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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진걸아, 지긋지긋해질 때까지 우리 데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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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넌 열일 제쳐두고 반성부터 심각하게 해야 돼. 며칠 전 당국이 널 감옥에 잡아 가둔 건 차라리 다행한 일이야. 천둥벌거숭이처럼 뛰어다니지만 말고, 이번 기회에 생각 좀 해봐. 시민운동가들이 모여 석방대책위원회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거기에 끼어들어 네 석방 따위를 요구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 굳이 석방을 촉구하려면 그건 촛불시민들을 위한 것이어야겠지. 넌 그저 그 곳에서 책도 읽고 좌선도 하면서, 시민운동가의 역할과 자질에 대해 성찰이라는 걸 한번 해봐.
도대체가 말이 되느냔 말이야. 지난 10년 동안 너는 시민운동에 매진했잖아. 그것 말고 달리 한 게 없잖아. 그런데 가히 ‘운동 전문가’라 할 만한 네 지성과 감성이 이번 촛불집회에 기여한 바가 뭐 있느냐고. 집회 사회도 보고, 거리행진도 이끌었다고 말하고 싶겠지. 다시 물어볼게. 그거 정말 네가 한 거야?
거리와 광장을 채운 촛불 시민들의 상상력을 봤지? 하나의 거대한 문화공연과도 같았던 그 기발함과 발랄함을 봤지? 어느 운동가보다 단호하게 발언하고, 어느 교수보다 분명하게 논리를 밝히는 고등학생, 주부, 대학생, 직장인들을 봤지? 넌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그런 식으로 데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있어? 넌 도대체 뭘 했냐고. 시민운동가로서 이번 촛불집회에 대해 책임질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거, 이거 부끄러운 일 아닐까? (이쯤에서 너는 기자로서의 내 구실에 대해 따지고 싶겠지만, 흠흠, 오늘은 네 이야기만 하도록 하자고)
하긴, 우리가 기억하는 데모란 그저 숭고하고 치열하고 엄숙하고, 그리하여 절망적인 그런 것들이긴 했지. 너와 내가 만나 이 기묘하고도 질긴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그 치열하여 절망적이었던 ‘데모들’의 기억 때문이잖아.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9년, 전교조가 만들어졌지. 너는 광주에서 나는 대구에서 전교조 선생님들을 지킨답시고 데모 흉내를 냈지. 그때 우린 촛불집회 같은 건 생각도 못했지. 고작해야 종이비행기를 접어 교실 밖으로 던지거나,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시국 집회의 한켠에 모여 앉는 따위가 전부였지.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날, 교문을 붙잡고 엉엉 울어버린 게 우리의 마지막이었지. 우리는 누구에 맞서는 것인지도 잘 모른 채 그저 항의하고 분노했지. 어떤 친구는 퇴학당했지. 어떤 친구는 스스로 학교를 그만둬 버렸지. 어떤 친구는 항의 유서를 남기고 투신하여 목숨을 끊었지. 그리고 우리는 또 울었지.
그때 기억나지? ‘교사는 노동자’라고 말하는 전교조 교사들은 모두 빨갱이다. ‘참교육’이란 중고생들을 의식화시키려는 책동이다. 조선일보가 그렇게 대문짝만하게 썼잖아. 교사와 학생들의 집단행동에 처음엔 주춤했던 정부도 보수 언론들의 보도를 계기로 전교조 교사들을 모조리 해직하고 그것도 모자라 감옥에 집어넣었잖아.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 데모 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라는 걸, 사춘기 시절에 알아 버렸지. 올바른 것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돼 버렸지.
