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때 부여군 일대에서 인민군과 지방좌익에 의해 우익인사들이 희생됐고, 의용군으로 징집하기 위해 학생·청년들이 강제 연행된 사실이 밝혀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아래 진실화해위)는 '부여지역 윤대선 등 11명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및 강제연행사건'을 북한노획문서인 RG 242(National Archives Collection of Foreign Records Seized)를 비롯해 공보처『6·25사변 피살자 명부』, 내무부『6·25사변 피납치자 명부』등에 대한 자료조사를 진행했다.
또, 당시 사건 목격자, 참고인 등에 대한 진술조사를 실시한 결과,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부여군 일대에서 인민군과 지방좌익에 의해 우익인사들이 희생됐으며, 의용군으로 징집하기 위해 학생·청년들이 강제 연행된 사실을 밝혀냈다.
부여지역은 한국전쟁 이전부터 좌·우익간의 갈등이 팽배했으며, 인민군이 점령한 1950년 7월 중순부터 퇴각기인 9월 27일까지 적대세력에 의한 크고 작은 민간인 희생 사건이 산발적으로 발생했다.
희생자들을 보면 면장, 기자 등의 경력과, 국민회, 대한청년단 등 우익단체 간부 활동을 이유로 희생됐다.
특히, 홍산면의 윤대선 등 3명은 면장, 국민회원, 대한청년단원 등 우익성향의 인사들로 지방좌익에 의해 재산을 몰수당하고 인민재판을 통해 반동으로 몰려 구룡면 동방리 뒷산, 홍산면 분주소 등지에서 처형당했다.
구룡면 김영달 등 4명도 우익단체인 대한청년단, 국민회 등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지방좌익에 의해 고문과 구타를 당했으며, 9월 27일 구룡면 용당리 수랑천에서 포승줄에 묶인 채 총살됐다.
홍산면 북촌리의 박인규는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한청년단 등 우익단체 활동을 이유로 내무서원에 의해 연행돼 고문과 구타를 당했으며, 9월 29일 총살당한 상태로 발견됐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사건조사를 통해 진실규명대상자 11명을 포함 총 15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한편, 부여지역에서의 의용군 징집은 1950년 8월 중순 이후부터 발생했으며, 인민군 등은 대상자들의 인적사항을 사전에 파악해 자택 등지에서 강제로 연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한국전쟁납부사건사료집」,「납북자 명단 DB」와 참고인 진술을 통해 부여지역에서 671명 이상이 강제연행(납치)된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 중 유재옥 등 진실규명 대상자 2명의 신원과 피해사실을 확인했다.
부여중학교의 경우 학생들에게 소집령을 내려 학교강당에 집합시킨 후 강제연행 했으며, 진실규명 대상자 이완표는 <학적부>를 통해 의용군 참가로 제적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진실화해위는 가족관계등록부 등 관련 기록을 정정할 것과 한국전쟁 당시의 지역사를 바르게 기술하고 이를 교육할 것 등을 권고했다.
적대세력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가해세력 중 인민군, 좌익세력, 중공군 등을 지칭하고 있다.
또한 적대세력에 의한 강제연행은 북한의 점령지 점령정책의 일환인 의용군 징집 등 군사동원 정책으로 인해 시행됐고, 7월 중순 이후부터는 지역별로 목표인원을 할당해 강제징집을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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