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뜨겁게 달군 문제적 인물 10인을 선정했다. 한 개인이 행적은 언제나 시대의 풍경을 대변한다. 특히 몇몇의 뉴스메이커들은 극단적으로 시대를 표현하고 창조한다. 긍정적 발자취든, 부정적 추억이든 그것이 역사다.
신 정 아
한 여자의 대담한 학력위조라는 뉴스로 시작된 신정아에 대한 소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복잡한 실체가 밝혀지더니 급기야 정권의 기반을 흔드는 거대 이슈로 몸체를 드러냈다.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동국대 교수, 미술관 주요 큐레이터, 광주비엔날레 총감독까지 화려한 이력을 갖게 된 신정아의 배경에 도사린 신분상승의 욕망과 거침없는 수단은 대중의 드라마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부적절한 관계, 누드사진 등 성적 연상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많았기에 언론들은 앞 다퉈 그녀에 관한 이슈를 역시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바빴다.
김 경 준
대선 정국에 폭탄 든 사나이가 나타났다. ‘BBK 주가 조작’ 사건의 장본인 김경준은 결국 검찰 수사 발표에 따라 희대의 사기꾼으로 결론 났다. 하지만 의혹은 남았다. 협량협상을 한 내용이 적힌 쪽지가 수사발표를 앞두고 공개돼 파문이 일었고, LA연방구치소 수감 동료로부터 국내 송환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김씨 사이에 거래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검찰 발표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도 반신반의였다. 김경준은 보는 사람의 이익관계에 따라 평가가 엇갈렸다. 어떤 집단에게는 사기꾼으로, 어떤 진영에서는 권력의 희생양으로 거듭 해석이 바뀌었다.
조 승 희
한 명의 사이코패스가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은 어디까지인가, 또는 부조리한 사회는 어떤 괴물을 만들어내는가. 이 같은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나타난 인물이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건의 범인 조승희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이민한 한인이라는 특수성은 한국인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조승희 충격’은 이민사회의 문제점과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그리고 총기 문제와 외톨이 증후군 등 광범위한 사회 문제에 반성과 대안 찾기의 계기를 만들었다.
김 연 아
작년 ‘국민 여동생’이 문근영이었다면 올해의 ‘국민 여동생’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였다. 김연아는 지난 시즌 피겨 스케이팅 시니어 무대에서 데뷔했다. 그리고 지난달 2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에서 역대 최고 점수이자 이번 시즌 최고점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한 시즌 2개 그랑프리 대회 연속 우승과 더불어 2년 연속 시즌 성적 최상위 6명만 출전하는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한 것이다. ‘피겨 요정’에서 ‘피겨 여왕’으로 성장한 김연아의 활약은 국민들 가슴에 모처럼 불어온 훈풍이었다.
박 태 환
한반도가 물에 잠기더라도 수영선수 박태환은 꼭 살려야 한다. 한반도가 물에 잠길 때 꼭 지키고 싶은 스포츠 선수를 뽑는 설문조사에서 첫 손에 꼽힐 만큼 박태환은 국민 보물로 자리매김했다. 박태환은 월드컵 3차(시드니), 5차(스톡홀롬)에 이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07 국제수영연맹 경영월드컵 6차 시리즈 자유형 1,500m에서 우승해 연속 3관왕을 거머졌다. 새로운 스포츠 스타 아이콘으로 떠오른 박태환은 최고의 브랜드 파워를 지닌 이름이 됐을 뿐 아니라, 세계 수영계의 관심 제 1순위가 됐다.
고 산
9월5일 한국 최초 우주인 후보로 최종 선발돼 젊은이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1년 6개월간 진행됐던 우주인 선발과정에서 3만6천대1 경쟁을 뚫은 고산은 지덕체를 고루 갖춘 인물로 알려졌다. 출중한 능력과 겸손한 인간성, 강인한 집념과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한국형 영웅 모델이 된 셈. 부모님을 비롯해 은사와 친구들, 직장 동료들도 한결같이 ‘반듯한 마음씨와 리더십을 겸비한 모범생’으로 그를 칭송했다. 내년 4월 우주비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최고의 스타로 또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을 전망이다.
심 형 래
‘국민 바보’가 드디어 일냈다. ‘영구와 땡칠이’로 방학시즌 극장가를 휩쓸었던 심형래는 ‘용가리’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 결국 ‘디 워’로 한국과 미국 흥행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심형래의 원동력은 열등감이었다. 그는 각종 인터뷰에서 영화계에서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과거,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 영화의 현실 등이 울분을 안겨줬다고 고백했다. 그 열등감이 국민적인 감성이었기 때문일까. 심형래는 하나의 애국심 코드가 됐다.
김 용 철
삼성비리 폭로 사건으로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 거대 진실은 내부 고발자에 의해 밝혀지기 마련이지만, 이 내부 고발자는 불행하게도 범죄의 폭로자이자 범죄 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영웅과 배신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로비에 직접 간여했고, 재직하는 동안 엄청난 금전적 혜택을 누렸다. 이 때문에 그의 폭로에 대해 순수성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설혹 온당치 못한 이해관계가 얽혔다고 해도 고발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행동임은 말할 것도 없다. 권력과 비리의 은폐가 의리가 아니라면 부정에 대한 폭로를 배신이라 부르는 것도 부적절하다.
박 진 영
파격적인 의상과 선정적인 가사 등으로 데뷔 이래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냈던 박진영. 프로듀서로 데뷔한 이후로도 god, 박지윤, 비, 원더걸스까지 손만 대면 모두 히트시켜 이슈메이커의 자리를 놓친 적 없던 박진영에게도 올해는 특별한 한해였다. ‘텔미’ 열풍의 장본인으로 존재감을 더했을 뿐만 아니라, 가수로 컴백 6집 앨범을 발표해 연예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현재 박진영은 미국 빌보드 차트 10위권 앨범에 3번이나 곡을 실으며 프로듀서로서 입지를 굳혔다. 3명의 한국 가수를 진출시키는 작업도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다. 물론, 그는 ‘아직도 배고프다’며 소진하지 않는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이 명 박
대선 정국에서 내내 지지율 1위를 지키며 독주한 이명박은 올해 최고의 이슈메이커. 우선 한나라당의 경선이 드라마틱하게 진행 된데다 도곡동 땅과 BBK 사건 등 대형 비리 사건의 주인공으로 총공세를 받았다. 그럼에도 끄덕하지 않는 여유만만 포커페이스 또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경제 성장’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명박 지지율의 고공행진은 도덕성이나 평등 감성보다 경제적 능력을 갖춘 리더십을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명박은 이 같은 한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인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