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에 이르는 치명적 바이러스, ‘분노’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담은 대니보일 감독의 새로운 호러
‘악몽보다
끔직한 현실’과 마주친다면? ‘분노’와 ‘바이러스’라는 치명적이면서도 본질적인 공포를 독특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28일후…’는 ‘좀비’라는
호러의 전통을 살린 다소 뻔한 내용이지만, 기본 이상의 섬뜩함을 체험하게 하는 매력적인 공포물이다.
무자비하고 유쾌한 스릴러 ‘쉘로우 그레이브’로 타란티노 세대의 영국식 선두주자로 부각된 이후 ‘트레인스포팅’ ‘브레스트 오프’ ‘비치’까지
독창적인 영화로 젊은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온 대니보일. 상업적 재미와 더불어 사회적 문제의식을 절묘하게 녹여내는 감독의 솜씨는 이미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증명돼 왔다.
‘28일후…’는 이 때문에 단순한 영화적 유희만을 위한 호러로 단정짓기 어렵다. 그리고 실제로 대니보일은 처음으로 도전한 공포물에서도 자신의
감각과 재능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안전지대는 없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분노’ 혹은 ‘광기’로 울부짖는 침팬지가 감금된 실험실 시퀀스의 오프닝에 이어서 한 남자가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28일간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는 영화의 초반 10여분은 숨이 가빠지는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렵다.
병원을 나온 짐(실리언 머피)이 마주치는 세상은 유령의 도시처럼 황폐하다. 도심 곳곳에 나붙은 실종 전단들과 ‘분노 바이러스’로 감염된
거리에서 짐은 경악한다. 과연 그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인가? 인류는 이제 바이러스로 더 이상 생존의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짐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생존자들과 희망의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그들의 종착지는 또 다른 공포의 땅이다. 이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인간의 광기 어린 폭력의 노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영화는 냉혹하리만큼 처절하게 보여준다. 고독, 분노, 애증, 폭력, 희망을
둘러싼 인간 상호간의 대립과 긴장은 113분의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의 이유(바이러스 감염)가 ‘분노’라는 감정에 의한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28일후…’는 선과 악으로
대변되는 두 개의 이질적 집단의 대립을 축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길은?
엔딩 시퀀스에서 영화는 인류 자신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남긴다.
낯선
공간의 업그레이드 된 좀비
영화 전반에 선혈이 낭자한데, 최근에 나온 일련의 고어 슬래셔 무비 그 이상의 끔찍한 좀비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에게 실망을 안겨 주지 않을
듯하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관객은 저녁 무렵 런던 한복판에서 꿈틀대며 일어서는 좀비 무리를 만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 공포감을
설명하자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주인공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절실할 것이라는 말로 대변하고 싶다.
좀비 영화 하면 떠오르는 설정, 예를 들어 미국의 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시체들이 살아나며 좀비로 부활한다는 플롯에 익숙한 관객이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라는 다소 특이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낯선 풍경을 만난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공포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더욱이 공격 방식이
한층 포악한 업그레이드 된 좀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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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전능한 브루스는 뉴욕, 버펄로 지방 방송국의 뉴스 리포터. 소박한 이웃들 얘기를 재미있는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똥개 조금 초대형 한국 애니메이션·원더풀 에너지 |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