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동교동으로 돌아간 김대중 대통령
“ 저는 민주주의와 나라의 발전,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다섯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6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수십 년을 망명과 연금,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일생동안, 특히 지난 5년 동안 저는 잠시도 쉴새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저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민족과 국민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며 남긴 퇴임사의 일부다. 공인으로서 마지막이 될 연설엔 그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그리고 지난
5년 간의 좌절과 환희, 고뇌와 결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제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지난 1998년 2월 25일 대한민국 국가수립이후 최대의 ‘국난’으로 지적된 외환위기 속에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한 김 전 대통령은 경제적
고난과 정치적 격랑이 끊이지 않았던 5년 간의 재임기간을 마치고 평범한 시민으로 되돌아 갔다.
현재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룬다. 정책과 신념이 다른 자민련과의 연합정부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범했기에 그의
개혁정책은 언제나 온전히 추진될 수 없었고, 그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정치적 마찰과 소요는 임기 내내 끊이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보는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본지가 퇴임 3일전인 지난달 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난 5년 동안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은 결과, ‘그저
그렇다’(43.4%)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잘 못한 것보다 잘한 점이 많다’(31.9%)는 응답이 두 번째로 높았다. 다음으로는 ‘
잘못했다’(18.5%), ‘잘했다’(6.1%) 순으로 나타났다. 물론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역사의 몫으로 남겨야 될 것이다.
햇볕은 비췄다
그렇지만 긴장일변도로
흘러온 남북관계를 ‘햇볕정책’이라는 적극적 개입정책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바꿔보려는 그의 노력은 결국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이후 이산가족상봉, 금강산 육로관광 등 남북화해 기반을 구축하는 성과를 이룩했다. 아직 정치ㆍ사회적 논란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훗날 평가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국가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경제외교를 벌이는 등 조속한 경제 개혁과 투명성 확보로 외환위기를 예상보다
빨리 극복했다는 점도 평가받을 부분이다.
또 외환위기의 극복과 구조조정작업 속에서도 인권과 복지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개선작업을 펼쳐,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하고,
가족법과 모성보호법을 재ㆍ개정하는 등 한국이 인권국가로 발돋음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임기말 김 대통령의 두 아들 구속으로 정점을 이뤘던 권력 핵심부의 부패와 독선을 둘러싼 논란과 이에 따른 민심이반 현상은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의미마저 퇴색시켰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