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국내 경제
경제위기 처방약, “이번엔
일관성 있게”
{ | 경제고통지수 증가, 실질 국민총소득 마이너스… 정부, 추경편성 및 부동산·신용카드 등 대책 마련 | } |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은 가운데 경기가
침체 상태다. 전망도 어둡다. 두산중공업 사태, 철도 분규, 화물연대 파업 등 굵직한 노동 관련 사건들이 일시적으로 경제 사정을 악화시키기도
했고, 외국기업이 투자에 회의를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또 부동산 거품이 버블경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카드사용의 남발로 가계부채는
쌓일 대로 쌓였다. SK는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상태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어려운 난제를 만났다. 해결의 실마리를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지 난감하다.
추경보다 경제위기 직접 원인 처방 필요
한국의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 지수는 어느 한 시점의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값이다.
한 마디로 경제에 있어서의 불쾌지수다.
경제고통지수는 경제위기론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점차 다시 높아지고 있다. 올 1월에는 7.3이었고, 3월에는 8을 넘어섰다.
현재의 경제 사정으로 보아 점점 더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이미 마이너스 상태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 증후군)가 사라진다 해도 수출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전망이다.
실업률도 3개월째 3.5%대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7%대에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정부는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4조1,775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의결했다. 기획예산처는 이번 추경예산으로 국내총생산을 0.5%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추경을 통해 4%성장을 이루겠다는 생각이다. 청년 실업률도 0.7%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추경 편성에 대해 비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경기에 직접적인 자극을 준다는 측면에서는 추경이 감세보다 낫지만 추경으로는 전체
경기흐름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따라서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서 처방해야만 경제가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제위기는 미시경제 등한시한 결과
미시경제를 등한시한 결과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부동산 위기, 카드 문제 등 서민들의 생활 경제가 무너졌다. |
전문가들은 경제목표를 너무 거시적으로 세우다보니 미시적인 부분이 등한시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결과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부동산 위기, 카드 문제 등 서민들의 생활 경제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과 카드채 문제 등이 발생하면서 시장전반에 불안감이 확산됐다. SK글로벌 사건은 우리 기업 경영의 투명성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고, 자금시장의 경색을 불러왔다. SK글로벌이 발행한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의 부실화 우려 등으로 투신사의 수익증권 등에
대한 환매요청이 급증해 채권금리가 급등하고, 투신사의 자금수급에 차질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무분별한 카드발급으로 연체율이 높아지고 신용불량자도 급증했다. 신용카드 연체율은 지난해 12월, 6.6%에서 올 4월에는 10.9%로 증가했다.
신용불량자수 역시 같은 기간 264만 명에서 309만 명으로 겨우 4달 사이에 45만 명이 늘어났다. 자금시장이 경색된 가운데 카드사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돼 결국 카드채의 발행과 유통이 중단됐고, 이 여파로 채권시장 전반이 급격히 경색된 상태다.
주택가격도 급등했는데 이를 남의 일처럼 등한시했다. 투기꾼들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활개를 쳤다. 시중 은행의 돈은 이들 투기꾼들의 투기자본으로
탈바꿈됐다.
“정부 사후약방문 격 대처”
이병천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는 “은행이 본연의 산업
금융 역할을 잊고, 가계와 부동산 대출 업무에 주력하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참여 정부가 이런 경제위기 상황에
대해 사후약방문 격, 임기응변 격 이상의 대처 방식을 보이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금융시장의 경색을 가져 온 원인 가운데 하나인 SK글로벌 사건과 관련해서도 “문제의 핵심은 책임 없는 지배권이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분식회계, 계열사 부당 지원 등 재벌의 불공정 행위가 자행돼 기업의 체질이 약화되게 됐다는 것. 그 결과, 겨우
1,500억 원이라는 적은 돈 때문에 한국 재계 3위 그룹의 경영권이 송두리째 외국계 기업사냥꾼의 손에 넘어가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교수는 “책임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무분별한 ‘금융
자유화’ 정책을 실시할 게 아니라, 은행 금융이 산업 금융으로 흐르도록 국가가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로 “시장
특유의 불안정과 투기적 단기주의, 그리고 무분별한 M&A의 위협을 제어할 수 있도록 시장에 ‘모래 뿌리기’ 역할을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정책 내용보다 방향성이 중요
정부는 일단 5.23 부동산 안정대책으로 집값이 잡히고, 카드사의 자구노력이 이어진다면 더 이상의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안만 해결된다면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경제위기의 공포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5월23일 주상복합아파트 분양권 전매금지, 재건축 아파트 선분양 요건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안정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도 시장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필요시 추가적인 투기억제대책을 강구하는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시중유동성을 증시 등으로
선순환 시키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해 부동산 거품을 제거하는 데 힘쓸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신용카드사에 정부가 더 이상의 지원을 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카드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서둘러 증자계획을 발표하고, 채권
만기연장 프로그램을 통해 채무상환능력과 단기유동성에 문제가 없음을 시장에 홍보하면서 신뢰를 회복하는 데 힘쓰고 있다. 앞으로 정부는 카드사들의
이 같은 자구노력이 철저히 이행되도록 감시한다는 입장이다.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발생한 신용불량자들은 개인워크아웃과 개인회생절차를 통해 신용회복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또 대환대출을 활성화
해 신용불량자 증가도 막겠다고 밝혔다.
SK글로벌은 채권단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되, 관련 중소협력업체의 어려움에는 적극 개입해 도움을 줄 방침이다. 소비와 투자가 워낙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정부의 정책이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정책의 내용은 일단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정책의 내용이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이다. 철도민영화와 조흥은행 매각 등, 대형 국책 사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오락가락이었다. 경기부양을
위한 이번 정책만큼은 일관성 있게 추진되길 기대해 본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