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군 DJ에 등돌린 민주당

2007.09.13 13:09:09

“전라도민은 선생의 호주머니에 든 밤알들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겨냥한 90년대 정계의 거물, 박찬종 전 의원의 ‘훈수’다. 민주당이 DJ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어르고 빰치는 정도도 아니다. 대놓고 “현실정치에 너무 깊게 관여하고 있다”라며 김 전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3김시대’ 이후 국민의 정부를 이끌고 동교동 사저에 앉은 지금도 ‘김대중 파워’는 여전하다. 하지만 권불십년, 누수현상이 일어나 듯 그의 텃밭이자 자신이 만들어 놓은 민주당에서 부터 ‘김대중 색채 지우기’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위기라면 위기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 그의 정치인생에 있어 더 이룰 것도 없고, 전라도민이 바라는 것도 드물다. 그저 고향에 내려가면 “우리선생님” 정도. 신세대들에게 있어 DJ는 전직 대통령으로 동교동에 살고 있다는 인식수준에 머물러 있다.
‘주군으로 모셨더니...’
민주당이 DJ를 과거 주군으로 모신데는 호남에서의 막강한 ‘선생님 파워’ 때문이었다. 할말이 있어도 침묵으로 일관했고, 동교동 문턱이 닳도록 좇아 다녔다. 하지만 8월말 박상천 민주당 대표의 태도는 달랐다.
그는 지난달 28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민주당이 정통성을 잃어버렸다’는 취지의 김 전 대통령 발언과 관련, “조순형 의원을 지목해 한 것 같다”면서 “남북정상회담 찬성을 전제로, 시기와 장소의 문제점을 비판한 것이다. 이것은 있을 수 있는 비판 아니냐. 그것을 가지고 민주당의 정통성에 어긋난다고 보신 것은 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 배경에 대해 “이 말씀이 열린우리당 전직 지도자들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나온 것으로 봐선 민주신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 대표는 이어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무조건 통합하려고 했던 방침은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의 국정실패에 대해 얼마나 분노하고 있고, 불신하고 있는지를 잘못 파악한 것 같다”면서 “정계를 은퇴하신 몸이라 옛날같이 다양한 채널로 정보를 받지 못해 정보부족에 기인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김 전 대통령이 조병옥 장면 같은 민주당의 지도자들의 뒤를 이은 위대한 지도자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김 전 대통령은 지금 현실 정치인이 아니다. 정계를 은퇴한 분이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의 말씀에 의해서 현실정치가 추진되고 방향을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에 대해 평가절하했다.
앞서 같은달 27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DJ의 대선개입 발언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국민의 정부 초기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경재 최고위원은 “햇볕정책의 기안자(민주당)가 문제를 제기한 것을 가지고 큰 위기가 난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며 DJ를 에둘러 비판했고, 손봉숙 최고위원도 “마치 민주당이 남북관계에 대해 정통성이 없는 것 같이 정체성을 문제 삼았는데, 한 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 전직 대통령께서 직접적인 언급을 하는 것은 아주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질책했다.
이상열 정책위의장은 “마치 민주당이 대통합신당에 합류하지 않는 것이 매우 잘못된 것인양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면서 “전직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민주신당을 비호하는 말을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민주당도 김 전 대통령의 부적절한 이야기나 발언에 대해선 분명하게 짚을 것은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사자인 조순형 의원은 “(DJ가) 현실 정치에 너무 개입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자제해야 한다. 체통을 지켜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당이 이토록 DJ를 치고 나선데는 이유가 있다. 김 전 대통령은 8월 23일 동교동 사저에서 정세균 전 의장 등 전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민주당의 정책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남북관계에선 화해협력과 평화정책이었는데, 작년 북한 핵실험이 있을 때 햇볕정책을 부인하고 최근 2차 정상회담도 반대했다”며 “이게 어떻게 민주당의 전통에 맞느냐, 한나라당의 이야기지. 민주당이 50년 전통에서 스스로 벗어났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지난 26일 대통합민주신당 추미애 경선후보를 만난 자리에서도 “결국 우리를 지지하는 모든 국민이 대통합을 지지할 것”이라며 민주신당에 힘을 싣는 발언을 했었다.
엄연히 정치적 아들이 있는 상황에서 새로 태어난 혼외자에 대한 과도한 사랑에 DJ 적통임을 자임하는 민주당으로서는 서운함을 크게 느낀 것이다.
DJ훈수정치에 “전라도민에 자존 주어야 할때...”
지난 8월 29일 박찬종 전 의원은 한술더 떴다. 그는 ‘훈수정치’로 논란을 빚고 있는 김 전 대통령을 향해 “이제는 전라도민들이 선생의 호주머니에 든 밤알들이 아니다”고 일갈하며 “호주머니에 남은 밤알들을 소중히 꺼내 놓아야 한다”고 직격했다.
