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대한 치밀한 보고서
박찬옥 감독의 일상과 내면에 대한 성찰‘질투는
나의 힘’
한 남자에게 두 번이나 애인을 빼앗기는 난처한 삼각관계에 빠진 청년의 심리를 다룬
‘질투는 나의 힘’은 표면적으로는 잔잔하지만 내적으로는 격렬한 영화다. 물밑에서 일어나는 요동과 균열을 읽어내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지만,
그 과정이 당혹스럽거나 불편할 수도 있다. 관습적인 영화의 장치를 버리고 관객의 감정이입을 유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질투는 나의 힘’은 홍상수 영화를 연상시킨다. 특히 일상에 대한 진득한 묘사와 표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카메라의 눈만으로 본질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영상언어는 상당히 닮았다. 실제로 박찬옥은 ‘오!수정’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찬옥은 홍상수와 분명
다르다. 이 차별점이 곧 박찬옥 영화의 정체성이다.
홍상수 감독이 처절한 일상에 대한 꾸밈없는 응시로 곤혹스러운 진실을 찾아낸다면 박찬옥은 인물의 내적 풍경을 애정으로 파헤쳐, 관찰자적 시선으로
드러낸다. 한마디로, 홍상수 영화의 인물들이 너무 적나라해 민망하고 뜨끔하다면, ‘질투는 나의 힘’의 인물은 적나라해서 사랑스럽다.
사소한 일상, 사소하지 않은 감독의 눈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에 불과하다. 애인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는 말을 들은 청년(박해일)은 자신의 연적인
유부남(문성근)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의 주변을 맴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자유분방한 여자(배종옥)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문제의 유부남에게
또다시 그녀마저 뺏길 위기에 처한다.
독특하지만 그다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스토리. 하지만, 영화는 묘하게도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시나리오는 빈틈없고, 대사는
절묘하고 재치있다. 엉뚱한 상황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감독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모든 설정과 장치는 현실적이다.
영화는 부조리한 인간 심리와 인간관계에 대한 치밀한 관찰 기록이며, 동시에 청춘과 질투에 대한 보고서다. 상황은 사소한 일상의 연결이고
캐릭터는 자기 자신, 혹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 인물에 불과하지만 불안정한 인물의 밑바닥을 그리는 감독의 솜씨는 평범하지 않다.
문성근 연기는 ‘충격’
박해일이 연기한 이원상은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는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의 영락없는 화자다. 이원상이 청춘의 자화상이라면, 문성근이 연기한 한윤식은 중년의 자화상이다. 자기 한계를 인식하고 로맨스에
매달리는 한윤식은 자기중심적임에도 불구하고 나약함과 천진함을 지닌 미워할 수 없는 인물. 배종옥이 맡은 박성연도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분방하지만
늘 고독하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원망과 교감의 넘나듦은 인간관계의 속성을 정확하면서도 다양하게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는 거기에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크린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배종옥은 매력 넘치는 연기를 펼쳤고, 신인배우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숙성된 면모를 보여준
박해일은 충무로의 차세대 주자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님을 확인하게 한다. 무엇보다 문성근의 또 다시 자기 틀을 깨는 연기는 영화 내내 충격이다.
느끼하고 뻔뻔스러운 중년 남성의 표면부터, 쓸쓸함 가득한 연약한 내면까지 훌륭하게 표현했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 아시아 신인작가상’과 로테르담영화제 ‘타이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시작한 ‘질투는 나의 힘’은 ‘한국영화의
힘’과 미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새로운 작가의 탄생에 박수를 보낸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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