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아래 정대협)에서 8일 오전 11시 서대문 독립공원 안 부지에서 '희망의 터 다지기'라는 이름으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착공식이 열렸다.
이날 착공식에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롯하여 정대협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했던 민주당 이미경 의원과 김유정 의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참석했으며, 정대협 관계자를 200여 명과 함께 중고등학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특히, 일본에서 살고 있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힘든 싸움을 해 오신 송신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안해룡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현재 국내에서 상영중)의 제작자인 양징자 씨가 단장으로 많은 일본시민단체 및 재일 한국인들과 함께 <박물관착공식참석투어단>을 조직하여 착공식에 참석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서 박물관 건립 모금공연을 해 온 재일동포 가수 이정미 씨도 함께 참석했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은 1994년 '여성과 전쟁' 사료관 건립준비위원회 발족으로 시작해 2003년 12월 18일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한 추모회 및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을 위한 점화식'을 개최하면서 박물관건립 이야기가 공식화됐다.
특히 이날 17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우리가 돈을 내야 젊은 사람들도 기금을 낼 것"이라며 10만원∼100만원씩 후원금으로 내놓았다. 정대협은 이 돈에 대해 "할머니들이 정부에서 받은 연금을 쪼개 모은 소중한 돈"이라고 설명했다.
1988년 2월 정대협 구성을 논의를 시작으로 1990년 11월 16일 37개 여성단체와 개인이 모여 결성과 함께 ▲ 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 진상규명, 국회결의사죄 ▲ 법적배상 ▲ 역사교과서 기록 ▲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 책임자 처벌 등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정대협이 그동안 요구해 온 7가지 사항 가운데 사료관인 박물관이 첫 삽을 뜨게 됐다.
건립 모금운동이 시작된 지 5년, 박물관 건립위원회가 발족된 지 4년 만에 맺은 결실로 오랜시간이 걸린 셈이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2000년대 들어 일본 사회가 점점 보수·우익화되고, 위안부할머니들이 한분 한분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일본 정부에 요구만 할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건립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생각했다"며 "위안부 문제는 여성인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제 식민지라는 배경으로 탄생한 아픈 역사인 만큼 독립운동과 별개일 수 없고 위안부는 결코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게 아니라 피해를 극복하고 평화와 희망을 보여준 승리의 역사"라고 밝혔다.
윤 대표는 "정작 위안부할머니들이 살고 있는 한국에서보다 가해국인 일본 시민들의 관심과 정성에 더 감동받을 때가 많다"며 "한국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머리로만 공감하지 말고 행동을 통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윤 대표는 "박물관은 건물 자체 만이 아니라 일본 사죄 및 우리가 요구해 온 사안을 같이 움직이는 행동하는 박물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모인 금액은 목표 금액의 30%인 17억원이지만 턱없이 부족한 자금이기에 20억원 이상을 더 모아야 한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들어설 서대문 독립공원 내 주차장 옆 매점부지로 연면적 1233.21㎡, 지하1층 지상 3층 건물로 지어질 예정이다.
설계를 맡은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이명주 교수는 "서대문형무소와 동일한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정신을 상징하는 3층과 육체를 상징하는 1층으로 구분했고,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갖는 상실감·분노·한(恨)은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그 틈에서 싹트게 하여 아연판 금속재료의 2층 매스는 가슴에 맺힌 분노와 비수를 상징하게 했다"며 "그러나 그 안에는 더 이상 분노가 존재하지 않게 하고 이질적인 매스 안에는 초연함과 용서가 담긴 교육의 장이 존재하게 하고, 현재와 미래세대에게 반인간적이고 끔찍한 범죄에 관한 내용을 교육할 공간을 담는 것으로 일본을 용서하고 우리들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의 지하 1층은 한국을 비롯 중국, 필리핀 네덜란드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 위안부할머니들의 사진과 유품이 전시되는 등 위안부할머니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꾸며지고, 지상 1층은 팔레스타인 전쟁 등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전쟁을 다룬 특별전시실이, 2층은 '전쟁과 여성'을 주제로 한 상시전시실이, 3층은 사무실과 위안부 관련 자료실이 들어선다.
하지만 박물관은 도시계획실시인가도 받았지만 세워질 부지에 있는 매점 건물 철거 허가가 나지 않아 터를 다지는 기초공사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착공식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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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는 착공식 시간과 같은 시간에 서대문형무소 입구에서 박물관 건립 반대 집회를 하여 한때 긴장감이 돌았지만 정대협과의 마찰없이 끝났다.
현재 서울시는 박물관 건립 부지로 서대문 독립공원 내 주차장 옆 매점부지를 승인했고, 문화재청과 서울시공원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지난해 10월 도시계획실시인가도 허가가 났지만 광복회와 순국선열유족회 등 독립유공자관련단체들의 반대 활동으로 현재 건립 허가를 위한 절차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순국선열유족회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서대문형무소는 성스러운 독립항쟁의 00000유산이며, 후세에 보여주는 현장인데 박물관을 짓겠다는 발상에 대해 비통하고 우려스럽다"면서 "박물관 건립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독립공원만은 피해달라"고 요구했다.
독립유공자관련단체들 그동안 박물관에 대해 "독립운동가들과 독립운동을 폄하시키는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이에 대해 정대협 강주혜 사무총장은 순국선열유족회에 대해 "아직 이 분들은 가부장적인 생각이 많아 뜻을 이해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해 아직 해결되지 못한 역사가 갈등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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