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탐방
잔잔한
마애불의 미소가 전염되는 곳
세속 번뇌 사그라지는 도심 속 산사, ‘승가사’
굽이굽이 바위 사잇길을 오르고 또 오르니,
산허리의 선각(禪閣)이 단풍(丹楓)속에 자리잡았네.
왕사(王師)의 지난 자취 큰 비석(碑石)이 우뚝 섰는데,
옥불(玉佛)이 동쪽으로 오니 보배로운 전각(殿閣) 높이 솟았소.
만호(萬戶) 민가(民家)의 추녀 끝은 찬 비 속에 희미하고,
겹겹이 둘린 성곽은 저녁 연기 사이로 보인다.
서쪽 봉우리에 해지자 종소리 들리는데,
높은 누대(樓臺)에 혼자 올라 멀리 나르는 기러기 보고있네.
- 다산 정약용의 승가사(僧伽寺) 역방시(歷訪詩)
경내로 연결되는 참도는 12지상이 조각돼 있다. |
대웅전에 모셔놓은 석가모니불은 천년 향나무에 조각해 개금불사했다. 특이할 점은 탱화가 그림이 아닌 목조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던가. 진흥왕순수비로 유명한 북한산 비봉에서 동쪽으로 1km쯤 떨어져 있는 종로구 구기동에 자리한 승가사는 사찰을 오르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절에 오르는 두 갈래길 모두 깎아지듯 가파른 산세가 마치 이곳을 찾는 신도들의 불심을 시험하듯 하기 때문이다. 절경을
보기도 전에 이 험한 곳을 어떻게 오르내리며 건축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기엔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가파르지만
그만큼 사람의 손을 덜타 자연모습 그대로를 유지했고, 계곡 소리가 낭만적 운치를 충분히 자아냈다.
≫ 아늑함과 고요함의 조화
일주문에 다다르면 높게 솟아오른 9층석탑이 있고, 그곳까지 좌우 양벽에 비룡이 새겨진 108계단이 놓여졌다. 탑은 1994년에 세워진 높이
25m의 남북통일 호국보탑으로, 기석에 자비와 지혜를 표현한 코끼리상, 용맹과 강인함을 뜻하는 사자상, 우리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호랑이상이
조각돼 있다. 그 외 모든 층마다 정교하고 섬세한 불보살이 새겨져 화려함과 웅장함이 엿보인다.
탑을 지나 12지상이 조각돼 있는 참도를 따라 경내에 들어서면 비구니스님들이 기거하는 사찰이여서인지 아늑함과 정갈함이 제일 먼저 가슴을
두드린다. 발소리 하나도 조심스러움이 느껴지는 고요함이 마음을 경건케 하고,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 했다.
가람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영산전과 산신각, 적묵당이, 좌측에 서래당과 명부전이 배치했다. 뒤쪽으로는 약사전과 향로각, 마애석불이
있고, 맞은편에는 종각이 있다. 종루에서는 서울이 한눈에 조망되며, 비천용상이 새겨진 범종이 육중한 자태를 뽐낸다. 1977년 15인이
45일간에 거쳐 겨우 운송했다고 하니 그 무게감이 실로 느껴졌다.
≫ 방문객에게 식사제공
대웅전에 모셔놓은 석가모니불은 천년 향나무에 조각해 개금불사했다. 여느 사찰의 대웅전과 비교해 특이할 점은 탱화와 외벽에 그려진 심우도가
그림이 아닌 목조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단청의 빛깔도 빼어났는데, 16나한상을 모셔놓은 영산전이 더욱 그 아름다움을 뽐냈다. 세월의
흐름으로 빛바랜 부분이 고풍스러움을 연출하며 자연과 어우러졌다.
영산전에서 산신각으로 넘어가는 야트막한 언덕에는 우람한 소나무가 한 그루 섰는데 그 모습이 매우 영묘했다. 대웅전을 향해 구부러져 자라는
모양이 마치 부처님을 향해 절하고 있는 중생 같았다. 영험한 기분이 들어서인지 금옻을 입고 있는 산신상의 얼굴은 더욱 신비감을 더했다.
적묵당은 현재 24명의 비구니가 참선하고 있는 선방으로 야경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북한산의 자연풍광과 서울의 도시 냄새가 기묘하게
어우러져 마음을 평안케 했다.
