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 이중간첩으로 몰려 처형된 이수근 씨를 도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이 씨의 처조카 배경옥(70) 씨는 40여년 만에 와 고 이장형 씨는 23년만에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재판장 박형남 부장판사)는 배 씨에 대한 재심에서 이 씨의 간첩 행위를 도와 암호문을 북한으로 우송한 혐의와 국가기밀 누설 방조 혐의로 국가보안법 위반과 반공법 위반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다만 이 씨의 변장사진을 다른 사람 명의의 여권에 붙여 위조하고 이를 사용한 혐의(공문서 위조 등)에 대해서는 징역1년 6월을 선고했고, 이 씨의 탈출을 돕고 돈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5년이 선고됐던 이 씨의 외조카 김○○(61) 씨에 대해서는 공소사실 전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씨를 중앙정보부로 압송된 뒤 불법구금됐을 뿐 아니라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술이 이루어졌고, 수사관들의 가혹행위 말고는 이씨가 체포당시의 진술을 뒤집고 범죄사실을 자백할 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며 "위장 간첩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고, 따라서 배 씨가 간첩 행위를 방조했다는 혐의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당시 중앙정보부는 불법 구금과 고문 등 인권을 유린했다"며 "검찰은 이를 묵인했고, 법원은 증거재판 원칙을 구현하지 못해 인권 지킴이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 씨는 1967년 3월 판문점을 통해 귀순했지만, 1969년 1월 위조여권을 이용해 캄보디아로 향하다 기내에서 체포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죄 등으로 같은 해 7월 사형이 집행됐다.
이 씨와 함께 출국한 처조카 배 씨도 체포돼 1심에서 사형,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989년까지 21년 감옥에서 보냈다.
하지만 무죄선고까지 받기에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고, 배 씨가 출소한 다음 해 결혼을 앞두고 있던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대해 배 씨는 "간첩의 자식이 되기 싫어서 자살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 같이 간첩누명은 한 가족의 큰 멍에로 자리잡았다.
한편, 북한과 조총련의 지시를 받고 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고 이장형씨(사망 당시 74세) 씨에 대해서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씨가 치안본부에 불법 구금돼 온갖 고문과 협박 속에서 진술했다며 증거 능력이 없는 만큼 지령을 받고 기밀을 수집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씨는 1972년 2월 일본에서 조총련 간부로 활동하는 숙부를 만나 북한 주체사상에 대한 교육을 받고 '제주도 해안경비상황을 알아보라'는 지시을 받아 실행에 옮긴 혐의로 기소돼 1985년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에 이씨는 15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다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지난 2006년 재심을 기다리다 숨졌습니다.
이 씨도 누명을 벗기까지는 23년이라는 많은 시간이 걸렸고, 이 씨가 세상을 떠나서야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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