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으로 거듭난 고딕의 영웅들
독특한 상상력과 비주얼로 승부하는 SF액션 어드벤처 ‘젠틀맨리그’
태권V와
마징가Z가 싸우면 누가이길까? 슈퍼맨과 베트맨이 뭉치면 천하무적이 되지 않을까? ‘젠틀맨리그’는 어린 시절 누구나 품었을 법한 이 같은
상상에서 출발한다. ‘세계문학전집’ 등의 책을 통해, 혹은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난 익숙한 히어로들이 드림팀을 결성한 것. 영웅에 대한
원초적 갈증을 원 없이 채워준다.
라이더 헤거드의 ‘솔로몬 왕의 보물’ 브람스토커의 ‘드라큘라’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등 영화의 캐릭터는
모두 한 세기에 걸쳐 사랑 받은 서구 판타지 모험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다수의 유명 소설에서 캐릭터는 따왔지만, 원작은 새로운 형식으로
화제가 됐던 알란 무어와 캐빈 오닐의 만화 ‘이상한 신사들의 리그(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an)’다.
개성 강한 영웅들이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화려한 불꽃은 뿌리칠 수 없는 매력. 1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쏟은 만큼 볼거리도 뛰어나다.
위험 요소가 있다면 한국적 정서에 위배되는 황당한 설정과 스토리. 하지만 현 시대 스크린의 ‘영웅’ 숀 코네리의 카리스마는 허무맹랑함에
대한 거부감을 상당부분 상쇄시킬 듯하다.
한
세기에 걸쳐 사랑 받은 슈퍼히어로가 한 자리에
영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고 있는 빅토리아 시대. 전쟁무기 판매로 부와 권력을 장악한 ‘팬텀’은 세계 평화를 위해 베니스에 모이는 유럽 각국의
정상들에게 테러를 가할 음모를 꾸민다. 이를 막기 위해 영국 정보국 첩보원인 ‘M’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영웅들을 불러모아 ‘리그’를
결성한다.
뱀파이어 ‘미나’ 스파이 ‘톰’ 불사신 ‘도리안’ 투명인간 ‘로드니’ 잠수함 노틸러스 호의 선장 ‘네모’ 야수 ‘지킬과 하이드’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마스터 헌터 ‘알란’. 이들 슈퍼히어로 7인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젠틀맨리그’는 선과 악의 대결 구도에 결말까지
전형적이다. 영화의 흡인력은 오직 캐릭터와 비주얼에서 발산된다. 특히, 영웅들의 독특한 장점과 성격은 단순한 스토리에 활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홍일점인 뱀파이어 ‘미나’는 도발적인 마력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현대적 여성상을 창출한다. 욕망과 영혼을 맞바꾼 퇴폐적인
귀족신사를 형상화한 불사신 ‘도리안’ 또한 원작 소설에서 큰 발전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인상적인 캐릭터다.
재미있는 인물 구도는 영국의 국민적 영웅 ‘알란’과 미국의 스파이 ‘톰’. 서로에게 부자지간 같은 끈끈한 애정을 느끼는 이들 관계는 문화의
세대교체를 상징한다. 후반부에서 총에 맞은 ‘알란’은 ‘톰’에게 “미래는 자네의 것이네”라고 말함으로써 영국 고딕소설의 영웅시대에서 미국적
영웅시대로의 전환을 암시한다. ‘현대는 미국 문화의 세기’라는 헐리우드의 일방적 ‘선언’ 혹은 ‘자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반면 투명인간 ‘로드니’나 캡틴 ‘네모’의 캐릭터는 스토리의 흐름에 맞춰 이용되는 도구적 인물이라는 느낌을 감추기 어렵다. ‘지킬과 하이드’는
대중적 감수성을 자극하며 후반부를 주도하지만 심리적 반전이 안일하고 상투적인 것이 흠이다.
눈을
사로잡는 첨단 테크놀러지의 향연
투명인간이나 뱀파이어 등 한국관객에게도 익숙한 캐릭터가 많지만, ‘젠틀맨리그’는 고딕소설의 영웅을 제대로 이해할수록 즐거워진다는 면에서
이질적인 요소도 많다. 근본적으로 좋은 원작의 좋은 캐릭터를 따왔다는 것 말고 캐릭터의 재창출에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이 영화의 진짜 카드는 비주얼이기 때문이다. ‘젠틀맨리그’는 스티븐 노링턴 감독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시각효과를
담당한 자넥 썰 감독의 작품에 가깝다. ‘매트릭스’ 시리즈와 ‘화성침공’ ‘트루먼 쇼’ 등 시각혁명을 주도해온 자넥 썰은 이 영화에서 또한
현란한 영상을 보여준다.
실감나는 액션을 위해 58개의 초대형 세트장을 제작했고, 정교한 미니어쳐 세트만도 수십개를 만들었다. ‘네모’ 선장의 노틸러스호 항해를
사실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42톤의 물이 흐르는 운하를 건설하기도 했다. 베니스 세트장은 미식축구 경기장 4개의 규모로 80여가지의 외관,
수백개의 상점진열대, 물이 가득찬 3개의 운하로 구성됐다.
첨단 컴퓨터그래픽 기술은 놀라운 향연을 펼친다. 한 마리 박쥐가 뱀파이어 ‘미나’로 변하는 부분은 CG장면 중 압권. 코트와 선글라스,
모자만 보이는 투명인간이나 ‘지킬과 하이드’의 근육이 커지면서 헐크처럼 변신하는 과정, 캡틴카의 아슬아슬한 질주 등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가득하다.
영화 전반을 뒤덮은 빅토리아풍 색채와 ‘입이 딱 벌어지는’ 노틸러스호를 보는 것만으로도 관람비가 아깝지는 않을 듯. 비주얼에 버금가는 탄탄한
스토리나 철학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다소 유아적인 황당함이나 유치함을 따지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젠틀맨리그‘는 여름 한
때 더위를 잊게 할 만한 시원한 블록버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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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