서래당 안에 있는 종무실은 종단의 사무를 보는 곳이자 참배객에게 안내를 해주는 곳이다. 심신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묘약 같은 차와 더불어
스님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서래당 하층에는 주방과 식당이 있는데 언제든 방문객이 식사할 수 있도록 뷔페형식으로 음식이 준비돼
있고, 별채는 최대 200명 정도까지 머물 수 있는 기거방이 마련돼 있다.
마애석불석가여래좌상(보물 제215호). 둥글한 선과 잔잔한 미소가 특징이고, 여전히 붉은 빛을 발하는 입술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
≫ 병을 치료한다는 영험한 약수
500년 노송이 사천왕처럼 우뚝 서있는 명부전에는 고인의 천도명복을 기원하는 신도가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로 중생을 고해에서
건져 극락으로 이끌어 준다는 지장불이 인자한 눈빛으로 굽어보고 있었다.
약사전은 신라시대부터 승가굴로 널리 알려져 법장 혜인 도인이 수업한 곳으로 승가사의 뿌리가 발족한 곳이다. 이후 세종대왕비 소헌왕후의 병을
낫게 하였다하여 약사전으로 통칭됐고, 내부에는 30세에 당나라에서 와 52년간 불도전법을 하며 민초의 고뇌를 풀어주고, 생전에 이미 관음의
화신으로 받아들어진 승가대사상(보물 제1000호)이 봉인돼 있다. 부드러운 눈매와 온화한 미소가 인상적인 승가대사상 옆에는 약수가 흐르는데
예부터 물맛도 좋고 병을 치료한다는 말이 있어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다.
약사전 뒤쪽으로 향로각과 마애석불석가여래좌상(보물 제215호)이 있다. 향로각 입구에는 추사 김정희가 ‘가양천신(可養天神)’이라고 새긴
돌이 놓여져 있는데, ‘가히 천신을 기를 만한 곳이다’라는 의미로 승가사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하겠다.
향로각은 유리로 마애불과 정면에 볼 수 있게 돼있어 우천에도 석불 봉배하도록 했고, 그 곳에서 마애불까지 108계단이 놓여져 있다.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단번에 오르긴 힘들고 한 걸음씩 천천히 올라야 한다. 걸음을 떼어놓으면서 번뇌를 던지고 마음을 가볍게 하라는 부처의 가르침인
듯 했다.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새겨진 6m의 거대한 불상으로 고개를 들어 전신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크기에 눌러서인지 불상에서 나오는 엄청난
기 때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으나 분명 근엄한 자태가 중생의 고개를 숙이게 했다. 둥글한 선과 잔잔한 미소가 특징이고, 여전히 붉은 빛을
발하는 입술이 신비로움을 더했다.
≫ 저절로 명상에 잠기는 공간
마애불에서 삼배를 올리고 내려오면서 틈틈이 북한산 자락을 내려보니 보는 위치마다 경치가 매우 달랐다. 북한산을 등반할 때 보았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새로움이 전해졌다.
또한 마치 쉬었다 가라는 듯 자연의 휴식처를 제공하는 소나무 그늘에 앉아있으니 절로 명상에 잠기고 그간의 고민과 근심이 사라졌다. 소소한
것에 얽매어 있었구나 하는 깨우침도 느껴졌다. 때마침 풀숲으로 사라지는 도마뱀이 눈에 띄었다. 하찮다고 생각했던 짐승이 어찌보면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보다 더 존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 도시의 한복판이다. 여전히 일상의 굴레가 압박해오지만 잠깐동안의 체험이 많은 걸 변화시켰다. 마음에 여유와 아량이 생겼고,
입가에 마애불의 미소가 잔잔히 떠올랐다.
<찾아오는 길> 지하철3호선 경복궁 역에서 하차. 3번 출구로 나가 약 50m 전진하면 버스정류장이 있다. 그 곳에서 143-1번 버스를 타고, ‘승가사 입구’에 내리면 북한산 소재 사찰 위치 방향판이 보인다. 표지판이 서있는 골목을 따라 70m 정도 걸어 들어오면 건덕빌라가 보이는데, 빌라 앞 공터에 승가사에서 운행하는 순환차량이 아침7시부터 오후3시까지 매 정각마다 선다. 차비는 1.000원. 소요시간 15분. 도보로는 약 1시간쯤 걸리는데 차량이 오르는 길과 관음사·문수사 방향표지가 있는 구기동쪽 길이 있다. 완만한 경사와 계곡소리가 듣고 싶다면 구기동쪽 길을 권한다. 국립공원 입장료 1,300원(어른). (문의 전화: 02-379-9665) |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