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실험 이후 가중되는 차별과 맞싸워야했던 재일한국인들, 이들이 북한으로 인해 깊어진 상처를 더는 참지 못하겠다며 거리로 나섰다. 그간 차별로 인한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몸과 마음을 할퀴었다. 이들의 절박한 사연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시사뉴스 이동훈 기자] “북한미사일로 재일교포들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었요. 우린 한국 북한 일본 어디든 속하지 못하는 집시일 뿐이니까요.”
16일 재일교포 등 일본 거주 한국인 2000여명은 도코역 인근 히비야 공원에서 북한이 지난 15일 일본 상공을 지나가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관련해 대규모 시위를 펼쳤다.
이들은 세계평화와 북핵개발의 중단을 염원하는 피켓을 들고 히비야공원에서 긴자까지 40분간 가두시위를 펼쳤다.
이번 시위는 재일교포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졌다. 각자가 속한 모임의 SNS 등을 통해 소식을 알고 처음으로 거리에 나선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 北미사일 발사 때마다, 어린 자녀로 인한 두려움 가중
명분은 북핵개발 중단이지만, 속내는 달랐다. 2009년말 기준 재일동포는 57만 8495명에 이른다. 이 숫자는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지 않고 ‘한국’ ‘조선(*북한)’ 국적을 지키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본에서도 차별받고 심지어 고국인 한국에서 조차 외국인 취급을 받는다.
이들 재일교포들 사이에 만연한 것은 익숙해진 차별이지만, 이제 그 차별을 넘어서 ‘혐한’으로 발전하는 것에 두려움이 컸다.
도쿄 인근에서 왔다는 최윤정(45세) 씨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계속되면 ‘재일교포’들에겐 ‘혐한’이란 올가미가 씌어진다”며 ”특히 그 증오가 아직 어린 아이들을 향한 이지메 등으로 연결될까 가장 두려운 심정이다”고 호소했다.
실제 이번 재일교포들의 시위는 북한 미사일이 일본 영공을 지난 날, 일본 아사히신문이 위기에 사라잡힌 일본인과 비교해 한국인들은 ‘지켜보자’ ‘냉정한 반응’이었다고 보도한 다음날 이뤄졌다. 일본 거주 한국인으로 살아가면서 받은 차별, 그 뿌리깊은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익명의 또 다른 참가자는 “한번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재일 한국인을 증오하는 일본인의 시선은 더욱 늘어만 난다”고 하소연했다.
■ 조선 국적인도 북한 미사일 발사 반대
노구를 이끌고 거리에 나선 조선 국적의 김모(83세)씨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미사일을 쏠때마다 재일 조선인의 생활이 힘들어진다”고 더 이상의 추가도발은 없었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반면 30대 이하 재일교포들은 원성 그자체였다. 이들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희생되는 것은 재일교포들” “북한이 재일 한국인에게 해준 것도 없으면서, 오히려 상처만 주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현재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면서 일본에서는 혐한 시위가 잇달아 열릴 조짐이다. 아베 신조 정권도 북핵 이슈를 놓치지 않고 ‘전후(戰後) 평화주의 체제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시킬 우려도 있다.
이런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역시 바다 건너에 있는 한국과 북한이 아니다. 재일교포들은 1923년 관동대진에서부터 2011년 ‘동일본대지진’까지 일본의 국가적인 재난이 있을 때마다 죄인이 된 것처럼 극심한 차별을 받아야 했다.
이 와중에도 한국과 북한은 재일교포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그 어떤 성명도 발표하지 않고, 일본정부와 국민들에게 인도적인 구호 약속과 함께 ‘애도’ 등을 표했다.
이제 한국 사회도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이유로, 재일교포를 이방인으로 대하는 자세를 벗어나야 한다. 우리 정부와 국민이 나서 북핵사태와 함께 이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일본내 차별을 방지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