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전 초기 이라크군의 거센 저항에 발목을 잡힌 미ㆍ영 연합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개전
보름 만에 바그다드로 진격해 들어갔다. 일진일퇴를 거듭했던 바그다드 전투는 결국 연합군의 승리로 판가름 났다. 24년 후세인 정권이 드디어
무너졌다. (지난호에 이어 이라크전 상황을 마감일인 4월 10일까지 일지형식으로 담아 보았다.)
3월 27일 장기전으로 전환
이라크에서 교착상태를 깨뜨릴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미군이 제4보병사단 등 3만여 병력을 이라크 전장에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미군
사령관들은 악천후와 길고 불안한 보급선, 이라크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인해 예상보다 훨씬 더 길고 힘겨운 전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미군은 이탈리아 비첸차 기지에 주둔해 있던 173공수여단 소속 1천명을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에 투입해 비행장을 장악했다. 이는
중부 카르발라 부근에 포진한 제3보병사단, 동남부 쿠트 방면으로 진출한 제1해병원정대 등과 함께 세 갈래 방향에서 수도 바그다드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3월 28일
이라크 침공이 2주째로 접어든 이날 바그다드, 남부 나시리야 등 이라크 남·중·북부 전장 곳곳에서는 지상전투가 재개됐다. 남부에서는 미군과
이라크 민병대와의 교전으로 미 해병대 병사 14명이 다치고 12명이 실종됐다. 미군은 이날도 바그다드의 이라크군 지휘센터와 공화국수비대의 주둔지인
시 외곽에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한편, 이라크군의 저항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교착상태에 빠진 미국은 12만~13만 명의 병력을 이라크에 추가로 파병하기로 하는 등 애초의
속전속결 전략을 수정해 중장기전에 대비한 대규모 전력증강에 나섰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며칠 안으로 파병되는 제4보병사단 등 3만 명에 이어 또 다른 지상군병력 10만 명을 다음달 이라크에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가병력이 예정대로 배치되면 이라크에서 작전을 벌이는 미군병력은 현재의 9만 명에서 모두 21~22만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3월 29일
이라크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고전해온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대규모 지상전에 앞서 바그다드를 비롯한 이라크 전역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잇달아 감행했다.
연합군은 이날 하루 동안 이라크내 지상군을 지원하기 위해 700곳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고, 이 가운데 약 200곳은 ‘사전 계획된 목표물’에
대해 이뤄졌다.
이런 가운데 이라크 중남부 전선에서는 미 해병대와 이라크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고, 남부 바스라 외곽을 장악한 영국군은 이 도시를 탈출하려는
민간인 1천여 명을 공격하는 이라크 민병대에 맞서 난민탈출 지원작전을 펼쳤다.
3월 30일 딜레마에 빠진 미국
개전 11일째인 30일 미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지지부진한 지상작전 때문에 미군은 공습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지만 공습에 따른 많은
민간인 희생자 발생이 불가피하다는 게 미군의 딜레마다.
바그다드 진격을 일단 멈춘 미군과 영국군은 중·남부 지역에서 이라크 비정규군과 전투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전투는 미군의 보급선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적 성격이 강하며, 뚜렷한 성과없이 지루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남부 최대도시 바스라에선 영국군이 공세를 펼치고는 있지만 시내의 주요 목표물을 타격한 뒤 바로 빠져나오는 데 그치고 있다. 이에 비해 이라크는
자살폭탄공격 등 더욱 다양하고 매서운 반격을 하면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
3월 31일 민간인 학살
미군이 이라크남부 나자프시 검문소에서 제지명령에 응하지 않은 차량에 발포, 어린이를 포함해 민간인 7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했다. 이번 사건은
이라크군의 자살폭탄 공격 이후 가장 우려돼왔던 민간인 학살이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참사라고 할 수 있다.
도시나 마을을 거점으로 게릴라 전술을 펴는 이라크군과 민간인들은 구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런 참사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4월 1~ 2일 바그다드로 좁혀지는 공세
미군은 바그다드 남쪽 80~160㎞ 지점에서 이라크 최정예 공화국수비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으며, 바그다드 진격을 위한 본격 공세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미군 제3보병사단 7기갑연대는 1일 밤부터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80㎞ 떨어진 카르발라 일대에서 이라크의 메디나 사단과 전면적 교전을 벌였다.
