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타고 내다본 천변풍경
다양한 세대 다채로운 방식, 청계천 일지 ‘물 위를 걷는 사람들’展
지난
7월1일 청계천 복원 사업이 드디어 시작됐다. 찬반양론을 뒤로하고 염려와 기대 속에 복개의 흔적들이 뜯어져 나갔다. 복원 후의 모습이 과연
인간 중심의 생태적 환경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지 기다려봐야 할 테지만 그 전에 너무나 일상적이고 낯익어서 오히려 잊혀졌던 청계천을 떠올려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8월17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02-214-8800)에서 열리는 ‘물 위를 걷는 사람들-청계천 프로젝트’전이 그것. 20대
신진부터 원로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초월한 작가들이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기록·상상했다.
이번 전시의 ‘돌아보다’ ‘재발견하다’ ‘거닐다’ 세 부분으로 구성된 작품들을 통해 청계천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가난했던
그 시절 ‘돌아보다’
1978년 복개공사가 완공되기 전까지 청계천은 서울의 대표적 판자촌 거리였다. 물 가장자리를 따라 잡동사니를 대충 쌓아놓은 듯 여기저기
어수선하게 지어진 판자집에는 고단하지만 순박한 일상이 꿈틀댔다. 일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의 ‘청계천’을 보면 먼 곳을 응시하는 고뇌에
찬 남자, 빨래터에 모인 여자, 해맑은 표정으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등 서민들의 삶이 포착돼 있다. 부족하지만 따뜻했던 서울 한복판 청계천의
풍경이 넘실댄다.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한 작가 김성환의 회화 ‘청계6가’는 당시의 풍경이 좀더 ‘추억’의 그리움으로 묘사됐다. 지금은 보기 힘든 살모사
구렁이 토룡 두더지 등 강장약 판매상과 깡통을 든 거지, 한약 달이는 할머니 등 입가에 미소 띄게 만드는 그 시절 풍경이 펼쳐진다. 가게
앞에서 주전자 막걸리에 김치 한 접시를 두고 회포를 푸는 속옷 바람의 아저씨들도 훈훈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동대문 근처 전동차역’을 보면 판자촌에 살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이 배어난다. 전동차 길옆으로 서있는 판자집은 안쓰러움과
불안함을 자아내고 퇴근길 어깨가 쳐진 가장의 뒷모습은 경제적 하층민의 모습을 대변한다. 모두가 없었던 시절, 더욱 없었던 개천가 민생고가
꿈틀댄다.
떠나간
주민들의 상처 ‘재발견하다’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자 판자촌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공구상가 세운상가 평화시장 황학동시장으로 이어지는 복개도로 주변상가가 형성됐다.
광장시장 주변 동시상영 표지판이 내걸린 삼류영화관에서부터 노후주택과 상가들,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이 진열된 청계8가와 세운상가 등의
정경이 필름에 담겨졌다. 그룹3.1과 강상훈, 김창겸의 작품을 통해 이제는 과거가 돼버린 근래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삭막한 황학동 재개발 현장을 찍은 김남훈의 ‘녹색 라인’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도 공사로 불편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라고 쓰여진
플랜카드가 인상적이다. 그 위로 보이는 텅빈 아파트의 갈라진 틈마다 작가가 붙여 놓은 청테이프는 마치 거기 살다가 어디론가 떠나간 주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 하다. 마찬가지로 재개발 아파트를 수묵화로 그린 유근택의 ‘이주’도 매우 을씨년스런 풍경을 담아냈다. 모두가 이주하고
건물만 남은 아파트에는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함만 존재한다.
박병춘은 가장 최근의 풍경인 청계천 철거를 반대하던 시위대와 이들을 막는 진압대의 모습을 담아냈다. 반대하는 상인들과 길을 막는 전경들의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작가는 그림 한켠에 “고가는 사라지되 그 주변의 삶은 새로 태어나는 청계천과 함께 회복될 것이다”라는 소망과
당위를 적어 놓았다.
파란빛깔
도시 ‘거닐다’
청계천 복원 사업이 오히려 복개 사업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곳곳에 보인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려 다시는
개발 독재 오류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하는 작가 김태헌의 작품들에는 사업으로 인해 발생되는 여러 혼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의견을 직접 글로 적어놓은 김 작가는 “개인이나 전문가 집단의 주도로만 실행돼서는 안 되며 시민들 스스로 먼저 밑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한 “방진막과 방음벽을 설치하여 인근 상인들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가능토록 할 것”과 “동대문운동장을 임시주차장으로
조성하고 청계천로에 무료셔틀버스를 운행해 교통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피력한다.
걱정과 염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태적 환경도시로 거듭날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고명근의 ‘신전’과
김은정·전준호의 ‘관수교’ 등을 보면 인공적 구조물이 사라진 뒤의 청계천이 도심의 삶에 제공할 비전들을 다루고 있다. 유혜진의 디지털프린트
‘물위의 해체’는 청계천공사를 레고블록으로 형상화하면서 물빛을 기대감이 담긴 파란색으로 표현했다. 파란 빛깔의 청사진이 이뤄지길 바라는
작가를 비롯한 시민들의 소망이 느껴졌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