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꼭 뽑아야 하나?
오버 코미디와 신파극의 동시상영,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첫사랑의
추억은 달콤 쌈싸름한 초콜릿 같다. 서툴고 순수했던 그때의 기억은 아름답지만,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가슴 한 구석에 놓여있는 슬픔 덩어리기도
하다. 첫사랑 상대가 백혈병으로 죽는 수많은 멜로 영화가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첫사랑의 이성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박제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심리적으로는 죽은 상태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첫사랑에 대한 이 같은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다. 10대 시절 시작된 사랑을 둘러싼 집착과 치기의 감정은 그래서
좌충우돌 사랑스러운 해프닝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우고 싶었다”는 오종록 감독은 여기에 상실감과 슬픔이라는 첫사랑에
대한 아픔의 정서를 상당부분 할애해 담았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두 가지 가능성을 갖게 됐다. 단순한 킬링타임용 코미디가 될 것인가, 첫사랑 고유의 ‘가슴 쓰린’ 감성까지 포착해낼
것인가.
아픔은 단지 흥행 무기일 뿐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각종 흥행요소의 집합장이다. 청춘스타 차태현, 손예진은 흥행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근사한 무기임에 틀림없다.
여기에 코미디는 충무로에서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흥행 장르. 조폭도 사투리도 이미 대박 설정으로 검증된 장치다. 이 정도면 든든한 흥행 장비로
무장했지만, 아직 좀 불안했던지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그것이 바로 ‘신파’. ‘엽기적인 그녀’ ‘선생 김봉두’ 등이 코믹과 신파를 섞어 인기몰이에 성공했고, ‘연애소설’ ‘클래식’ 심지어 ‘튜브’에서도
신파적 멜로는 중요한 흥행 장치였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이점을 간과하지 않고 신파를 핵심 코드로 삼는다.
영화는 동시상영관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코믹과 신파를 동등하게 분할 배정했다. 엽기적인 상황으로 점철된 전반부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차태현의 고군분투가 억지스럽고 오버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TV 시트콤 만큼의 재미는 있다. ‘가문의 영광’의 흥행비결이 김정은의 연기에
있었다면,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의 웃음은 절대적으로 차태현의 감각적인 코믹 연기에서 나온다.
하지만, 웃음은 그리 길지 않다. 차태현의 발랄한 유머는 손예진의 눈물 연기로 바톤을 넘기면서 급속히 균열된다. 사랑을 쟁취한 순간 여주인공이
죽을병에 걸린다는 ‘국화꽃 향기’식 설정이 갑작스럽게 끼여들면서 영화는 진부한 ‘손수건 적시기’ 멜로로 돌변한다. 극장 좌석수 보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자기들끼리 훌쩍거리고, 주인공들은 변사가 낭독하면 어울릴 듯한 대사들을 줄줄 읊어 내린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첫사랑의 ‘아픔’이라는 특유의 정서를 통찰하기보다는 ‘아픔’을 단순한 흥행 장치로 활용하면서, 첫사랑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를 빚어낸다. 그래서 첫사랑을 둘러싼 다양한 감성 발현의 가능성을 모두 안고 출발했던 이 영화의 결론은, 한바탕 즐기는 코미디가
되기에는 청승맞고 감동을 주기에는 얄팍하다.
이데올로기부터
유쾌해야
웃고 즐기자는 코미디 영화에 이데올로기까지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게 경직된 발상일 수 있겠지만,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충무로 코미디의
대부분이 그렇듯 이데올로기 면에서도 거슬리는 부분이 많다.
여주인공의 순결을 ‘사수’하기로 아버지와 약속하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에는 여성의 처녀성을 남성이 지킨다는 가부장적 사고관과 순결이데올로기가
베어있다. 여주인공의 순결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남자 주인공이 ‘그 애는 걸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장면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고
웃음으로 순화됐지만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을 버리기 어렵다. 여주인공의 감정이 미약하게 다루어지고 대상화되는 점도 영화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와
연관시킬 때 그다지 즐겁지는 않다.
조폭이 번번이 해결사처럼 등장하는 부분도 다소 찜찜하고 바람둥이는 이용당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사회적 편견에 메스를 들여대는
코미디가 ‘시원한 웃음’을 주는 것은 당연한 논리. 그렇다고 모든 코미디가 ‘결혼이야기’ ‘쿨러링’ ‘폴몬티’가 될 수는 없다. 적어도
편견을 깨부수지는 못할 망정 일그러진 관념은 걷어내고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일깨우고 싶었다” 같은 거창한 감독의
멘트가 없었다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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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色다른 청춘남녀 작업일지·싱글즈 감독 끝없는 사랑의 전설·터크 에버래스팅 감독 |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