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영 신임교육부장관 취임 후 교육부가 발표한 ‘2·17 사교육경감방안’이 교육계에 태풍을 몰고 오고 있다. 공교육 강화의 기치아래 그동안 변칙적으로 시행되어왔던 0교시 수업과 보충수업, 야간자율 학습이 자율(?)이라는 전제아래 허용됐고, 더불어 “단기간에 사교육비를 잡겠다”며 내놓은 비장의 카드는 ‘EBS 수능강의’. 안 장관은 이날 “EBS 강의에서 수능을 출제하겠다”는 폭탄 발표로 학생과 학부모 시선을 일순간에 사로잡았다.
지난 3월20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숙명여고 강당에서 열린 EBS의 수능강의 첫 설명회. 이곳 강당에는 설명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수 천명의 인파가 몰렸다. 마치 대입설명회를 보는 것 같은 열기는 EBS수능강의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케 했다. 설명회에는 주최측이 준비한 1,500석의 두 배인 3,000여명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참석해 복도, 행사장 밖 로비까지 가득 메웠다. 이 열기는 3월22일 강북지역 설명회장에서도 재현됐다. 사교육비와의 전쟁을 선포한 교육부의 ‘EBS 수능강의’ 카드가 “수능출제”라는 약발로 일단 효과를 발휘하는 듯 보였다.
사교육비 단기 경감 대책 ‘EBS 강의’
교육부는 한 해 13조원에 달하는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교육개발원에 사교육비 경감방안 연구를 위탁, 지난해 10월 사교육비 경감방안 1차 공청회를 시작으로 총 5회에 걸쳐 토론회를 여는 등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를 토대로 올해 2월17일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발표한 것.
교육부는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단기적 방안으로 대학입학을 위해 과열돼 있는 학원집중현상을 공교육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EBS 수능강의를 위성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차부터 4차 공청회까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있지 않았던 EBS 수능강의가 5차 공청회에서 잠깐 거론되더니 사교육비 경감방안의 중심 사업으로 부상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나타낸다. 전교조의 한 관계자는 “현 안병영 교육부장관이 1996년 교육부장관 재임시절 EBS 위성방송을 통한 수능방송을 시도했었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된 경험이 있다”며 “이번 사업도 당시처럼 유야무야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사전준비 소홀 곳곳서 문제발생
교육부는 당초 최고 수준의 강사진을 구성해 총51개 과목, 5,105편의 수능강의(중급 3,805편, 초·고급과정 1,300편)를 위성방송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무료서비스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촉박한 시간과 사전조사 미비, 유관기관과의 협조 부족으로 인터넷 강의 부문의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면서 졸속행정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사업초기 교육부는 전국 고교생 및 재수생 등 EBS 강의 대상자를 160만 명으로 추정하고 그 10분의 1에 해당하는 15만 여명이 인터넷 수능강의에 동시접속자로 판단했다. 따라서 교육부는 위성방송과 별도로 진행되는 초·고급 인터넷 강의를 EBS 홈페이지를 통해 5만 명,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에듀넷과 각 시도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10만 명 등 15만 명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에듀넷과 시도교육청 홈페이지의 경우 동영상 강의를 볼 수 있는 전용서버를 갖추고 있지 못해 동시 접속 가능수가 수천명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내린 결정임이 뒤늦게 밝혀졌다. 인터넷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 측에서 웹서버와 동영상 서비스에 필요한 미디어서버를 몰랐기 때문에 발생한 해프닝”이라고 말했다.
이후 교육부는 EBS와 에듀넷의 서버를 확충해 EBS에서 10만명, 에듀넷 1만8,000명 등 11만8,000명이 동시 접속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기로 계획을 수정하고 시도교육청 홈페이지로는 강의를 전송하지 않기로 했다.
익명을 요구한 EBS의 한 관계자는 “정부(교육부)가 다른 사업도 이런 식으로 하는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大役事라고 떠들어대면서 기본적인 조사조차 되어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인터넷 망 서비스 회사의 관계자는 EBS 수능 강의를 “처음부터 단추를 잘 못 낀 사업”이라고 말하고, 자신은 “(태스크포스팀)회의에 한 번 참석하고 빠졌다”며 코멘트 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망 서비스 관계자 역시 “교육부가 인터넷 망 상태나 각급 학교의 PC 환경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성토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교육부는 3월11일 인터넷 주무부서인 정통부의 협조를 얻어 한국전산원, 한국정보보호진흥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LG CNS, KT, 데이콤, 하나로통신, 두루넷 등 11개 민간 유관기관의 전문가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해 시스템 구축과 학내망, 통신네트워크 정송 부문에 대한 기술적 검토와 보완대책에 나섰다.
수능 인터넷 강의는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2가지 방식으로 제공된다. 당초 교육부는 가정에서는 주문형비디오(VOD) 방식을 이용한 스티리밍으로, 학교에서는 다운로드만을 허용했다. 학교에서 다운로드만 허용한 것은 현재 국내 2,100여 개 고등학교의 전산망 시설로는 인터넷 스트리밍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TFT에 참가한 관계자는 “현재 각 학교의 인터넷망은 대부분 2Mbps 이하의 속도여서 300Kbps의 스트리밍을 이용할 경우 최대 7-8명밖에 접속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교육부는 총 47대의 서버중 2대를 각 학교망이 연결돼 있는 ‘국가망’에 다운로드 전용으로 설치, 전국의 2,100 여개 학교마다 ID를 부여해 강의를 다운로드한 뒤 이를 학생들에게 틀어줄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비록 다운로드를 받는다 하더라도 이 강의를 학생들이 시청하는 것도 어렵다. 현재 각 학교에 비치된 컴퓨터 사정은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보통 100대 정도이고, 그나마 학내 랜 망이 10Mbps이하여서 한번에 수용 가능한 인원은 수십명에 그친다. 컴퓨터 사양도 펜티엄Ⅱ급 이하가 대부분이다.
