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맞아?
세련된 비주얼에 놀라고, 국적불명의 정서 때문에 또 한 번 놀라는 ‘내츄럴 시티’
‘충무로에서 그게 가능할까?’ 민병천 영화는 모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한국형 핵잠수함 영화가 가능할까?’라는
회의적 질문에 대한 답이 ‘유령’이었고, ‘한국에서 SF 영화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에 대한 보고서가 ‘내츄럴 시티’다. ‘모두’라고 해
봐야 두 작품이다. 하지만, 이 두 영화의 스케일과 영화사적 무게를 생각해볼 때 결코 ‘겨우’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제작기간 5년, 제작비 76억원을 들인 초대형 SF 블록버스트 ‘내츄럴 시티’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이 될 것인지, 아니면 헐리우드의
‘벽’을 확인시킬지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싱겁게도 결과는 ‘유령’의 상황 재현이다. ‘유령’은 진일보한 특수효과 기술로 한국영화에서
전무한 영상을 선보였지만, 스토리의 허술함과 독창성의 부재로 극명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내츄럴 시티’ 또한 같은 방식으로 한국형
블록버스트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준다.
‘블레이드 러너’의 밋밋한 리메이크
예고편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내츄럴 시티’의 비주얼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만하다. 미술을 전공한 민병천 감독은 “비주얼에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내츄럴 시티’에서 관객을 가장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비주얼이다.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는 섬세하고 미학적인
비주얼은 영화의 다른 요소들에 비해 지나치게 압도적이다. 이 말은 결국 화려한 영상미를 스토리가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츄럴 시티’의 문제는 단순히 스토리의 엉성함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정도의 비주얼이라면 스토리의 미흡함은 큰 불만이 안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독창성이다. 거칠게 말해서 ‘내츄럴 시티’에서 건질 것이 한 가지 있다면 비주얼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편이 더욱 정확하다.
왜냐하면 그 황홀한 비주얼 마저도 남의 것이기 때문이다.
폐기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사이보그와 사이보그 제거 임무를 맡은 인간과의 애절한 사랑이라는 기본 설정부터 몽환적 분위기와 묵시록적 세계관까지
‘내츄럴 시티’는 ‘블레이드 러너’를 빼박았다. 굵직굵직한 요소 말고도 캐릭터나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도 흡사한 부분이 많다. 민병천 감독은
‘내츄럴 시티’가 ‘블레이드 러너’의 오마주임을 애초부터 밝혔다. 하지만 오마주라는 이유만으로 독창성 부재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오마주든 패러디든 리메이크든 새로운 해석이나 자신만의 철학이 가미되었을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민병천은 ‘헐리우드 키드’?
민병천은 안정효의 소설이자 정지영 감독의 영화인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주인공 임병석을 연상시킨다. 헐리우드 영화의 명대사를 뒤섞은
임병석의 시나리오처럼, 민병천 영화는 헐리우드 명장면들의 짜집기라는 인상을 버리기 어렵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미 감독 스스로가 자신의
급소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헐리우드 SF와의 차별을 위해 동양적 이미지를 강조했다”는 감독의 말은 그가 얼마나 독창성을 의식했는가를
대변한다.
하지만 결과물은 의지와 항상 같을 수는 없다. ‘내츄럴 시티’는 동양적 이미지 마저 ‘블레이드 러너’나 ‘공각기동대’의 아시아적 분위기를
모방하는 우를 범한다. 하다못해 대사나 나레이션도 번역투고 작은 단역들까지 헐리우드 영화에서 전형화 된 캐릭터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면에서
정말 한국영화가 맞는지 눈을 비비게 한다. 첫 번째는 수준 높은 비주얼 때문이고, 두 번째는 한국적 현실과 너무도 무관한 국적불명의 정서
때문이다.
영화의 핵심 카드로 제시한 멜로적 요소도 피상적이고 공허하다. 사이보그를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겠다던 ‘내츄럴 시티’는 ‘과연 인간과
사이보그의 사랑은 가능한가?’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을까?’ ‘인간과 사이보그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가?’ 등의 철학적 질문은 외면한다.
같은 사이보그를 소재로 한 ‘A.I.’는 사랑의 속성과 사이보그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고민했고,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탐구 결과를 보여줬지만, ‘내츄럴 시티’는 그 영화들의 이미지는 차용하면서도 그 ‘깊이’에는 전혀 근접하지 못한다.
한국영화도 살고 민병천도 사는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충무로에서 꼭 필요한 시도였으며, 한국영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작업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순전히 장인정신으로
기술과 자본의 한계를 넘어선 민병천 감독의 패기와, 그의 세련된 미적 감각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내츄럴 시티’는 한국 영화의 테크닉과
스타일을 분명 업그레이드 시켰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긴 했지만, 한국형 블록버스트가 경계해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한 번 더 각인 시킨
점도 의미 있다.
헐리우드 영화를 닮고 싶은 욕망은 좋다. 헐리우드 스타일로 이야기해도 나쁠 건 없다. 단지, 민병천 감독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전달하는 방법을 깨닫는다면 그때는 진정한 한국형 블록버스트가 탄생할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민병천이 살 길이요, 한국영화가
살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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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