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정신적 가치

2007.11.02 16:11:11

제시문을 토대로 ‘슬픔’의 정신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1,800±100자)
(가)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나) 1. 명예가 값진 기름보다 좋고,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좋다. 2.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좋다. 산 사람은 모름지기 죽는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3. 웃는 것보다는 슬퍼하는 것이 좋다. 얼굴에 시름이 서리겠지만 마음은 바로 잡힌다. 4.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이 초상집에 있고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잔칫집에 있다.
-성경전서 중 전도서 7:1~4
(다) 장자의 친구 혜자(惠子)가 장자의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문(弔問)을 갔는데, 장자는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鼓盆而歌]. 혜자는 장자에게 부인이 죽었는데 슬퍼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건 지나치다고 말하였다.
장자는 "아내의 죽음에 금방은 슬펐지만 인간은 본래 생명이 없었고 형체도 기(氣)도 없었으며 나중에 기가 생기고 기가 유형으로 변하고 형체가 생명을 갖추었다가 죽음으로 바뀌게 되었으니 사계절의 변화와 같은 것이다. 아내가 죽은 뒤 천지 사이에서 편히 쉴 테니 통곡하면 천명에 통하지 못하므로 울음을 그치고 동이를 두드린다."고 하였다.
-《장자》중〈지락편(至樂篇)〉
(라)
-루벤스, 평화와 축복 알레고리
(마)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사람은 죽어서 저승으로 가게 되는데 타나토스라는 저승사자가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에레보스(Erebus)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암흑세계를 뜻하는데, 본디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어둠의 신을 말하며, ‘어둠’ 또는 ‘암흑’을 뜻한다. 하데스가 자신이 관장하는 저승을 두 부분으로 나누고는 죽은 자들이 잠시 지나가는 곳은 에레보스, 티탄 등을 감금한 무한 지옥은 타르타로스라 불렀다.
에레보스에는 5개의 강이 있다.
1. 아케론(Acheron)
첫 번째 강은 ‘비통의 강’ 또는 ‘슬픔의 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아케론이다. 이 강에는 카론이라는 뱃사공 영감이 있다. 이 영감은 바닥이 없는 소가죽 배로 혼령들을 강 건너 쪽, 즉 피안으로 실어다 준다. 그런데 이 소가죽 배를 얻어 타려면 적어도 엽전 한 닢이라도 내지 않으면 절대로 이 강을 건널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세상을 떠난 사람의 입에다 꼭 엽전 한 닢을 넣는다고 한다. 여기서 영혼이 슬픔을 버리고 간다고도 한다.
2. 코퀴토스(Cocytos,Cocytus)
두 번째 강은 ‘통곡의 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코퀴토스이다. 깊고 검은 시름의 강이라고도 하며, 특별한 이야기는 그리 전해져 오고 있지 않다.
3. 플레게톤(Phlegethon)
세 번째 강은 ‘불의 강’, ‘불길의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플레게톤이다. 용솟음치는 불길의 폭포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곳이며, 이전의 강에서 느꼈던 비통과 시름을 불로 정화해 깨끗한 영혼을 얻는 곳이기도 하다.
4. 스틱스(Styx)
네 번째 강은 '혐오스럽다'는 뜻도 있는 증오의 강인 스틱스이다. 저승을 일곱 바퀴 돌아 흐르는 강이며, 원래는 이 강의 여신의 이름이다.
5. 레테(Lethe)
마지막 강은 망각의 강으로 유명한 레테이다. 스틱스처럼 원래는 신의 이름으로, 분쟁과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딸이라고 한다. 스틱스를 건너고 나면, 죽은 망령은 지상에서의 기억을 모조리 지워 버리도록 레테의 물을 마시도록 강요당한다. 죽은 자는 이 강물을 마시고 이승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는다고 하며, 영혼이 새로운 육체 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날 때 이 강물을 마시고 이승의 기억을 모두 잊는다고도 한다. 이승의 일, 전생의 번뇌는 까맣게 잊고 저승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곳이다.