미 제1해병사단은 바그다드 남동쪽 쿠트에서 견고한 방어선을 치고 있는 공화국수비대 바그다드사단과 충돌했다. 미군은 또 중부 나자프와 디와니야,
남부 나시리야 부근에서 이라크 비정규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영국군은 남부 최대도시 바스라의 남쪽과 서쪽에서 치고 빠지기식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4월 3~4일 바그다드 “돌파”, “봉쇄” 딜레마
미 지상군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30㎞ 지점까지 바짝 진격하면서 미·영군이 전술채택의 기로에 섰다. 곧장 돌파해 시가전을 감행할지,
아니면 추가병력을 기다려 포위·봉쇄 작전에 들어갈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가전을 할 경우 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추가 병력을 기다려 몇 주 또는 몇 달을 끌지도 모르는 포위전을
벌이는 것도 미ㆍ영군으로선 부담이다. 바그다드를 압박하는 동안 내부봉기가 일어나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기를 바라는 것이 미국으로선 최선이지만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편, 며칠째 중부도시 카르발라ㆍ쿠트 일대에서 이라크군과 격전을 벌이던 미 지상군은 이날 진격 속도를 한껏 올렸다. 이런 빠른 진격과 공세는
이라크군의 바그다드 집결을 저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며칠째 완강히 저항하던 이라크군이 이날 바삐 바그다드
쪽으로 퇴각하자 미ㆍ영군은 공중과 지상에서 이동하는 이라크군에 집중 포격을 가했다.
이라크군은 최근 북부 모술에 있던 아드난 사단을 남쪽으로 이동시켜 니다 사단과 함께 바그다드 동ㆍ서쪽 경계선에 자리잡게 하고 병력을 도심 교차로에
배치하며 바그다드 수비 전력을 강화했다.
4월 5~6일 “바그다드로 진격”
5일 오전(현지시간) 미군이 수십 대의 탱크를 앞세워 바그다드로 진입, 본격적인 바그다드 점령작전에 들어갔다. 또 이날 진입과 동시에 연합군은
바그다드 중심부와 외곽에 대한 공습을 재개했다.
미군은 바그다드 중심부에서 약 10㎞ 떨어진 시내까지 도달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진격중 이라크군과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면서 미군측 희생자도
발생했다.
하지만 이라크측 움직임도 바빠져 바그다드 중심부에는 처음으로 페다인 민병대가 집결, 결전을 준비했고 이라크 정부는 전날 미군이 점령한 사담
국제공항을 재탈환했다.
4월
7일 전차에 유린당한 바그다드
전쟁 19일 만에 사담 후세인 정권의 최후 보루였던 수도 바그다드 중심부가 연합군 전차부대의 진격에 처참하게 유린됐다.
1백30여대 미군 전차부대는 새벽 바그다드 남동부에서 북동쪽으로 시내를 가로지르는 기습적인 진입 작전을 펼쳤다. 미군 F-16 전투기와 A-10
공격기들은 전차부대 진입에 앞서 바그다드 상공에서 근접 항공지원작전(CAS)을 펼치면서 이라크군 공화국수비대의 탱크ㆍ장갑차에 대한 집중 공습을
단행했다.
이날 미군이 점령한 대통령궁은 티그리스 강변의 알시주드궁, 공화국궁 등 두 곳과 사담 국제공항 인근 아부 구라이브궁으로 알려졌다.
4월 8일 후세인궁 주변에서 포격전
미국과 영국 연합군은 지난 7일 장악한 대통령궁 주궁을 거점으로, 티그리스강 동안으로 연결되는 주요 다리를 장악하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연합군은 이날 바그다드 남동부의 라시드 공군기지도 점령해 바그다드 동쪽 지역의 이라크군을 압박했다. 이에 맞서 이에 맞서 이라크군은 대포 등으로
저항해 미군의 바그다드 중심부 진입 이후 가장 격렬한 교전이 벌였다.
4월 9일 바그다드 함락
미군은 9일 바그다드 중심부의 장악지역을 확대하기 위해 이라크군과 치열한 도심 시가전을 벌이면서 바그다드 북쪽과 남동쪽에서도 포위공격을 개시,
시내 전역으로 전선을 확대했다.
미 제1해병원정군은 바그다드 중심부에서 남동쪽 5㎞ 떨어진 알-라시드 공항을 전날 접수한 데 이어 디얄라강을 넘어 도심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해병대는 이 과정에서 병력 3천여 명이 사용할 수 있는 탄약을 노획했고 교도소 하나를 장악했다.
한편, 후세인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이라크 및 아랍 민병대 일부 병력이 전세가 극히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 바그다드 동부의 알-줌후리야 교량에서
미군에 맞서 완강히 저항했다.
그러나 이날 정오께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와 민병대의 저항은 더 이상 없으며 바그다드 시내의 모든 전투가 끝났다. 이라크전을 지휘하는 미군 중부군
사령부도 이날 바그다드에 대한 이라크 정권의 지배가 종식됐다고 선언했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