이 되겠다는 게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너는 내 아들이고, 한산이씨 집안의 자손이다. 그건 변함이 없다. 더 심사숙고해봐라. 절에 가야만 인격을 닦는 건 아니다….” 그러시면서 아버지는 우셨다.
철이 없었던 나는 절에 가서야 비로소 중생과 더불어 씨름하고 단련돼야 더 큰 깨달음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 번째 불효는 71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장기집권 기도를 저지하기 위한 학원병영화 반대와 부정부패규탄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학교에서 제적됐다. 갑자기 신체검사도 없이 전국의 학생운동 주동자 180여명과 함께 강제입영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대전병무청까지 오셔서 병무청 차에 오르는 나를 붙잡고, “남자는 강해야 한다. 몸조심해라” 하시면서 눈물을 보이시며 돌아서셨다. 그 쓸쓸한 등을 바라보면서 필자는 논산훈련소로 향했다.
세 번째는 75년. 서울대 5·22데모사건에 친구 고 채광석(시인)군이 수배를 당하고 그와 가까웠던 필자까지 쫓기게 되면서 그 불똥이 엉뚱하게도 당시에 보령군 미산면 면장을 하고 계셨던 아버지에게 떨어졌다.
고 채광석군의 부친도 태안군에서 면장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졸지에 의원면직을 같이 당했다. 50대 초반에 갑자기 실업자가 되고, 당시에 300만원 정도의 퇴직금을 받고 힘이 쭉 빠진 아버지를 차마 상면할 수 없었다.
네 번째는 81년. 전두환 군사정권의 서슬퍼런 군화발소리가 요란하던 때에 집안의 장남이 반국단체의 수괴로 구속된 것이다. 엊그제까지 친구였던 지역의 유지들이 ‘역적질한 놈을 아들로 둔 아비’로 몰고 두려운 시선으로 피하거나 앞뒤집 사람들이 밤낮으로 집안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것이었다.
2달 정도 행방을 알지 못해 애를 태우시던 아버지는 2달 동안 고문을 받고 만신창이가 되어 구치소에 수감돼있는 자식을 만나러 면회실에 오셨다. 재판을 앞두고서였다.
그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몸은 괜찮냐?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몸이 많이 상했을테니 잘 건사하거라.” 이번에는 거꾸로 감방으로 돌아와 필자는 혼자 울었다. 까막소를 나와서는 10여년 소외된 이들의 권익을 옹호한다고 전국을 뛰어다니느라고 아버님을 모시고 편안한 여행 한번 같이 다니지 못했다. 2001년도에야 비로소 산음휴양림에 모시고 갔더니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었다. 필자는 속으로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주소서, 국민의 고통을 껴안고 사느라 아버님의 늙으시는 것을 돌보지 못했다고…’.
다섯 번째 자식을 낳지 못하고 있다. 집안 제사는 물론, 한산이씨 대소사를 책임지셨던 분이시라 장남의 자식을 기다리셨을 터인데, 한번도 ‘자식’ 문제를 거론하지 않으셨다. 묵묵히 기다리셨다. 결국 눈을 감기 전에 소원을 안겨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1년 전부터 몸져 누워계셨는데, 필자에게도 제일 어려웠던 시기라 맘 편히 모시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면 필자는 아버님의 인생 내내 조국과 역사를 껴안고 사는 큰 아들로 인해 세상에서 겪는 가장 몹쓸 고생만 하시고 돌아가신 것 같다. 곧 1주기가 돌아온다. “오호! 불효막심한 자식을 부디 용서하시고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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