[학생논술]
우리의 감정은 ①‘희노애락’으로 표현된다. ②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우리의 감정은 이 네 가지의 순서를 따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직 기쁨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려고 한다. 분노와 슬픔이라는 감정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픔이 주는 고통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슬픔은 분노의 연장선이자, 즐거움으로 가는 전환점이다. 슬픔이 없이는 즐거움이 없고 또 이에 따르는 기쁨도 없다. 그렇다면 슬픔이 수반하는 ‘고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고통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는 화자가 청자에게 ‘슬픔’을 선물함으로써 청자에게 세상의 약한 자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③베품을 행하는 태도를 권하고 있다. 이는 슬픔을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약한 자들의 아픔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④내적성숙의 수단으로써의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나) 역시 슬픔을 아는 사람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이것이 곧 ⑤지혜로운 자의 태도인 것이다. ⑥반면에 어리석은 자는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가)와 (나)에서는 슬픔을 통한 ‘내적성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는 ⑦죽음의 슬픔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또 하나의 출발이다. 그러므로 ⑧이곳에서 느끼는 슬픔은 사실 기쁨과 즐거움 그 이상의 값진 것이다. ⑨당장은 이별로 나가오기 때문에 슬프겠지만 이 슬픔이 또 이별이 있었기에 기쁨과 즐거움이 새로운 시작이 존재하는 것이다. 슬픔을 극복했을 때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하며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라)의 그림은 슬픔을 극복한 후의 천상의 평화와 축복을 나태내고 있다. ⑩또 슬픔의 극복 과정에는 가족과 친구가 함께 한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의 극복이 외로운 것이 아닌 것이다. ⑪슬픔을 극복했을 때만이 평화와 축복을 느낄 수 있다. (마)는 죽음을 여행의 과정으로 비유하여 강을 지난다고 했다. 그 것은 크게 슬픔, 비통의 강에서 출발하여 통곡의 강을 거쳐 정화와 강을 지나 마침내 ‘망각의 강’에 다다르게 된다. 망각의 강에서는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을 지우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슬픔은 언젠가는 잊혀지는 것이다. 하지만 슬픔을 극복하려는 과정을 통할 때 비로소 망각에 이르는 것이다. (다),(라),(마)는 슬픔의 극복을 통한 기쁨, 축복, 평화 그리고 망각에 대해 논하고 있다.
⑫우리는 슬픔을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슬픔은 슬픔이라는 감정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슬픔은 지금의 나를 성숙하게 하는 도구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슬픔은 기쁨, 그 이상의 기쁨인 것이다. ⑬슬픔을 통한 내적성숙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슬픔이 주는 그 잠깐의 고통의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또, 그 고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알게 된다. 슬픔에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우리가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슬픔의 극복은 통한 내적 성숙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슬픔 뒤에 감춰져 있던 또 다른 세계를 만난다. 그 세계에서 우리는 축복과 평화를 누리며 새로운 즐거움과 기쁨 속에서 제 2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첨 삭]
① '희로애락'으로 써야 합니다.
② '희로애락'을 감정의 순서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적절치 않습니다. 인간의 주요 감정을 순서 없이 나타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오직 기쁨과 즐거움만 추구한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이 문장 또한 부적절합니다.
③ '베풂'이라고 써야 합니다. '베풂을 행하는 태도'는 '베풀 것을'로 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띄어쓰기에 주의합니다. '내적 성숙'.
④ '수단으로서의'로 써야 합니다.
⑤ → 지혜로운 자의 태도라고 보았다.
⑥ 군더더기 문장이므로 삭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⑦ →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겪는 슬픔에 대해
⑧ → 사별로 인한
⑨ 제시문 분석이 적절치 않습니다. (다)는 ‘죽음’ 앞에서 보통 사람들의 반응은 ‘슬픔’일텐데, 장자는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장자의 남다른 관점에 있겠지요. 동일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각자 다른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대목은 슬픔의 주관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⑩ ⑪과 논리적 연관성 없이 서술했습니다.
⑫ 현재 시제로 서술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⑬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중복된 부분은 빼고 간결하게 정리하도록 합니다.
[총 평]
주어진 제시문에는 슬픔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실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답안에는 이러한 제시문 내용이 반영되어 ‘슬픔’이 지니는 가치를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학생은 제시문에 나타난 슬픔의 가치를 어느 정도 파악했으며, 슬픔의 초극을 통한 환희의 순간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나 제시문에 대한 정교한 분석과 심화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시문 분석에 있어서 (가), (나)를 묶어 슬픔의 긍정적 측면을 서술한 것으로 정리한 부분은 적절합니다. 그 뒤로 (다), (라), (마)를 하나로 묶어 설명했는데, (다)와 (마)는 ‘죽음’이라는 사건과 결부된 슬픔을 다루고 있다면, (라)는 슬픔을 극복한 후의 평화와 안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분리하여 분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적절치 못한 어휘를 선택하거나 문장 호응에서 어긋나는 비문이 눈에 띕니다. 비슷한 내용을 중복하여 서술하거나, 필요 없는 문장이 끼어들어간 경우도 있습니다. 퇴고 과정에서 표현상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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