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스펀지 같은 배우 장진영
검은
단발머리에 체크무늬 초미니스커트, 장난기 가득한 미소는 ‘아멜리에’를, 털털한 말투는 ‘반칙왕’의 ‘민영’과 꼭 닮았다. 그런가하면 착 가라앉은
목소리, 깊은 눈빛에서 배어나오는 슬픔과 비밀스러움 또한 그녀의 것이다. ‘국화꽃 향기’ 시사회장에서 만난 장진영은 짧은 인터뷰 동안에도 발랄함과
성숙함 사이를 어지럽게 오갔다.
7년여 동안 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가 어렵게 그 여자와 결혼에 성공하지만, 여자는 암에 걸리고 아이만 남겨놓고 떠난다. 이 한 문장의 스토리만으로도
가슴이 저려오는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장진영은 여주인공 희재를 맡아 눈물을 쏙 뺐다.
“대학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건너뛰며 굴곡이 심한 삶을 표현하다보니 어려움이 많았어요. 슬픔이 차곡차곡 쌓여서 폭발해야 하는데
어디쯤에서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몰라 계속 긴장했죠. 절제하면서도 감정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힘든 작업이었어요.”
그녀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반칙왕’에서 시작된다. ‘반칙왕’은 고상하고 새침한 부자집 딸 같은 상투적 이미지에서 그녀를 구해줬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숨겨둔 면모를 자랑이라도 하듯 코미디와 호러, 로맨틱 등 극과 극의 장르를 오가며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엔, “여배우들이
다 멜로로 출발하는 데 나만 못해 본 것 같아서” 최루성 멜로를 선택했다.
“장면 장면에 깊이 공감해야 눈물이 나오죠. 눈물을 흘리는 건 쉽지 않았어요”라고 말하지만, 주르륵 연신 울음을 쏟아내는 그녀의 눈물 연기는
탁월하다. 새로운 도전이었기 때문일까, 거듭남의 신호일까, ‘국화꽃 향기’ 개봉 소감을 그녀는 “이렇게 떨리긴 처음이에요. 욕심이 생긴 모양인지”라고
말했다.
실제 성격은 털털한 편이지만, 다채로운 장르의 이력만큼이나 감정의 기복은 심하다. ‘국화꽃 향기’의 파트너 박해일은 “후배 연기자를 친동생처럼
대해 긴장을 이완 시켜준다는 점이 다른 연기자와는 사뭇 다른 매력이다”며 편안한 성격을 칭찬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성격을 “쉽게 즐거워졌다가
또 쉽게 가라앉기 때문에 종잡을 수가 없다”고 자평했다.
이 같은 ‘감성의 풍부함’ 덕분에 배역 적응도 빠른지 모른다. ‘국화꽃 향기’가 끝나자마자 그녀는 눈물을 쓱 닦고 ‘엉뚱하고 솔직한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했다. 새로운 작품 ‘싱글즈’는 29살 동갑내기 친구인 두 여자의 연애 방식을 그린 코미디로 장진영은 자신과 닮은 천방지축 ‘나난’을 맡았다.
“매번 최선을 다하지만 항상 보다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정답은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할 뿐. 장진영의 거침없는
인생관이다.
글/ 정춘옥 기자, 사진/ 나경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