대학 신입생이던 1991년, 그 해 봄을 잊을 수가 없지. 3월부터 6월까지 10여명이 죽었어. 고등학생, 대학생, 노동자가 죽었지. 시위하다 전경에 맞아 죽고, 거기에 항의해 투신 또는 분신하여 죽었지. 일주일에 한명씩 죽어나가는 거리에 나가려면 말 그대로 죽을 결심을 해야 했지. 그 시절엔 밤이 되면 라이터를 켰어. 종로를 메운 군중이 구호를 외칠 때마다 무수한 별빛처럼 명멸했던 라이터 불을 보며 우리는 환호했지. 해직된 옛 선생님들도 만났지. 이젠 대학생이 된 제자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선생님들도 함께 데모를 했지. 87년 6월 이후 최대의 인파라고, 드디어 뒤집어진다고, 우리는 흥분했지.
그 다음의 일도 기억나지? 다시 한 번 조선일보가 ‘죽음의 굿판’ 운운하며 우리를 악의 화신으로 만들었지. 동료의 투신자살을 부추겨 유서까지 대신 쓰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빨갱이들이라고 몰아갔지. 각계각층에 주사파가 침투해 있다고 선전했지. 장관에게 계란과 밀가루를 던지는 대학생들을 희대의 패륜아라고 손가락질했지. 공권력이 대학생을 때려죽일 때, 우리는 왜 밀가루조차 던지면 안 되는 것인지, 우리는 정말 알지 못했지. 그리고 거짓말처럼 세상은 조용해졌지. 신문과 방송은 소련의 붕괴를 축하하고, 빨갱이들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했지.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둔 1996년, 아마도 90년대의 진정한 마지막이라 할 만한 그 때, 우리는 연세대에 있었지. 조선일보는 한총련 출범식에 모여든 대학생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주사파 집단으로 매도했지. 일본 전공투와 비교하면서 극렬 테러집단으로 몰아갔지. 경찰은 들어오는 길, 나가는 길을 통째로 막았지. 배가 고파도 먹을 것조차 없었지. 그렇게 열흘 동안 학생들을 굶겨 힘을 빼고, 일시에 진입해 모두 잡아갔지. 몰아놓고 때려잡는 토끼몰이식 진압의 초대형 버전이 그때 만들어졌지. 10여대의 헬기를 띄워 사실상의 군사작전을 펼쳤지. 그렇게 5800명의 학생들이 일시에 끌려갔지. 우리 같은 놈들을 선배라고 믿고 따라온 1학년, 2학년 후배들이 많이 잡혀 갔지. 선배들은 분해서 울었고, 후배들은 무서워서 울었지.
다시는 데모 같은 거 하지 않겠다고, 자아도취에 불과한 시위 따윈 아예 때려 치고, 진짜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만한 일을 하겠다고. 우리는 결심했지. 너는 시민운동을 택했고, 나는 언론을 택했지.
그리하여 진걸아, 너와 내가 기억하는 모든 데모는 장렬했지만 절망적인 것이었지. 우리는 청바지에 청재킷을 입고 번개처럼 달려와 시위대의 머리를 잡아채 강력한 헤드락을 걸고 니킥으로 명치를 가격하는 백골단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지. 닭장차에 갇히는 순간 시작되는 전경들의 무수한 발길질이 왜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지 잘 알지. 누구건 마음만 먹으면 빨갱이로 낙인찍어 감옥에 보내버리는 조선일보가 얼마나 거대하고 강력한지를 잘 알지. 공안정국이 일단 시작되면, 세상 모든 항의의 목소리가 통째로 사라져버린다는 것도 잘 알지. 그게 보수정치의 본질이라는 것도 너무너무 잘 알지.
1998년 초, 너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 기억을 모두 나누고 있었지. 80년 광주항쟁처럼 시대를 넘어 추앙받지 못하고, 87년 민주항쟁처럼 승리의 기억으로 뭉친 하나의 세대를 낳지도 못했던 너와 나의 그 ‘데모들’은 오직 우리끼리만 서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이었지. - 거대한 절망. 그것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지. 아무도 우리의 비극을 모를 거라고 제 슬픔에 취해 술잔을 기울였지.
