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상미 기자] 가을이 오면 특히 그리워지는 존재, 영화배우 손예진(31)이다.
‘작업의 정석’(2005년 12월) 이후 ‘무방비 도시’(2008년 1월) ‘연애시대’(2008년11월)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년 11월) ‘오싹한 연애’(2011년12월) ‘타워’(2012년12월)까지 손예진이 출연한 영화는 모두 찬바람 부는 11월 이후에 개봉했다. 그나마 일렀던 것이 ‘아내가 결혼했다’였지만 2008년10월23일 개봉했으니 별 차이가 없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스릴러 ‘공범’이 10월24일 개봉한다. 지난해 6월24일 크랭크인해 약 4개월 뒤인 10월13일 촬영을 마친 영화다. 특수시각효과(VFX)가 많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가 아닌 한 크랭크업 뒤 늦어도 6개월 안에 개봉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1년을 묵었다.
손예진이 김갑수(56)와 호흡을 맞춘 것, CJ E&M의 투자배급작인 것, 신예 국동석(37) 감독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긴 했지만 ‘너는 내 운명’(2005) ‘그놈 목소리’(2007) ‘내 사랑 내 곁에’(2009) 등을 연출한 박진표(47) 감독이 제작한 것 등을 살피면 이례적인 일이다.
손예진의 주연작들이 그 동안 가을, 겨울에 주로 개봉된 이유는 거의 모든 작품이 가슴 시린 멜로물이거나 포근한 로맨틱 코미디물이기 때문이다. ‘멜로 퀸’, ‘로코 여신’의 이미지와 부합한다.
그런데 ‘공범’은 스릴러물이다. 보통 스릴러는 늦봄부터 늦여름까지가 제철로 여겨진다. 올해 범스릴러물들인 ‘몽타주’(5월16일), ‘감시자들’(7월3일), ‘더 테러 라이브’(7월31일), ‘숨바꼭질’(8월14일)은 모두 이 시기에 차례로 개봉했다.
‘공범’이 다른 스릴러와 달리 가을, 그것도 늦가을까지 기다린 이유는 ‘감성 스릴러’이기 때문이다. ‘공범’은 15년 전 발생한 어린이 유괴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를 15일 앞두고 범인의 목소리를 우연히 듣게 된 딸 ‘다은’(손예진)이 아버지 ‘순만’(김갑수)의 목소리와 똑같다고 느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믿어온 아버지가 천인공노할 사건의 범인이고, 그 사실을 15년간 숨긴 채 살아왔다고 여기게 된다면, 딸이 받게 되는 충격과 분노는 어떠할까. 그리고 결백을 주장하며 자신을 믿어줄 것을 호소하는 아버지와 딸 간 양극단의 감정 충돌은 또 어느 정도일까.
영화가 다은 역으로 손예진을 내세운 이유다. 손예진만의 넓고 깊은 감성 연기와 특유의 아우라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 대척점에 서게 되는 순만 역으로 김갑수를 올린 것과 같은 이유다.
실제로 티저 영상이나 메이킹 필름 등을 통해 공개된 손예진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순만을 의심하게 되면서 다은은 감정의 극단으로 내몰리고 만다.
“현실적이지 않을 것 같지만 진짜로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담았다. 다은의 시점에서 죽을만큼 혼란스럽고 충격적이면서 절망적인 감정에 아니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라는 손예진의 말이 실감난다.
손예진이 “‘아빠 맞지?’라고 말하며 오열하는 장면이 있다. 살면서 표현하지 않는 감정 표현이 많아 순간 몰입하려고 노력했다. 진짜 탈진이 오더라. 대사도 길고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 촬영 후 녹다운됐다”고 설명하지 않아도, 영상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 열연이 실감난다.
SBS TV 드라마 ‘연애시대’(2006)에 손예진의 아버지로 출연한 김갑수는 “손예진과 다시 함께 연기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 “촬영장에서 어느 순간 손예진의 연기를 구경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도 내 역할을 해야 하는데 손예진의 연기를 자주 구경하게 되더라. 어려운 연기를 해낼 수 있을까 했는데 그걸 뛰어넘더라. 그래서 더 구경했나보다”, “같이 연기하면서 정말 행복했다. 이런 좋은 연기자를 만난 것이 행복이다” 등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작자 박 감독은 손예진을 ‘짐승 배우’라고 표현했다. “계산과 동물적인 연기 감각이 공존한다”고 본다. 손예진은 “그동안 아이돌 가수를 두고 짐승돌이라고 부르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짐승 배우는 처음이었다”고 했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다.
손예진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을 다루는 영화 시나리오가 정말 마음에 들어 선택했다. 한 가지 캐릭터만 보여주기보다 하지 않았던 작품을 하려고 하다 보니 다양하게 해보는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갑수 선배님처럼 연기를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공범’은 그간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품인 것 같다. 극적인 감정이 너무 많았다. 살면서 표현하지 않는 그런 감정들이다. 살면서 표현하는 감정의 최고조가 5라면 10의 감정을 계속 보여줘야 했다. 그게 제일 힘들었지만 그만큼 의미가 있었다. ‘공범’이 대표작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관객들이 어떻게 볼는지 기대된다”며 욕심과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후반 작업 중인 국 감독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공범’이 손예진의 대표작을 놓고 영화 ‘클래식’(2003)이냐, 드라마 ‘연애시대’냐 하는 설왕설래를 잠재우는 진짜 대표작이 될는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