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살인사건 (제17회)

2007.09.13 13:09:09

지욱은 외면했다. 방용철의 존재가 나타나면서부터 지욱은 말할 수 없는 불쾌감으로 차 있었다. 중매인 백사장이 방용철과 잘 안다는 사실도 역시 불쾌한 일이었다.
우형빈은 지욱을 위로하고 돌아갔다.
서서히 밤이 오고 있었다. 지욱은 밤이 무엇보다도 싫었다. 경미의 체취가 배인 침대나 화장품들을 보고 있으면 미칠 것 같았다. 아직도 경미가 쓰던 일용품들은 그대로 있었다. 그 많은 옷들, 그리고 구두들. 지욱은 결혼한 후 밤마다 경미와 불태웠던 뜨거운 순간들이 자꾸 떠올라 계속 양주병만 비워내고 있었다.
밤이 깊었다. 아마 10시쯤 됐을 것이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세요.”
지욱은 별 생각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 나예요.”
지욱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경미의 목소리가 아닌가.
“아, 아니 당신 경미 아니야?”
“여보, 미안해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하기 때문에 집을 나온 거예요.”
경미는 흐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이 집을 나갈 이유가 없잖아? 당신 어디 있는지 얘기만 해. 당장 뛰어갈 테니까.”
“오지 마세요. 난 아주 멀리 있어요. 미안해요.”
그리고 전화는 덜컥 끊어졌다.
“이봐 경미. 경미!”
지욱은 후크를 마구 두들겼으나 한 번 끊어진 전화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다. 지욱은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니, 어디 가십니까?”
박서방이 물었으나 지욱은 대답도 없이 대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밖은 어둠 뿐이었다. 골목을 미친듯이 뛰어나온 지욱은 근처에 서 있는 텅빈 공중전화를 보고 멍청히 서 버렸다. 어째서 경미가 그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했다고 생각했을까? 지욱은 기운이 쭉 빠졌다.
“경미! 경미이...”
지욱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입에서 억눌린 듯이 오열이 새어나왔다.
이튿날 우형빈이 그 소식을 듣고 지욱을 찾아왔다. 조형사도 함께였다.
“전화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어. 조형사 그걸 달라구.”
조형사가 들고온 녹음장치를 전화기에 부착했다.
“녹음장친가?”
“또 전화가 걸려 올거야.”
“그럴까?”
우형빈을 보는 지욱의 눈이 자신을 잃고 있었다.
“전화내용을 다시 얘기해 보게.”
“아낸 뭔가 잔뜩 억눌린 음성이었어. 우는 것 같기도 했고.”
“흠.”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종잡을 수가 없어.”
“사랑하기 때문에 집을 나갔다...?”
우형빈이 지욱이가 들려준 그 말을 다시 되뇌었다.
“그건 말이 안돼. 어떤 자가 강제로 시켰을 거야.”
“그리고 아주 먼 곳에 있다구? 먼 곳이라...”
“먼 곳이 아니야. 전화는 아주 가깝게 들렸어.”
전화벨이 울렸다. 두 사람은 동시에 긴장했다.
“조형사, 준비됐나?”
“네, 연결됐습니다.”
“좋아, 받으라구.”
지욱은 우형빈의 눈짓을 받고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그러나 그것은 아내의 음성이 아니라 굵직한 사내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나 방용철입니다.”
“아, 지금 어디 있소?”
“놈의 뒤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범인이 잡힐 것 같아요. 아주 유일한 단서를 잡았습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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