나는 말이야, 진걸아. 촛불시민들이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어떨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아마 잘 안될 거야.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나는 지금도 가끔 울컥해. 나이를 먹어 그런지, 예전처럼 눈물이 막 쏟아지고 그러진 않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앞이 흐려지는 일이 많아. 절망하는 게 아니고 말이야, 위로받는다는 생각, 드디어 우리의 그 불행한 ‘데모들’이 위안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야.
촛불시민들은 사제단의 미사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고 하지만, 실은 바로 그들이 우리에게 마음의 평온을 주고 있는 것 같아. 그렇구나. 데모는 엄숙하고 장렬하여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기쁘고 발랄하고 상쾌한 어떤 것이었구나. 바로 그래서, 성취하여 얻는 바가 적어도 데모 자체로 즐겁고 행복한 것이었구나. 그런 ‘행복의 힘’이야말로 조선일보와 정치검찰과 백골단과 청와대를 모두 넘어서는 원천이구나. 그걸 모르고 우리는 그저 죽을 결심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구나. 진정한 운동이란, 그 성취가 대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행복해야 하는 것이구나. 대통령이 항복할까 하지 않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우리 같은 옛날 데모쟁이들과는 달리, 이들 촛불시민들은 오늘은 어떻게 보다 새롭고 즐거운 방법으로 거리와 광장에서 시간을 보낼까를 고민하는구나. ‘해방구’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여 권력자들을 몰아낸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자리한 해방의 욕망을 끄집어내어 표현하는 바로 그 시간과 공간을 일컫는 것이구나. 뭐, 그런 상념 끝에 또 한 번 감상에 젖어 울컥하는 것이지.
시민운동가와 언론인으로서 너와 나는 이제 촛불시민들의 앞길을 진지하게 고민해야겠지. 그게 우리의 몫일 테고. 그렇지만 말이야. 그런 짐을 잠시 벗어놓고, 그저 이 촛불의 물결에 지친 몸과 마음을 맡기고 그 해방감을 만끽하는 것이 더 중요할 지도 몰라. 어쩌면 지도가 필요한 것은 촛불시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일수도 있으니. 우리의 내면에 자리한 공권력에 대한 공포, 보수언론에 대한 열등감, 정치권력에 대한 집착 따위의 ‘80년대식 트라우마’를 모두 벗어던지는 촛불의 의식화를 먼저 거쳐야 할 것 같아.
그럴려면 우리 데모 좀 더해야겠지? 무슨 해결책 따위를 성급하게 기대하기 전에 너와 나는 케케묵은 20세기의 허물부터 벗어 던져야겠어. 그러니 진걸아, 나와라. 공부 좀 하고 난 다음에 감옥에서 나와서 거리에서 만나자. 그리고 지칠 때까지, 우리의 몸과 마음이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을 때까지, 실컷 데모하자. 저들이 말하는 질서와 평화 따위는 그런 걱정에 날밤을 새는 저들에게 줘버리고, 우리는 해방구의 질서와 평화를 단 며칠이라도 좋으니 조금 더 누려보자.
권력을 얻어 그 권력으로 인해 자유로워질 것을 기대하기 전에,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유쾌하게 만드는 진짜 데모의 기억을 만들자. 가난하고 초라한 지성과 감성을 가진 탓에 이 촛불의 물결에 조금도 보탬이 된 바 없는 듯 하여 더욱 쑥스럽고 미안한 나는 그저 그런 정도의 소박한 기대만 갖고 이 여름을 버티려 해. 그러고 나면 아마도 가을 무렵엔 조금 더 깊은 혜안이 생기지 않을까, 장담하기 힘든 그런 희망도 곁들여서 말이야. 천둥벌거숭이 같은 시민운동가 안진걸도 아마 나와 비슷할 거라고 믿어.
술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것 말곤 닮은 데라고 하나도 없는데도 사람들이 우리 둘을 자꾸 비교하려고 하여 서로 기분이 많이 나쁜, 참여연대의 안수찬, 너 안진걸에게 한겨레의 안진걸, 나 안수찬이 보낸다. 씩씩하게 잘 지내라.

* 본문은 안진걸 씨의 편지의 답장입니다.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 본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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