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영화와 심리학의 기묘한 동거
임상심리학자 출신 평론가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
자기소개서 취미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인터넷 동호회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정답은 ‘영화’다. 영화는 이제 현대인의 취미생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로 자리잡았고, 대중문화의 정점으로 부상했다. 아마추어라고는 보기 어려운 예리한 영화평들이 즐비하고 누구나
“그 영화는 말이야”하면서 자신의 감상을 피력한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기에 당연히 영화관련 서적도 매일 엄청난 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영화를 심리적 비평방법으로 해석한 흥미로운 서적이 나와 눈길을 끈다.
왜 살인범은 토막을 낼까?
영화평론가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저자 심영섭은 서강대 생명공학과를 거쳐 고려대 심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 한양대 신경정신과와 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각각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친 임상심리학자다. 때문에 저서 ‘시네마 싸이콜로지’는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취미수준을 넘어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현학의 허세를 부리거나 매니아층을 겨냥하는 대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유쾌하게 풀어간다.
책은 ‘성과 사랑의 이중심리’ ‘인간관계 속 불안과 절망의 심리’ ‘상징의 메시지 탐구’ ‘집단과 개인의 무의식을 찾아서’의 4부분으로
구성됐다.
특히 ‘인간관계 속 불안과 절망의 심리’에서는 연쇄살인범과 달리 토막살해범이 대부분 초범이면서도 왜 토막이라는 잔혹한 방법을 택하게 되는지,
부족할 것 없는 부유층 인사가 왜 강간을 저지르는지, 자신의 영화 속에 끊임없이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불어넣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보상심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 흥미롭게 분석했다.
다리 위에서 자살을 결심하는 이유는?
올드 팬들의 뇌리에 생생한 영화 ‘애수’에서 전장으로 애인을 보낸 후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던 마이라(비비안 리)는 워털루 다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영화 ‘걸 온 더 브릿지’의 여주인공 아델(바네사 빠라디)도 세느강 다리 위에서 자살을 결심한다. 왜 사람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다리로 달려가는 것일까?
저자는 “상징체계로 볼 때 다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 마음속에 삶과 죽음을 경계짓는 통로로 표상돼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리는
천계와 이승, 인간과 신의 결합을 통한 다른 차원으로의 이행을 상징하며 진실에 이르는 길을 비유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심리적 원형성을 지니고 있기에 영화 속 사람들이 다리에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저자는 유명한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에서 여배우가 욕실에서 샤워하다 살해당한 후 그녀의 눈을
마치 하수구처럼 표현한 장면을 지적하며 “인간의 눈이야말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시각적 하수구, 즉 관음증의 통로”라고 정의했다. 그 외에
손가락, 빨간색, 가면, 흰눈 등 영화 속 단골 소재의 상징성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다.
‘심영섭’이라는 이름이 ‘영화와 심리를 섭렵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듯, 저자는 심리학적 지식을 이용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심리를
파헤치기도 하고 인간의 심리를 영화를 통해 꿰뚫어보기도 하며 영화와 인간 심리에 대한 지식을 친절하고 풍부하게 전달한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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