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부추기는 사회(2)
경제와 범죄의 상관관계
카드 빚, 높은 실업률, 경기침체,
상대적 빈곤… 범죄 요인일 뿐 원인론은 ‘아니다’
범죄동기.
검거된 범인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됐는지 그들의 진술을 들어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종종 ‘제 정신이 아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등 정신 이상 징후를 보이는 범죄자들 외엔.
범죄경제학에서는 개인이 범죄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서 정당한 행위로의 복귀 비율에 대한 불법행위로의 복귀 비율의 상대적 비교가 선행한다고
설명한다. 즉 범죄자는 범죄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의 크기를 따져본 후 행동한다는 것이다. 피해의 크기, 즉 기대수익은 범죄가 성공한
경우를 가정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의 크기, 체포되어 유죄 평결을 받을 가능성, 처벌의 심각성 크기 등과 같은 세 가지 요인에 달려
있다.
최근 급증한 납치, 유괴 등 일련의 범죄행위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들 중 ‘침체된 한국 경제로 인한 범죄급증 우려’는 경제와 범죄의 상관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짚어볼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카드 빚, 실업률
왜 범죄행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인가? 최근까지 일어난 납치유괴사건 11건 중 6건이 6월에 일어났고, 여성피해자도 6건이었다. 갚지 못한
카드 빚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하는 범인들이 많아 경기침체도 모자라 범죄자에게 원인까지 제공했다며, 카드 빚 여파가
커지고 있다.
가계부실의 주원인인 무분별한 카드사용은 너무 쉽게 발급 받을 수 있었던 신용카드업계의 잘못된 관행 때문이고, 비난 받고도 남을 일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길거리 모집’은 한국만의 진풍경이기도 했다.
실질 실업률도 3달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월 3.0% 이후 3개월째 계속 상승해 5월에는 3.4%로 증가했다. 5월 중 실업자 수는
74만4,000명으로 지난해 5월에 비해 5만5,000명(8.0%)이 늘었다.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20대 청년 실업률은 계절적인 요인을
반영해 7.1%로 4월 대비 소폭 하락했으나, 지난해 5월에 비해서는 14.4%나 증가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더욱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최인섭 실장은 “실업률이 높고 그로 인한 기대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카드 빚 등의 변제를 위해 한탕 다액의 현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IMF 직후 금융경색으로 현금에 집착하는 현상이 일어나 새마을금고나 현금수송차량등 현금이 많은
곳에 범죄가 많았던 현상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업률이나 카드 빚이 최근 일어난 납치, 유괴 사건 등의 모든 요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카드 빚과 관련된 범죄’에 대해 표창원 경찰대교수는 2002년 당시, 카드 빚과 관련한 범죄 기사가 많이 나오자 “이는 대중심리에
영합해 손쉬운 희생양을 찾아 비난을 퍼붓는 태도”라는 지적과 함께 1998년도에 신용카드 이용액이 63조5,000억원이었을 때 인구 만명당
범죄 발생은 3만6,800여건이었는데 2001년 카드 이용액이 443조3,000억원으로 7배 가까이 늘어났어도 범죄 발생은 3만9,000여건으로
많이 늘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카드 빚 원인론을 비판했었다.
빈부격차도 한 몫?
경제성장이 지속됨에 따라 소득수준은 점차 생계비수준을 상회하게 되어 절대빈곤계층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단계에 진입하게
되면 타인 또는 타집단과 비교된 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적 소득수준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상대적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은 높은 계층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아니라 오히려 경제 및 정치, 사회제도 등의 모순과 각종 정책의
잘못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경제적 불평등(economic inequality)이란 사회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물적 재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여타 사람들 간의 경제수준의
격차가 얼마나 큰가에 관한 개념이다. 아울러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이란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러한 경제적 불평등을
심적으로 얼마나 인식하면서 분노와 불의를 느끼고 있는가에 관한 정도치를 말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살인범죄의 발생율과 정비례의 관계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도 경제적 불평등과 재산범죄
발생율 간에는 ‘영향을 준다’, ‘그렇지 않다’ 양분된 의견이 대립되었다. 잭슨 토비는 절대적인 빈곤 그 자체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느끼는 상대적 결핍의 감정이 범죄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러한 상대적 결핍의 감정은 빈곤한 사회의 빈곤한 사람들보다는 풍요로운
사회의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느끼게 된다고 한다. 최근 강남 같은 부유층 주거지역에서 급증한 범죄를 두고 빈부간 격차에 따른
계층간 적대감이 위험수위를 넘었음을 지적하는 의견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 범죄율 높인다?
