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 간 비운의 예술가
이산의 고통, 언어상실 작품으로 승화한 故 차학경
차학경(1951∼1982)은
국내보다 미국에서 더 잘 알려진 재미 미술가다. 그녀는 시 소설 사진 영화 퍼포먼스 등 전방위 예술분야에서 활동했고, 한국계 작가로는 백남준
이후 두 번째로 휘트니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시대를 앞서 포스트모더니즘과 탈 식민주의 미술을 실현한 예술가로
각광받았던 그녀는 그러나 아쉽게도 3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 쌈지스페이스에서 10월26일까지 열리는 ‘관객의 꿈: 차학경’은
그녀의 예술사적, 문학사적 위치를 조망해보는 자리로, 그녀의 삶과 작품을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다.
분절된 언어=단절된 이민자
11세에 하와이로 이민 가 낯선 땅에서 혼동과 단절을 경험해야 했던 차학경은 자신이 겪은 이산의 고통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작품에 담아냈다.
특히 그녀는 ‘언어’에 주목했고, 언어를 통해 개인의 분절되고 낯선 이미지를 투영했다.
언어는 단어와 단어가 하나의 문장구조 속에서 연결되어 상호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각 단어들은 서로 치환되거나 변위될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변화로 쉽게 분절되거나 파편화되는 특성을 지닌다. 그녀는 문장구조의 변화, 고립, 문맥과의 유리, 반복, 최소단위로의 환원
등의 과정과 조작을 통해 고의적으로 언어의 변형을 초래하고, 언어의 단절을 꾀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의 모습을 반영했다.
“외국인으로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본 고장 사람들에게는 단지 의사소통의 도구인 언어적 기능을 초월해 언어와 맺는 다른 관계들을
분석하고 실험하는 ‘거리 취하기’의 국면으로 확장된다”고 작가노트에 적힌 그녀의 고백처럼 새로운 땅에 적응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하는
이방인은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본 고장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몸부림’이 요구된다.
‘Voix(음성, 의견)’라는 불어가 찍힌 띠를 머리에 두르고, ‘Aveugle(눈먼)’라고 찍힌 흰 천을 입에 맨 그녀가 ‘말/ 실패/
나/ 없는/ 말/ 없는/ 목소리/ 없는/ 눈먼/ 행동’의 의미를 가진 불어가 적힌 천을 풀고, 앉거나 쭈그리는 행위를 벌이는 퍼포먼스 ‘눈먼
목소리(Aveugle Voix)’는 그러한 의미를 집약하고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 땅에서 그녀가 겪었던 단절감과 소외감이 느껴진다.
‘이동’으로 인한 정체성 혼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그녀는 ‘이동’을 통해 드러낸다. 그 대표적인 것이
메일아트다. 우편을 통해 작품을 전달하고 정보를 교류하면서 그녀는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한 이민자인 그녀는
우편물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동의 시간과 공간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야 했고, 보내는 자와 받는 자의 상호교환을 통해 의미가 생성되는
우편물은 그녀의 모습과 닮아있다.
“사각의 어두운 갤러리에서 보여준 거의 마술에 가까운 공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퍼포먼스 ‘보이는 다른 것들, 들리는 다른 것들(Other
Things Seen, Other Things heard)’은 그녀가 관객을 어디론가 이동하려는 의도가 숨겨있다. 바닥의 한 끝부분이 모래로
덮어있고 두 개의 슬라이드와 영사기로 보여지는 자갈의 흑백 이미지가 벽의 한쪽 끝에 비춰진다. 녹음된 음성은 마치 햄릿의 대사와 같이 의미심장한
존재론적 질문들을 던진다. 손, 풍경, 칼 드레이어의 영화 ‘잔 다르크의 열정’ 스틸, 한복을 입은 소녀, 차학경의 얼굴 등 상징적 이미지들과
구원, 정화, 금지된, 회귀, 포기 등의 문구가 보인다.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으로의 회기가 시도된다.
비디오아트 ‘여정(Passage Pay sages)’에서는 정체성을 찾기 위한 그녀의 고민과 불안이 뒤엉켜 표출된다. 이는 풍경, 방,
어린 차학경의 모습, 헝클어진 침대로 이뤄진 3채널 비디오 작품으로, 차학경의 손이 편지를 여는 장면, 끈으로 묶여진 편지뭉치, 꺼진 양초,
영어와 불어로 된 어둠과 빛에 연관된 단어들이 보여졌다 사라진다. 비디오의 바뀌어 보여지는 속도는 감정적인 호소력을 느끼게 하고, 점점
희미해지는 어귀들은 사라져가는 기억들을 의미한다.
근원적 존재성으로의 회귀
잊혀지는 기억들을 붙잡아 회귀하려는 시도는 뿌리 찾기로 드러난다.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 플라스틱에 칼라복사 된
부모의 이미지와 펜으로 쓴 글이 포함된 작품이나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로 시작하는 정철의 시조를 인용, ‘부모님께 바치는
시’를 적은 작품 등, 그녀는 자신의 근원을 짚어나간다.
‘연보’에서는 좀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찾아 나선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을 각각 붙이고 그 옆에 얼굴이 겹치도록 두 사진을 합성했다.
그 다음 부모의 결혼 사진을 붙이고, 차학경을 포함한 형제자매들의 사진을 붙였다. 한국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그들은 한국인이다. 그러나 한국이
아닌 낯선 땅에 정착하고 있는 그들은 완전한 한국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미국인도 아니다. 그녀가 겪은 공간의 이동은 근원적 자아에 대한
의문과 탐구를 낳았다.
후기 식민주의 예술담론이 거론되던 때부터 차학경의 작품세계를 알리는 데 힘써온 로렌스 R. 린더(휘트니 미술관의 현대 미술부 큐레이터)는
“차학경이 강조하는 회귀의 범위는 그녀가 모국의 문화와 모국의 영토로부터 이주한 시점에서 그녀 자신의 근본적, 근원적인 존재성으로 회귀하려는
시점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모두 연결된다”고 분석했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