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자 돕는 ‘아웃플레이스먼트’
개인의 노력보다 전직 쉽지만, 비용 부담하는 기업은 아직 필요성 못 느껴
1998년부터
99년 중반기까지 통계청이 조사한 매월 명예퇴직, 조기퇴직, 정리해고 인원은 평균 20만명 이상이었다. 2003년 현재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퇴직자들이 느끼는 배신감이나 굴욕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다른 차이가 없다. 한 전직지원컨설팅(outplacement)
업체가 전직경험 대상자들을 설문조사 한 결과, “퇴직시 서운했던 감정이 3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하고, 현재까지도 전직하기 전 회사를
욕하고 있다”고 응답자 대부분이 답했다. 남아있는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애착도 다른 지역보다 현저하게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아웃플레이스먼트 = ‘변화관리’
위와 같은 결과에 대해 대부분은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해당기업은 이에 대한 인지가 무척 낮다. 미국, 유럽 등에서 이미 정착된 ‘아웃플레이스먼트’가
한국에서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변화관리’ 인식이 중요하다.
‘평생직장’ 개념에 익숙했던 40~50대 구조조정 대상자들은 명예퇴직을 당하면 회사에 대한 배신감과 당혹스러움에 자신감마저 잃어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없다. 연공서열주의가 팽배하여 재취업도 쉽지 않다. 남아 있는 직원들의 사기저하는 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1999년 3월 삼육대학교 이강성 교수가 발표한 ‘1999년 임금교섭 환경과 전략’에는 인력감축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조사한 내용이
있는데 조사결과 전체 응답업체의 65.8%가 ‘고용불안으로 인한 사기 저하’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노사관계
악화’와 ‘과다한 퇴직금 지급에 따른 인건비 증대’가 모두 10.5%로 나타났으며, 이 밖에도 ‘법제도의 미비로 인한 해고의 사실상 불가능’
7.0%, ‘우수 인재 퇴직’ 3.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구조조정은 기업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큰 ‘변화’다. IMF 이후 기업들의 상시구조조정으로 퇴직자들은 늘었는데 이들을 받아들일 곳은 많지
않았다. 구조조정 기업의 재직자들과 이들을 관리하는 경영진들이 구조조정으로 인한 ‘변화’를 이겨내야만 혼란이 없다.
‘아웃플레이스먼트’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기업과 개인이 겪어야 할 ‘변화관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우아한 백조 만들기
전직지원 컨설팅 업체는 98년 미국 DBM사가 국내에 처음 진출한 이후 리헥트해리슨(LHH), KR&C 같은 전문 업체들이 생겼다.
국내 업체 중에서 ‘한국아웃플레이스먼트’가 잘 알려져 있다. 컨설팅 기간은 보통 3~6개월 단위로, 제일 먼저 심리적인 상담이 이루어진다.
퇴직의 충격과 재취업에 대한 불안한 마음에 자신감을 심어주는 중요한 절차이다. 개인의 사무공간도 제공하는데 집무실, 워크스테이션, 전화,
FAX, 복사기, Network PC 등이 포함된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자기진단 프로그램으로 개인의 역량, 가치관 및 성향의 진단을 통한 자기 분석을 한다. 자신의 경력을 기술하는데
필요한 이력서 작성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처음 몇 줄이면 끝났던 이력서를 많은 양의 이력서로 만들 수 있어 본인들도
신기해 한다.
전문 서처(searcher)들은 재취업정보를 철저히 검증한 후 퇴직자들에게 제공하며, 이 외에도 구인구직 사이트의 채용정보를 통합한 자체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구직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강의도 들을 수 있어 반응이 좋다.
국내업체인 한국아웃플레이스먼트 윤종만 사장은 외국계 전직지원컨설팅 업체들의 프로그램과 차별화 된 전략으로 ‘워크샵’을 개발했다. 그는 “퇴직자들이
초기에는 프로그램에 잘 적응하는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출석률이 저조했다. 1:1 컨설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구직활동을
위한 교육 등 개별 프로그램을 지원기간 내내 지속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 실정에 맞게 일주일 정도 ‘워크샵’을
통해 집중 교육을 시킨다는 것이다.
창업에 관심이 있는 퇴직자들은 ‘창업 컨설팅’을 받는다. 역시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창업을 위한 조언자일뿐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한다. DBM Korea 김은주 마케팅 팀장은 “아이템 선정 방법을 조언해 주고, 상권분석을 할 수 있도록 직접 돌아다녀 보게
한다. 마음에 드는 곳으로 2~3곳을 찍어오면, 컨설턴트가 조언을 하는 식으로, 배우면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차후에 다시
창업을 한다해도, 그 때는 아무 도움 없이 할 수 있도록 자질을 높이는 프로그램이다”라고 말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말이다.
아웃플레이스먼트의 성공은 이 모든 프로그램을 퇴직자에게 잘 설명하고 편한 마음으로 서비스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컨설턴트에게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역할이 중요하다. ‘35세 이상 여성, 심리학 전공자이며, 회사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일 것’. 최근 한국아웃플레이스먼트에서
뽑은 컨설턴트 자격 요건이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는 이유는 대상이 40~50대의 고학력 중간급 간부 이상이 대부분인 대다가 퇴직시
충분한 이해와 설명을 회사로부터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담 중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 그 중요성이 사뭇
절실하다.
정부지원 무료 프로그램도 있어
퇴직은 했지만, 회사의 배려와 컨설턴트들의 세심함으로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다시 찾은 그들에게 전직지원 컨설팅 기간은 향후 15~25년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충격에서 벗어나 이제 새 출발을 해야 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게 된다. 비용을 부담한 기업에서도
당연히 취업률이 높길 기대한다. 아웃플레이스먼트가 아무리 ‘변화관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무료 전직직원 프로그램은 비용부담이 없어 인기가 높다. 산업자원부와 경총이 협력하여 ‘경총 산업기술인력 아웃플레이스먼트센터’를 2002년10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컨설팅은 ‘한국아웃플레이스먼트’가 맡고 있으며, 7월까지 취업률은 67.6%로 나타났다. 경총아웃플레이스먼트센터 이용은
무료이지만, 기술인력 퇴직자로 국한되어 있다는 단점이 있다.
정부에서 아웃플레이스먼트를 실시하는 기업에게 소요자금의 절반(대기업은 3분의 1, 보통 1인당 100만원 안팎)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보통 1인당 비용이 200~300만원 가량 소요되기 때문에 기업에서 쉽게 전직지원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아웃플레이스먼트 윤종만
사장은 “아웃플레이스먼트의 본질은 ‘변화관리’이지만, 기업측은 ‘변화관리’보다는 가시적인 취업률에 더 예민하다. 취업률이 그다지 높지 않아
컨설팅업체 선정에 신중한 것이 사실”이라며, 선발업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직지원컨설팅 시장이 ‘발전할 수도,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부터 2003년 6월까지 명퇴자는 약 560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전직지원을 받은 인원은 채 20,000 명도 되지
않는다. 아주 극소수만이 혜택을 받은 셈이다. 개인이 노력하는 것보다는 컨설팅을 받는 것이 낫고, 평생직장으로 알고 다니던 회사에서 아무런
양해 없이 해고당하는 것보다는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듣는 것이 좋다. 남아있는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도 ‘아웃플레이스먼트’는 필요하다.
아직 소규모인 ‘아웃플레이스먼트’사장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기업 경영주의 사고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경총아웃플레이스먼트센터 : www.nextjob.or.kr)
박광규 기자 hasid@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