다운로드 받은 300Kbps 화질의 동영상을 TV에 연결해 시청할 경우 화질이 급속히 떨어져 교육효과가 반감된다는 문제도 있다. 결국 학교에서 동영상 콘텐츠를 내려받은 뒤 수백명의 학생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초·고급 위성방송, 개인 다운로드도 허용
교육방송은 3월22일 “당초 중급과정은 위성방송으로, 초·고급과정은 인터넷 강의로 내보내기로 계획을 바꿔 초·고급과정을 위성방송 심야시간대에 송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학교의 열악한 시청여건이 싫어 학생들이 집으로 몰릴 경우 접속 폭주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인터넷 강의의 동시가대 최대 접속인원은 10만 명인데 비해 수강대상인원은 최대 250만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교육방송과 교육부는 부랴부랴 인터넷 강의까지도 위성방송으로 재송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학생들이 잠자는 새벽시간대에 초·고급과정이 방송되기 때문에 가정·학교에서 비디오테이프로 일일이 녹화한 뒤 학생들에게 보여 줘야하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3월23일 교육부는 또다시 수능강의 제공 방식을 변경한 TFT 회의결과 가정에서 스트리밍만 허용할 경우 접속폭주로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자 개인이 가정에서도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방침을 변경한 것이다. EBS는 기존 48대의 스트리밍 장비 중 일부를 다운로드 장비로 전환해 학교망 전용을 제외하고 스트링밍에 80%와 다운로드 20%로 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럴 경우 스트리밍 대신 다운로드로 사용자가 몰릴 경우에는 역시 접속 폭주가 예상된다.
EBS는 수능강의 인터넷 전용사이트 www.ebsi.co.kr에 대한 접속폭주에 따른 서버 다운을 막기위해 오픈 초기에는 만 15-20세, 즉 중학교 1학년부터 고교3년 학생 및 재수생까지만 접속을 허용했다. 그렇지만 학생의 ID를 이용해 학부모들이 다운로드를 받아놓을 가능성도 있어 이 방법 또한 실효성을 거두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강사구성, 교재 저작권 문제
EBS 수능강의를 위한 강사진 구성에도 난항이 거듭됐다. EBS는 3월12일 서울 강남의 유명학원 강사와 고교 출신을 중심으로 29명의 스타강사진을 구성했지만 이들 가운데 일부 강사들과 ‘EBS 수능강의 출연사실의 개인 및 학원 홍보 활용’ 허용 여부와 교재의 저작권·인세 등에 관해 합의하지 못해 막판까지 진통을 격었다.
강사들은 “촉박한 일정 때문에 맞춰 교재를 집필하다보니 교재 내용이 외부 참고서에 있는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해 차후에 저작권 관련 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으므로 EBS가 공동책임을 져 달라”고 요구했다. 또 교재 인세를 몇 %로 할 것인지를 계약서에 명시해야 하며, EBS 출연 사실을 개인 홍보 및 마케팅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한 점은 지키기 힘드니 수정해야한다고 요구했다.
결국 서범석 교육부 차관이 EBS 고석만 사장을 설득한 끝에 3월23일 저작권·홍보 등 강사들 요구조건을 EBS측이 모두 수용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 EBS는 “강사들이 원전·출처를 밝힐 경우에 한해 수용”을 약속했으며, 또 강사들이 출강 사실을 자신이 속한 학원의 홍보에 활용하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다. 인세는 국·영·수는 15만부, 선택과목은 5만부까지 판매되면 1,300만원을 기본적으로 지급하고 그 이상 판매되는 경우 권당 300원씩 추가지급키로 합의했다.
전교조 손지희 정책연구국장은 “남의 책을 베끼거나 짜깁기해서 만든 교재비에 대해 그런 파격적인 인세를 부과하는 것은 국가 정책이 특정인들만을 배불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학원가에서는 벌써부터 EBS를 사칭하는 허위·과장광고와 저작권법 및 상표법 위반 등이 나타나고 있다.
강남일대의 학원에는 ‘EBS 공식 지정 학원’이라는 현수막이 걸어 학생들을 현혹시키고 있고, EBS 수능 강의 해설반을 개설하는 학원이 우우죽순으로 늘어나면서 사교육을 더욱 부추기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강남의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발견되고 있지 않지만 EBS 수능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심야반 새벽반등 다양한 편법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겠다는 취지로 많은 예산을 들여 시행된 EBS 수능강의가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학생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주고, 학부모들에게는 더 많은 사교육비를 부담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인 터 뷰 | 전교조 정책연구국장 손지희 씨 |
전교조 손지희 정책연구국장은 EBS 수능강의가 고속전철과 같은 맥락에서 총선을 의식한 정부의 선심성 정책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996년 안병영 현 교육부장관이 첫 번째 교육부장관에 재직할 당시 실시했던 EBS위성방송이 1년도 채 안돼 흐지부지 된 사례를 들며 “이번 수능강의 역시 실패할 수 있다”고 말했다. EBS 수능강의가 인터넷 강의의 기술적인 문제로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