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남자충동’으로 정극에 도전하는 개그우먼 조혜련
연극 ‘남자충동’(조광화 극작·연출)의 연습현장. 영화 ‘넘버3’와 드라마 ‘좋은 사람’ ‘때려’ 등으로 연기력과 대중성, 양쪽 모두에서
검증된 배우 안석환이 한창 대사를 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영화 ‘올드보이’의 오달수, ‘지구를 지켜라’의 황정민, ‘나쁜 남자’의
김윤태와 뮤지컬 ‘그리스’의 엄기준 등 낯익은 배우들이 앉아있다. 연극 영화 드라마 뮤지컬에서 자기 영역을 구축한, 스케줄 맞추기도 힘들
그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정신을 홀라당 들게 했다.
개그우먼 조혜련이다.
웃음은 가라, 이젠 눈물이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우선 TV에서 한 ‘떡대’하던 그녀가 이렇게 왜소할 줄은 몰랐고 아무리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이라지만 ‘막강군단’을
내세운 야심작에 그녀도 참여한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자칫하면 심각한 장면에서 관객이 피식 웃어버리는 당혹스런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녀는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절대 그렇게 연기하지 않을 거니 염려 말라”며 일침을 놓았다. 시원스런 목소리와
말투는 방송에서와 똑같다.
그녀가 ‘남자충동’에서 맡은 역은 어머니 ‘박씨’로 노름에 빠진 남편 때문에 하루도 눈물 마를 날 없는 굴곡 많은 여인네다. “평생을
참고 인내하며 살아온, 가슴에 한이 많은 캐릭터”라고 간략히 설명한 그녀는 “본인은 내지르는 성격이라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실제와 정반대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 바나나 껍질 벗기듯 쉬운 일이 아니기에 캐릭터 분석하는 데만 꽤 긴 시간이 필요했고, 그것을 오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출하기 위해 또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조혜련에서 ‘박씨’로 변신하는 데 자신감이 생겼다는 그녀는 스스로 연기력이
성장했다고 평했다.
“지금까지 늘 웃음만 선사하는 역할을 했는데 진지한 연기를 하게 돼 너무 신나요. 선배들의 지도도 큰 도움이 됐죠. 정말 많이 배우고
발전하는 기회인 것 같아요.”
조르고 떼써서 얻어낸 배역
경남 고성 출신으로 고향 친지나 친구들을 만나면 순식간에 경상도 말씨가 튀어나오던 그녀가 요즘에는 쇼프로에서 연극 배경인 목포의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로 애드립 하는 것만 봐도 그녀가 ‘박씨’에 푹 빠져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열정과 애정이 크다 할 지라도 가슴 한켠에 자리잡은 불안감을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코미디가 아닌 정극 도전은 그렇다쳐도 한
연기한다고 동네방네 소문난 황정민과 더블캐스팅 아닌가. 그런데도 기죽는 것 없이 자신만만해 하는 표정이란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왜 안 떨리고 안 두렵겠어요? 정민 언니와 비교될 거라는 부담감도 크죠. 제가 봐도 연기를 참 잘하는데요. 하지만 걱정해봤자 뭐해요.
그 시간에 연습 한번 더 하는 게 낫지.”
시원시원한 말투 속에 자신감과 배짱이 느껴졌다. 하긴 그 정도의 용기가 없었다면 애초에 시작도 못 했을 것이다. 배역을 따낸 것도 조르고
떼써서 얻어낸 결과 아닌가. SBS 드라마 ‘때려’에 함께 출연한 안석환에게 연극에 대한 정보를 듣고, 그 길로 연출가와 스텝, 배우들이
모인 술자리에 좇아와 분위기 띄워가며 ‘옆구리 콕콕 찔러’ 따낸 것이다.
“한마디로 어거지를 부렸죠. 너무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좀 더 지켜보자’고 하는 선배들을 막 웃겨주고 친한 척하면서 구슬렀죠. 다음날
바로 통보 받았어요. 하하.”
내 이름은 ‘프로’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마는 그녀이기에 배우 송강호가 붙여준 별명이 바로 ‘하고재비’. 대배우가 혀를 내둘릴 정도로 욕심도 많고 열의도
대단하다는 것을 수이 짐작케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 있다. 바로 그녀의 두꺼운 낯짝이다. 배우는 철면피여야
한다. 뻔뻔해야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무대에서 혹은 무대 밖에서 세인의 관심과 시선을 즐길 줄 아는 뚝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역할로 분하든 창피해해서는 안되며 충실히 임무완수해야 한다. 인간도 괴물도 아닌 골룸을 맡을지언정.
얼마 전 인터넷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면서 대한민국을 한바탕 발칵 뒤집어놨던 이른바 ‘혜련 골룸’은 숨쉬기조차 힘들만큼의 폭소와 조혜련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안긴 정말 쇼킹한 사건이었다. 머리가 성성히 빠진 가발을 쓰고 민망할 정도로 몸에 찰싹
달라붙은 살색 쫄쫄이를 입은 그녀가 쉰 목소리로 “골룸 골룸 마이 프리셔스”를 외쳐대는 모습을 보면서 팬들은 ‘프로 중에 프로’라는 찬사와
‘저렇게까지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라는 상반된 두 평가를 내놓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녀도 여자인데 선뜻 하고 싶었겠는가.
“물론 처음엔 하기 싫었죠. 그래도 프로라면 하기 싫은 것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왕하는 거라면 완전히 망가지더라도 제대로 웃기는 것이
중요하고요. 안 좋게 보는 이도 있지만 다수가 즐겁다면 해야하는 게 상책 아닌가요?”
방송이 나간 직후 타 연예인에게 전화는 물론 싸인공세에 시달렸다고 너스레를 떠는 그녀는 프로의식이 부족한 몇몇 방송인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단지 그녀가 남을 웃겨야 하는 개그우먼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프로’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연극은 배움의 공간
그녀는 늘 준비하는 배우다. 그리고 연기에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 많다. 만약 돈과 인기만을 좇았다면 시간은 시간대로 뺏기면서 돈은커녕
몸만 축나는 연극무대에 결코 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연극무대에 섰다. 1년에 한두편은 꼭 할 거라며 약속까지 한다. 연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생명력이 짧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개인기가 풍부하다고 해도 그건 한계가 있어요. 모든 건 연기력이 받쳐줘야 하죠. 연극은 배움의 공간이에요.”
개그우먼의 고정관념을 깨고 ‘배우’라는 호칭을 얻고 싶다는 그녀는 최종적으로는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목표다. 작년 ‘남남북녀’에서 뒷모습이
예쁜 여자 역말고는 아직 이렇다할 영화에 참여한 적 없는데 언젠가는 ‘웃긴 개그우먼 조혜련’을 이용한 배역이 아닌 극 중 캐릭터에 녹아내린
한명의 연기자로 당당히 서고 싶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끼와 재주는 차치하고라도 열정과 노력만으로도
그녀는 변신에 성공할 것이다. 그녀는 프로니까.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