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 속의 숨은 공포
고전소설의 새로운 해석,
스타일이 살아있는 공포영화
‘장화, 홍련’
수연,
수미 자매가 서울에서 오랜 요양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새엄마 은주는 눈에 띄게 아이들을 반기지만, 자매는 그녀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함께 살게 된 첫날부터 집안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가족들은 환영을 보거나 악몽에 시달린다. 수미는 죽은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 무현과
동생 수연을 손수 챙기려 들고, 생모를 꼭 닮은 수연은 늘 겁에 질려있다. 신경이 예민한 은주는 그런 두 자매와 번번이 다투게 되고, 아버지
무현은 그들의 불화를 관망만 한다. 은주는 정서 불안 증세를 보이며 집안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고, 동생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수미가
이에 맞서는 가운데, 집안 곳곳에서 괴이한 일들이 잇달아 벌어진다.
엽기적이고 의문스러운 비밀들
아름다운 두 자매가 아버지, 새엄마와 함께 귀신들린 외딴 집에 살면서 벌어지는 무섭고 기괴한 일들과 서서히 벗겨는 가족의 비밀을 공포스럽게
그린 작품. 이미 ‘조용한 가족’을 통해 가족관계의 공포를 예리하게 짚어냈던 김지운 감독은 한국고대소설 중 가장 잔혹하고 무서운 이야기로 손꼽히는
‘장화홍련전’을 가족괴담으로 환치시켰다.
영화는 원작의 번안이나 각색이 아니라 모티브만 차용해 완전히 재창조한 새로운 이야기다. 선악대립구조의 원전과 달리, 새엄마는 젊고 아름다우며,
자매를 미워하지만 완벽한 가정을 꿈꾸기에 계략 따윈 꾸미지 않는다. 반면, 어딘지 음울하고 당돌한 두 자매는 사춘기 소녀 특유의 불안정한 심리로
가득하다.
원전의 모티브는 그대로 살렸지만, 캐릭터들은 완전히 재창조됐다. 그래서 영화는 원전의
전형적인 플롯을 따르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원전이 비극적인 가족사와 권선징악의 내러티브를 강조했다면, 영화 ‘장화, 홍련’은
선악이 모호한 가족관계 속에 도사린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공포와 미스터리를 강조한다. 표면적으로는 계모와 전처 자식 간에 벌어지는 전형적인
신경전으로 보이지만, 서로에 대한 그들의 증오는 엽기적이고 의뭉스러운 비밀 투성이다. 그 비밀이 서서히 벗겨지면서 그들 사이의 긴장이 섬뜩한
공포로 대체되고,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로 돌변한다.
아름다워서 더욱 무서운 공포
영화의 이미지는 아름다움 속에 섬광처럼 도사리고 있는 공포를 끄집어낸다. 공포영화하면 흔히 어둡고 칙칙한 화면,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들을 떠올리지만,
‘장화, 홍련’은 이런 공포영화의 관습들을 완전히 뒤집는다. 자매가 이 집에 처음 도착했을 때, 행복한 시간들을 보여주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사춘기 소녀들의 예민하고 불안정한 심리를 포착하고 있다. 눈부신 햇살 속에 불안하게 찰랑이는 물, 소녀들의 순수하면서도 내적으로
충동하는 에너지. 이는 영화가 단지 귀신이나 괴물같은 외면적인 공포가 아닌, 소녀 그리고 가족의 내면적인 공포를 그리게 됨을 대변한다.
‘장화, 홍련’은 ‘가족괴담‘과 ‘귀신들린 집’이라는 이야기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본질적인 공포는 인간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죄의식에 기대고
있다. 단순히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특수효과나 사운드 대신,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 섬세한 화면 구성 등을 통해 관객도 서서히 등장인물의
내면적 공포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무섭다’는 인상에서 더 나아가 ‘아름답고 슬프다’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복합적인 정서는 공포의 여운을
더욱 크게 만들어주며, 이는 이제껏 한국 공포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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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감독 발칙한 알몸 연애담·맛있는 감독 |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