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살인사건 (제21회)

2007.11.15 13:11:11

“지금 어디 있지요? 시체실에 있나요?”
“아닙니다. 닷새 동안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기에 가매장해 뒀습니다.”
“가매장! 갑시다.”
우형빈이 벌떡 일어났다.
현지 경찰서의 관리로 돼 있는 공동묘지에서 새로 가매장한 무덤이 파헤쳐졌다.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지욱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이 낯선 고장에 와서 자살할 리가 없다. 더구나 이런 땅 속에 파묻힐 리는 더욱 없다고 되뇌이고 있었다. 가매장한 거라서 쉽게 파졌다. 이내 관이 나왔다.
“뜯어 볼까요?”
인부가 우형빈을 올려다 봤다.
“어서 뜯어요.”
인부가 드러난 관의 뚜껑을 못뽑이로 뽑았다. 시체엔 거적이 덮여 있었다. 인부가 거적을 들췄다. 순간 지욱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 아앗.”
우형빈도 눈을 감아 버렸다.
그것은 틀림없는 경미의 시체였다.
사인은 자살을 위장한 약물중독. 위에선 비소의 화합물인 필로카르핀이 검출되었으며 죽은지 꼭 10일이 경과됐었다. 그러니까 실종된 그 이튿날, 8울 17일 아내는 필로카르핀을 마시고 즉사한 것이었다.
“으흐흐... 흐흑...”
아내의 부패된 시체를 보고 지욱은 범인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몸을 떨었다. 우형빈 역시 이럴 때 친구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해 줄지 몰랐다. 그저 울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울고 있었다. 그 바위 같은 어깨를 조용히 들먹이면서...
이 사건은 신문에 일제히 보도되었다. 경찰에서도 백낙원 사장 사건과 나경미 사건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했으며, 수사요원도 우형빈을 비롯하여 마형사, 장형사 그리고 몇 명을 더 보강했다.
재벌 며느리 의문의 죽음은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 여자가 죽다니... 얼마나 축복받은 결혼이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유괴범이 그 여자를 납차했다는 거야.”
“어른이 유괴당할리 있어?”
“모르는 소리마. 포르말린 같은 약으로 입을 틀어막으면 금새 의식을 잃는대.”
“영화 콜텍터의 범인같이 말이지? 호호...”
“그러면 범인은 그 여잘 짝사랑하다가 말을 안듣자 살해한 것 아닐까?”
“아무튼 아까운 여자였어.”
“남편이 더 불쌍하지 뭐.”
“생각있음 가서 위로해 드리지.”
“어머 얜, 호호호...”
지욱에겐 비통한 며칠간이었다. 화사하게 웃던 아내의 얼굴이 지욱의 망막을 자꾸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엄연히 아내는 이 세상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쫓던 방용철이란 사내도 살해당했다. 그러고 보면 이 사건은 갑자기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닌지도 모른다. 적어도 백낙원 사장이 죽기 훨씬 이전부터 계획적으로 조작된 사건이라고 지욱은 생각을 굳혔다.
그렇다면 경미와의 결혼 자체도 누군가의 조작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누구의 힘에 의해 백낙원 사장은 우리 두 사람을 중매해 놓고 살해된 것이 아닐까? 누구의 힘? 누구의 힘? 그 누구가 어떤 존재인가?
경미의 장례식이 끝난 후 며칠이 흘렀다.
지욱의 집에 경미의 친구 오영숙이 찾아왔다.
“선생님, 제가 이렇게 찾아뵌 것은 실례인 줄 알면서도 오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겠더군요.”
“잘오셨습니다. 아내의 장례식 때 영숙씬 너무 수고가 많았어요. 그러잖아도 한번 찾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지욱은 눈이 패이고 몰라볼 만큼 핼쑥해 있었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보면서 영숙은 입을 열었다.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왜 없겠습니까? 지금 내 심정은 범인을 잡아서 아내를 살해한 이유를 밝혀내야 합니다.”
“물론 그러시겠죠.”
“그러자면 자연히 아내의 과거가 문제가 되겠죠. 누구보다도 영숙씬 아내를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럼요. 쭈욱 같이 학교에 다녔으니까요.”
“방용철이란 자도 의문의 죽음 당한 걸 보면 아내의 과거에 그 원인은 반드시 있습니다. 뭐 생각나는 거라도 없습니까?”
“글쎄요, 아직까진...”
영숙은 고개를 숙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한참만에 영숙이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명동 나가시지 않으시겠어요? 제가 저녁 살게요. 옛날 경미랑 잘 다니던 단골집이 있거든요.”
지욱은 영숙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들은 명동에 나와 경미가 학생시절에 잘 다녔다는 동굴같이 생긴 학생주점에 들어갔다.
왁자지껄한 젊은이들의 환성이 주점 안을 꽉 메우고 있었다. 앉을 자리도 없었다. 그들은 겨우 구석진 자리에 가서 엉덩이를 붙였다.
“정말 대단한데요.”
“여긴 늘 이래요.”
지욱은 주위가 너무나 시끄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데도 영숙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여유있게 종업원을 불렀다.
“이봐요. 여기 술하고 안주 그거 있죠?”
“네네.”
“빨리 좀 갖다 줘요.”
영숙은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욱은 오랜만에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다.
“정말 대단합니다.”
“여긴 이게 매력이에요.”
“경미는 여길 자주 왔군요?”
“바로 선생님이 앉은 자리에 즐겨 앉곤 했었죠.”
“흠.”
지욱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괴목으로 만든 탁자에 역시 괴목으로 괴어놓은 나무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윽고 술과 안주가 왔다. 술은 걸쭉한 말걸리였다. 영숙이 익숙하게 지욱의 잔에다 막걸리를 철철 넘치게 따랐다.
“자, 쭉 드세요.”
지욱은 그걸 단숨에 비웠다.
“커, 좋은데요. 술맛.”
“저도 한잔 주세요.”
“아, 실례했습니다.”
지욱도 영숙의 잔에 술을 채웠다. 영숙이 반쯤 마시고 잔을 놓았다.
“경미도 술 잘 마셨나요?”
“그럼요, 옛날 경미는 비밀 요...”
영숙은 갑자기 말을 끊었다. 잘못 말을 꺼냈다가 당황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아니예요. 아무것도...”
영숙은 어색한 듯이 잔을 들어 쭉 비워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해물이 들어간 파전을 뚝 떼어 초간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어서 드세요. 이 파전 정말 진짜예요. 부산 동래파전이라구요.”
“아내가 비밀요정에 나간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지욱은 다그쳤다. 영숙은 얼굴이 핼쓱해졌다.
“제가 얘기 안하려던 건데 불쑥 입밖으로 튀어나왔군요.”
“아니, 처갓집은 생활에 별 지장을 받지 않고 있었을 텐데요. 장인이 남긴 유산만 해도 두 모녀가 부족함이 없었을 텐데...”
“그래요. 한때는 가난했어요.”
“그래서 비밀요정에 나갔단 말입니까?”
“돈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매력 때문이죠.”
“인간의 매력?”
“서정숙 여사 아시죠? 디자이너 서정숙씨 말예요.”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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