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라면이 좋아”
요리비법, 인간애 나누며 ‘맛있게’ 사는 사람들의 모임 ‘라면천국’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 한국인이 있을까. 인스턴트 식품이라고 믿기 어려운 깊고 얼큰한 맛에 무엇을 넣고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무궁무진 변신이 가능한
다양성. 더구나 가격도 싸고 요리하기도 쉬우니 이만큼 서민에게 매력적인 음식도 드물 것이다.
국내 최대 라면 마니아들의 모임 ‘라면천국’(cafe.daum.net/ramyunheaven)이
5만여명의 거대 회원을 거느리게 된 것도 라면의 이 같은 대중성과 무관하지 않다. 1999년에 만들어진 ‘라면천국’은 “라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라면사랑 이야기나 실컷 하자”는 운영자 최용민(35 서울 분당) 씨의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해 현재는 각종 매스컴을 타면서 꽤 알려진
동호회가 됐다.
라면 회사들이 앞다투어 자신들의 공장 견학을 권유하는 ‘특급’ 대우를 받는가 하면, 보유한 정보도 엄청나 ‘비법천하 라면천국’(범조사,
2001년)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라면 관련 1순위 취재원으로 손꼽힐 정도니, 이만하면 동호회 수준을 넘어 상당한
파워를 가진 단체인 셈이다. 하지만, ‘라면천국’의 존재 이유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단순하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라면을 먹을 수 있나’를
고민하는 것. 그리고 라면보다 따뜻한 사람들간의 정을 나누는 것.
그릇
따라, 조리법 따라 천차만별 라면 맛
‘라면천국’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라면 요리법이 이렇게 다양했나’ 놀랄 만큼 신천지가 펼쳐진다.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비법은? ‘라면천국’의
고수들은 입맛과 방식이 천차만별이라 정형화시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물과 불, 시간의 조절이 관건”이라는 최씨는 “도자기 만드는 것처럼
예술적 자세로 요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청권 운영을 맡고 있는 조은진(20 여 대전 월평동) 씨는 “어느 그릇에 끓이는가에 따라 맛이 다르다”고 밝혔다. 양은냄비는 깔끔한 맛인
반면, 뚝배기는 깊은 맛이 나는 식이다. 스프와 면을 끓는 물에 넣는 순서에 따라서도 다른 맛이 난다. ‘라면천국’ 회원 7,000명을
상대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라면을 끓일 때 스프 먼저 넣는 경우가 38%로, 동시에 넣는 26%, 면 먼저 넣는 24%보다 많다.
‘라면천국’에서 경상권 운영을 맡고 있는 오도현(28 여 대구 신천동) 씨는 “면보다 스프를 먼저 넣으면 물의 끓는 온도가 높아져 보다
짧은 시간에 빨리 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순수한 물보다 스프를 함유한 물이 끓는점이 높기 때문에 면이 불기 전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라면 마니아답게 밥보다 라면을 더 많이 먹는 회원도 상당수다. ‘라면은 몸에 나쁘다’는 통설이 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라면 먹고 탈 난적
없다”고 주장한다. “하루에도 2끼씩 라면을 먹는다”는 오씨는 “라면을 먹을 때 여러 가지 재료를 곁들이거나, 반찬을 많이 먹으면 부족한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다양한 오프라인 활동이 매력
“온라인의 익명성을 타파하려면 자주 만나는게 최선”이라는 최씨는 다양한 오프라인 활동을 ‘라면천국’의 운영방침으로 삼고 있다. 월 1회
정도 있는 정기모임은 지역별로 전국에 걸쳐 이루어진다.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맛있는 라면전문점을 찾아 함께 라면을 먹으며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직접 라면 공장을 견학하기도 한다. 최씨는”라면이 싸고 질이 떨어지는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공장을 방문해보면 의외로 깨끗하고 정밀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마니아 다운 소견을 피력했다.
‘라면천국’의 가장 독특한 행사는 식사를 거르기 쉬운 이웃을 위한 라면 무료 급식 활동이다. 지난 6월7일 탑골공원 노인들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했는데, 이날 행사에서 끓인 라면은 무려 410개였고 라면을 먹으려는 노인들의 행렬은 100m가 넘었다. 라면은 야쿠르트사에서 협찬했고
40여명의 회원들이 참여해 연료비와 반찬비를 충당하고 라면 끓이기와 배급까지 맡았다.
최씨는 “어른들께 밥이 아닌 라면을 제공하는게 죄송했는데 의외로 너무 좋아해서 보람을 느꼈다”며,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인데 장소 협찬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라면은 왜이리 맛있는 거야. 한 그릇 더 줘”라던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최씨는 지금도 마음이
훈훈해진다고 한다.
‘라면천국’이 거대 동호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라면의 대중성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말로 ‘라면천국’의 ‘깊은
맛’이다.
Tip |
‘라면천국’ 추억의 깊고 얼큰한 뚝계탕면 새콤달콤 겨울비빔면 |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