경기가 좋으면 생산이 증가하고 재고와 실업이 감소하며 물가, 이윤, 금리, 소득이 상승하고 투자도 활발하게 진행된다. 반면, 경기 침체는
기업의 자금부족현상으로 투자활동이 축소되고 실업 및 재고가 증가하고 임금수준, 물가, 금리 등이 하락한다. 이러한 경기변동은 경제의 각
부문을 자극하여 변화를 주며, 범죄를 포함한 사회 각 분야에도 영향을 끼친다.
경기변동과 범죄현상 관계를 분석한 연구 결과들도 물론 여럿 발표되었다. 독일의 E. Ranger 등의 연구에서는 호황기에는 절도범 등과
같은 일반범죄는 감소되고 사치성 범죄는 다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며, 불황에는 반대의 현상을 나타낸다고 주장하고 경기변동과 범죄와의 관계를
대체로 인정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56년 발표한 서덜랜드(Sutherland)와 크렛시(Cressey)의 연구에서는 호황과 불황 두 변수간의 관계에 대해 ‘불황기에 전체
범죄율은 현저하게 증가하지 않는다’, ‘중대범죄의 경우에는 불황기에 상승하고 호황기에는 하강하는 경향이 불규칙적으로 나타날 뿐이다’는 등
경기와 범죄와의 상관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으나 범죄의 종류에 따라 그러한 관계가 변화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연구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폭력범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범죄 전문가들은 90년대에 경제가 호황을 보이고 때마침 강력한
형사법이 시행된 때문으로 분석했다. 스탠퍼드 대학의 범죄학자인 랠프 마이어는 “사람들이 직업을 갖고 가난한 이웃들의 삶이 개선되면 범죄율은
감소한다”고 경기변동과 범죄의 상관관계를 인정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최인섭 실장은 최근 급증한 범죄 요인에 대해 “경기 침체, 카드 빚 등 많은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환경이나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으며, 범죄의 원인을 사회 구조적인 모순으로 몰 수는 없는 것”이라며 “똑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 않나?”며 부분별 원인론은 인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범죄를 저질러야겠다는 결정을 틀 지우는 메커니즘과 인간의 복잡 다양한 내면의 심리를 일괄적인 형태로 규정 지어 범죄수사에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와 범죄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는 최근 급증한 범죄자들이 경제적 동기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되면 범죄와의 싸움에 있어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박광규 기자 hasid@sisa-news.com
경제가 범죄에 영향을 주는 결론을 도출한 학자들 |
랭거(E.Ranger) : 경기변동과 범죄와의 관계를 대체로 인정하는 연구결과를 발표 콜드웰(M.G.Coldwell) : 빈곤과 범죄율간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 음을 발표 플로스카우(Ploscowe) : 경제 발전은 불법적인 행동에 대한 충 동을 야기, 범죄가 증가한다는 결론을 도출 서덜랜드(Edwin H. Sutherland) : 종합적인 입장의 연구로 양 관점을 절충하는 견해를 보였다. * 일반적인 범죄발생율은 불황기에 그리 증가하지 않는다. * 강력 대인범죄는 불황기에 약간 증가하고 호황기에는 감소한다. * 일반적인 대인범죄는 경기변동과 관계가 없다. * 단순절도는 불황기에 약간 증가한다. * 강도범은 불황기에 증가한다. * 소년비행은 불황기에 감소하고 호황기에 증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