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와 한국형 블록버스트의 문제점
헐리우드 흥행 요소들의 밋밋한 버무림
지하철 그대로 옮긴 ‘드림세트’는 볼거리
개성적인
문체로 이름을 날린 한 소설가가 이런 고백을 했다. 한때 책을 팔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베스트셀러들을 몽땅 사서 밤잠 못 자고 연구해 팔리는
책의 공식을 만들었다. 대중이 좋아하는 소설은 일정한 공식이 있고, 그 룰에 맞춰 소설을 쓰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기대였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소설은 평론가에게 비난받고, 대중에게도 외면 받았다.
이런 상황은 한국형 블록버스트에게도 절묘하게 적용된다. ‘쉬리’ 이후 우후죽순 쏟아진 충무로 블록버스트들은 헐리우드의 흥행공식을 분석하고
연구해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그 소설가의 경우처럼 비참했다. 흥행에 안전한 공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최소한 한 스푼 정도는 더 첨가돼야 한다. 더구나 볼거리에서 헐리우드를 넘어설
수 없는 한국의 블록버스트에서 ‘한 스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오락적 재료를 몽땅 넣어 버무린 ‘튜브’ 또한 작품성만 놓고 볼 때는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최소한 그런 인기 요소들이 왜 관객을 열광시키는지에
대한 통찰만이라도 있었다면 한 발짝 앞서간 영화가 됐을 것이다.
아무리 뒤져도 찾기 어려운 독창성
한국형 블록버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한 스픈’은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물론, 헐리우드 블록버스트에서도 좋은 시나리오는 성공의 지름길이다.
하지만 헐리우드는 볼거리로 시나리오의 엉성함을 막을 수 있는 구석이 충무로의 경우보다 월등하게 높다.
뻔한 이야기 구조에서도 빈틈없이 짜여진 시나리오는 빛을 발한다. 좋은 시나리오는 ‘한 스픈’이 아니라 ‘80 스픈’ 이상의 진가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별볼일 없어도 오락영화로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
한국적 설정과 상황은 관객에게 헐리우드적인 액션의 리얼리티와 화려함 없이도 몰입을 이끌어내는 좋은 요소다. 한국적인 액션 또한 마찬가지.
결국 헐리우드를 모방하더라도 독창적인, 혹은 일상적인 한국적 냄새를 가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관객이 충무로 블록버스트를 볼
이유가 없어진다.
탈취된 지하철을 세우려는 한 형사의 목숨을 건 사투를 담은 ‘튜브’는 인상적인 헐리우드 액션 장면들의 조합이다. ‘미션임파서블’ ‘머니트레인’을
연상시키는 기차 매달리기, 열차 밑판 통해 객차 들어가기 등의 액션은 그럴듯하게 살려냈 지만 이미 식상한 설정 때문에 힘을 잃는다. 광기로
가득한 테러리스트와 경찰의 대립구도는 ‘스피드’, 공권력과 지하철 통제실장의 갈등은 ‘아마겟돈’, 주인공의 영웅적 희생은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떠올리게 한다.
충무로 블록버스트는 여전히 과도기
8억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냈다는 지하철 세트와 총격을 마구 가하는 액션씬 등 볼거리는 나름대로 갖추었다. 하지만, 황당하고 어설픈 설정은
관객이 액션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승객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는 통제실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철을 세우는 장면은 관객을 허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참변을 예고해놓고 전철에서 내려온 승객들이 어떻게 됐는가에 대한 설명은 전혀 하지 않음으로 관객의 긴장감은 확실히 무시된다. 마지막 장면
또한 왜 장도준이 희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눈물을 강요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시나리오가 엉성하고,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상황에 실소를 머금게 하는 부분도 많다. 헐리우드를 모방한 듯한 배우들의 연기도 관습적이고
특색 없다.
CF 감독 출신이자, ‘쉬리’의 조감독이었던 백운학 감독은 ‘튜브’에서 ‘쉬리’처럼 액션과 멜로를 결합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액션과 멜로가
어정쩡하게 결합하며 밋밋한 영화를 만들었다. 돋보이는 점은 CF적인 깔끔하고 세련된 영상감각과 음악의 적절한 사용이다.
‘사는 게 뭐 별건가, 그가 내게 보여준 달콤한 기억하나면 그만이지’ ‘때론 세우지 못하는 열차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등의 대사들도 지나치게
멋내기 용도로 사용된 느낌이지만 간결하다.
여전히 충무로 액션 블록버스트가 헐리우드를 답습하는 과도기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점이 씁쓸하지만, 한국영화의 기술적 발전에 ‘튜브’가
또 하나의 밑거름으로 작용하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단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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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그 조용한 공포·다크니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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