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대중화를 위한 힘있는 외침
10人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십시일反’
우리나라 현실은 비장애인 이성애자 내국인 남성의 조건을 갖춘 집합과
장애인 동성애자 외국인 여성으로 이뤄진 집합으로 양분된다. 그리고 전자가 후자를 억누른다. 단지 ‘다르다’는 차이가 ‘틀리다’라는 배타성과
차별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인권이 실종된다.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소위 ‘잘나가는’ 만화가 10인이 이 유린된 인권에
대해 책을 펴냈다. ‘십시일反’. 열 명이 모여 만든 책 한 권으로 차별에 맞서겠다는 의도다. 또한 말 그대로 ‘십시일반(十匙一飯)’,
한술 한술 떠서 밥 한 그릇을 만들었다.
소수자 편에 서서
시사만평으로
자신의 비판적 사고를 피력해온 박재동과 손문상은 ‘한 칸의 현실’을 그렸다. 애완견 취급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 외국인노동자를 ‘마리’로
세면서 현 상황을 비꼬고, 재력, 학력, 아버지 직업이 개인의 능력보다 우선시되는 구조를 풍자했다.
한겨레신문에 ‘비빔툰’을 연재하는 홍승우를 비롯 이희재, 조남준은 ‘습관적인, 일상적인’ 편견을 묘사했다. 여자이기 때문에 더 많은 노동과
학대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슬픈 자화상이 펼쳐진다. 특히 사실적 화풍이 특징인 이희재의 ‘첫발자국’은 고2 지체장애인 여학생의 시각에서
그가 넘어야할 숱한 걸림돌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도, 좁고 불편한 화장실 등 비장애인에게만 맞춰진 일상을 담아냈다. 결론부의 모든 학우들이
합심해 무관심한 어른들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는 장면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소망이다. 또한, ‘도날드 닭’의 이우일과 ‘천하무적
홍대리’의 홍윤표는 특유의 재치있는 화법으로 사회 전반에 깔린 ‘편견과 오만’을 풍자했다. 이우일은 고정관념과 모순된 선입견으로 똘똘 뭉친
전근 대적 표상인 ‘아빠’를 조롱하고, 홍윤표는 익숙한 동화를 패러디해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책의 마무리는 유승하, 장경섭, 최호철의 ‘슬픈 자화상’이다.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가난한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의 자격을
빼앗긴 한 여성의 자살, 행복을 누릴 수 없는 동성애자의 비애, 코리아드림을 품고 한국에 왔다 지옥을 맞본 외국인노동자의 절규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모든 영광과 승리는 혜택 받은 자들의 것이고, 이름 없이 스러져간 많은 영혼들은 눈물도 없이 사라져가는 현실이다. 하지만 “야만의 기록이
없는 문화란 있을 수 없다”고 철학자 벤야민도 말했듯, 현존하는 모든 문화유산이 그것을 창조한 위대한 천재들의 노고뿐 아니라, 이름도 없는
동시대 부역자들의 노고에도 힘입고 있음은 분명하다. 세상은 단 한 명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부유한 자, 가난한 자, 남자,
여자, 비장애인, 장애인 등 모두가 합심해 만들어 온 것이다. 그들이 한술 한술 모은 노력으로 십시일반 세상이 완성된다. 차별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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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