최근 4차례의 서한을 통해 DJ에게 고언을 했던 박 전 의원은 이날도 공개서한을 통해 “지난 4·25 무안·신안 보궐선거 당시 선생만 빼고 이희호 여사를 비롯 이른바 가신그룹이 총동원돼 요란스런 선거운동을 한 결과 둘째 아들이 당선됐지만, 49%득표에 그치고 2위인 무소속 후보가 31%를 득표했다”면서 “이는 (지난)대선때 선생께 사실상 100% 지지를 보낸 곳의 유권자 2명중 1명이 선생께 등을 돌린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전 의원은 또 “이는 선생이 대통령직 퇴임 후 현실정치 불개입 약속을 깨고 전라도 중심의 집권당 재건을 독려하면서 46억원의 뇌물사건으로 1년6월의 실형을 복역한 둘째 아들을 민주당 공천을 받게 해 입후보시키고, 부인과 측근을 내세워 당선을 독려한 일련의 행위에 대한 전라도민들의 항의가 높은 수준에 이른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후광(DJ의 호)이 하는 일인데! 선생이 결심한 일인데!’라며 전라도민들은 그렇게 선생의 의향에 순치돼 왔고, 그러한 순종은 36년간의 경상도 대통령들의 ‘전라도 죽이기’ 시절엔 자연스런 현상이었다”며 “그러나 선생은 그 인고의 세월을 견뎌 대통령직에 올랐고, 지난 10년 전라도의 한도 많이 풀렸다. 이제는 선생이 전라도민들의 자주성, 자립적 결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DJ의 대통합민주신당 두둔에 대해 “선생은 어렵사리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둘째 아들을 탈당케 해 이른바 통합신당에 참여케 하는 등 공개적으로 새로이 기획한 ‘전라도민의 당’ 재창당을 독려하고 있다”면서 “이 일이 실책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질타했다.
박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DJ의 목포 방문시 ‘내 대통령 당선과 노벨상 수상을 전라도민들게 바친다’는 발언과 경남 합천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호를 딴 ‘일해공원’ 조성을 언급, “선생의 최근 말씀과 행동은 경상도·전라도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3김정치의 망령을 불러오고 있다”며 “(일해공원) 명칭 변경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근 선생이 주도한 전라도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 재창당 등에 자극받은 경상도 지역주의가 작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대선도 이대로 가면 지역당의 지역대결로 전개될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 선생의 지역주의 편향의 활발한 행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자극해 끝장내야할 ‘3김정치’의 그늘을 재현시키고 있다”면서 “이젠 지역주의를 초월, 타파해야 할 숙명적 책무가 있는 선생께서 이를 조장·확대시키는 일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의원은 ‘북한 핵 문제가 남북 정상회담에 부담이 돼서는 안된다’는 DJ의 발언과 관련, “6·15 공동선언은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기 보유로 원인무효가 됐다. 개인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선생을 배반한 것이고 그를 호되게 나무라야 하며, 남북관계의 바뀐 현실 앞에서 검증 가능한 원칙과 노선을 재천명해야 한다”며 “그러나 선생의 그런 흔적을 엿볼 수 없다. 현 정권의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있어 회담과 핵을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은 6·15 공동선언의 한 주체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고 성토했다.
그는 이어 “선생은 더 이상 남북문제, 특히 북핵과 관련된 사항들에는 침묵해야 한다”면서 “선생이 굳이 말해야 한다면 북한의 핵 보유라는 엄연한 국가적 위협 앞에서 햇볕정책의 실패를 자인하고, 새로운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현명한 정책전환을 건의하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박 전 의원은 “전직 대통령 4명 중 용서·화해·상생·지역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유일한 적격자가 선생뿐”이라며 “용서와 화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손을 내밀 때 극적으로 확실하게 빨리 이뤄진다. 선생이 지금 그것을 해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 우뚝 선 국가원로가 돼 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8월 30일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DJ의 ‘민주주의는 양당제’라는 발언과 관련, “그런 표현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어느 선생님도 ‘민주주의는 양당제다’라는 말은 한 적이 없고, 민주주의가 양당제냐 다당제냐에 따라서 갈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일침을 가했다.
유 대변인은 “프랑스·독일 등 서구의 여러나라와 일본 등도 양당제가 아니다”면서 “한국도 박정희 유신시절, 90년 김영삼 당시 (민자당) 총재 때 양당제였고, 그 외엔 다 다당제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이처럼 DJ의 발언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동교동 측은 “최근 일부 정치권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지나치다”며 화를 냈다.
DJ의 공보비서관인 최경환 비서관은 지난달 28일 논평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원로로서, 한반도 평화·세계평화·빈곤퇴치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에서 노력해 왔지만 국내 정치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며 “다만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년간 북한 핵문제와 6자회담, 남북관계 발전, 대통합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 국민의 뜻을 국가 원로의 입장에서 말했다”고 주장했다.
최 비서관은 특히 “김 전 대통령은 민주발전을 위해 의견을 개진할 필요성이 있을 때 국가원로로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민주주의는 양당제이며 우리 국민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여야 일대일의 선거구도를 바라고 있다. 범여권의 분열과 혼란으로 국민들의 염려와 걱정이 커지게 되면서 김 전 대통령은 범여권의 대통합을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비서관은 그러나 “특정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며 “이제 대통합이 이루어져 바람직한 선거구도가 잡혀가는 때에 정치권에서 정책대결은 하지 않고 불필요한 논란을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6자회담, 남북정상회담, 대통합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할 말을 한 것이고, 김 전 대통령의 그러한 주장은 모두 옳았다”면서 “세계 어느 나라든 전직 대통령은 국가의 중대사에 발언할 법적, 정치적 자격이 있다. 이러한 현안에 대한 언급을 시비하는 것은 잘못된 것”고 부연했다.
최근 김 전 대통령에게 비판논조의 공개서한을 보내고 있는 신국환 의원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시켜준 역사적 쾌거였지만, 햇볕정책은 이면의 부작용도 심각했다”면서 “서슬퍼런 (노무현) 정권의 권력앞에 자신의 분신들인 박지원 임동원 전 장관이 끌려가고, 대를 이은 경제협력자인 정몽헌 회장이 죽음을 선택할 때 김 전 대통령은 침묵하지 않았느냐”고 따져물었다.
신 의원은 “국민들의 거부감으로 (민주신당 경선이) 흥행이 되지 않자, 김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흥행시키려 한다는 점을 국민들이 잘 알고 있지만, 호남민들의 가슴엔 못질을 하지 말아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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