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자아와 의식이 일치된 휴식 그리고 평화
아름다운 자연과 고단한 삶이 숨쉬는 네팔,
전경린의 여행 에세이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전경린 지음 이가서/ 9,000 |
생이 고달플 때 우리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를 고대한다. 하지만 대부분 상상에서만 끝날 뿐 정작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더러 큰맘 먹고 떠났다하더라도
삶을 모두 집어던지고 떠나지는 못한다. 현실적인 문제들, ‘신문배달부에게 말을 하고 가야하나’ ‘무슨무슨 약속들이 있는데’ ‘나 없는 동안
회사는 어떡하지’ 등등. 우리가 떠나는 여행은 몸의 여행일 뿐 몸과 마음이 일치한 진정한 휴식이 되지 못한다.
자신의 삶 되돌아보기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사막의 달’로 등단한 후, ‘염소를 모는 여자’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등 우리 시대의 가족과 여성으로서의 삶의 정체성에 관해 끊임없이 되물어 온 작가 전경린이 등단 8년만에 첫 산문집을 냈다. 여행 에세이인
이 책은 네팔의 자연경관과 그곳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과 번뇌가 담겨졌다.
비자를 만들기 위해 찍은 증명사진을 보며 작가는 “얼굴 피부 아래의 불안과 의심, 열정과 무질서, 그리고 몇 해째 장마비를 쏟아내지 못한
먹장구름 같은 완강한 슬픔과 피로와 생의 먼지가 인화돼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불안과 의심과 묵은 먼지를 걷어 내고자” 떠남을
결심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자기 몸과 자아와 의식간의 치열한 합병이며 공속이고 일치이다. 쉬지 않고 앞을 향해서만 달려온 그녀가 쉼 없는
글쓰기에서 벗어나 한 템포 쉬어가면서 다시 한번 숨을 고르는 기회를 갖고, 주변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휴식’을 찾아나선 것이다.
그곳에는 따뜻한 위안이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 카트만두와 포카라의 훼아 호수 주변, 부처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도착지인 카트만두에서 작가는
‘우리는 동물로 태어나 인간의 꿈을 꾸다가 동물로 죽는다’는 말을 떠올리며 사람의 꿈을 꾸는, 신의 꿈을 꾸는 맑고 가난하고 무구한 짐승의
눈을 발견한다. 온종일 도시를 흐릿하게 감싸고 있는 분진과 매연 속에서 그녀가 읽어낸 것은 인간 본연의 ‘우울한 정신성’이다.
포카라로 향하는 길에서 작가는 돌 깨는 마을을 지난다. 일생 내내 돌 깨는 일을 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녀는 글쓰기도 돌 깨는
일처럼 격렬하고 아프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부질없지는 않을 것이라 고백한다. 그녀가 여행 전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발견이나 감탄이 아니라
담담한 위로다”라고 소망한 대로 그녀는 네팔에서 따뜻한 위안을 받는다.
룸비니 동산의 붓다 트리 숲 속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선언하는 각양각색의 아기부처상을 보며 작가는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도 풀리지 않는
한 점의 푸른 잉크 방울처럼 하나뿐인 길을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하나의 방향으로 탈바꿈을 거듭하며 걸어가는 자기갱생적 응념의 삶”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진의라고 풀이한다. 그리고 그녀는 먼 곳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가장 확실하게 액땜하는 방식인 ‘여행’을 통해 그녀는
비로소 생의 평화를 얻었다.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여행도 삶 속에서 영원히 되풀이된다.”
화제의 신간 |
가슴밭에 두고 온 말들 사랑을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감미로운 영상이라 상상했던 저자가 사랑을 직접 경험하면서 사랑이 무언지
1997년 기아자동차, 한보철강, 아시아자동차 부도, 1998년 대우그룹 해체, 2001년 워크아웃 |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