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웨딩드레스는 내가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제작하는 사람들, ‘웨딩드레스 만들기’ 동호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작업실. 7명 남짓의 여자들이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각자의 작업에 몰두해 있다. 책상 위에 제도 용지와 직각자를 올려놓고
복잡한 계산에 빠져 있는가 하면, 순백 옷감에 얼굴을 묻고 구슬 박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도 있다. 드르륵 드르륵 연신 재봉틀이 돌아가고
“레이스 방향 어떤지 봐주세요” “이건 조금 더 위로 올려야 예쁘지” 질문과 대답이 다정하게 오간다.
분주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엄숙하고, 차분한 듯 하면서도 열기로 가득한 이 곳은 바로 ‘웨딩드레스 만들기’(http://cafe. daum.net/taragae)
동호회 스터디 현장. ‘내 웨딩드레스는 내 손으로 만들어 입겠다’는 신세대 신부들이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회원들 중에는 이미 결혼을 한
주부도 꽤 많아 단순히 예비신부를 위한 동호회라고 할 수는 없다. 웨딩드레스는 결혼식 예복임과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 아니던가.
‘웨딩드레스 만들기’는 웨딩드레스 그 자체가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편이 더욱 정확하다.
주
1회 1년 투자하면 기본기 완성
“내가 원하는 스타일에 가장 가깝게, 머리 속에 있는 그대로의 드레스를 실물로 만들 수 있어 좋다.” 예비신부 정미선(24) 씨는 지난
4월 웨딩드레스를 직접 만들어 입기 위해서 동호회에 가입했다. 평소에 원하던 대로 끝자락이 길게 내려오는 우아하고 심플한 웨딩드레스를 구상한
정씨는 결혼식을 2주 가량 앞두고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현재 정씨는 드레스 분위기에 맞춘 장갑, 화관, 코사지, 베일 등 소품까지
제작이 끝난 상태다.
웨딩드레스 제작법을 마스터하는 스터디 정규 과정은 1년 남짓 걸리지만, 정씨는 결혼식에 맞춰 드레스를 완성하기 위해 3개월 내에 한 벌의
드레스를 제작하는 속성반 ‘브라이드 그룹’으로 중간에 전환했다. ‘브라이드 그룹’은 결과물을 빨리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스터디
교사가 패턴이나 재봉, 가공 등 대부분의 과정을 맡아 주기 때문에 실질적인 제작 기법은 익히기 어렵다.
반면, 정규 수업은 아기드레스, 이브닝드레스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과정으로 주1회 1년 정도를 꾸준히 투자하면 혼자서도
다양한 웨딩드레스를 응용해서 만들 수 있게 된다. 스터디를 이끌고 있는 손윤경(35) 씨는 두 그룹의 차이를 “만들기를 원하느냐 배우기를
원하느냐”라는 한 마디로 설명했다.
결혼 날짜가 급박해 ‘브라이드 그룹’으로 전환했던 정씨는 “할수록 욕심이 생긴다. 결혼 이후 정규과정에 다시 들어가 제대로 배울 예정이다”고
말했다. 결혼 이후에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어디에 쓸까? 정씨는 “직접 만든 아기드레스를 아이에게 입힐 수도 있고, 친구에게 선물로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워낙 땀흘려 만든 것이라 남에게 선물하긴 아까울 것 같다”며 웃었다. 정씨는 안양에서 서울까지 먼 거리를 오가는 열성파지만
부산, 울진, 대전 등지에서 숙박비까지 투자하며 스터디에 참여하는 회원들에 비하면 특별히 대단한 편도 못된다.
패션쇼, 작품 사진 전시 등 프로그램 다양
2001년 6월 웨딩매니저에 적을 두고 동호회에 가입한 서원애(26) 씨는 스터디를 시작한지 1년 정도가 지났다. 직장생활에 쫓겨 스터디에
자주 불참했다는 서씨는 진도가 느린 편으로 현재 이브닝 드레스 제작 단계를 배우고 있다.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서씨는 “지속적으로 공부해 웨딩드레스 제작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서씨는 “스터디 담당하는 선생님이 일대일로 꼼꼼하게
가르쳐 주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하면 의외로 쉽다”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실력보다 정성”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말 왕초보가 웨딩드레스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웨딩드레스는 의상 전공자에게도 제작이 까다롭다는 ‘옷
중의 옷‘이 아닌가. 회원들에게 웨딩드레스 제작에 관한한 ‘도사’로 불리는 스터디 교사 손씨의 경력은 왕초보를 어느 정도 안심시킨다. 손씨는
웨딩업계의 베테랑이긴 하지만 의상 계통에 대한 경력은 처음에 전혀 없었다.
웨딩매니저 시절 손씨는 예식이 끝나고 손상된 웨딩드레스를 수선하느라 40여만원씩 비용이 드는 것이 속상했다고 한다. 이것이 손씨가 웨딩드레스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단순한 수선은 내가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웨딩드레스에 바늘을 대기 시작해 점점 스케일이 커진 것. 현재
손씨는 대학원에서 의상학을 전공하고 있다.
손씨가 ‘웨딩드레스 만들기’ 동호회 스터디를 이끌게 된 것은 2001년 2월 즈음이다. 2000년 10월 이미 동호회가 개설됐지만 활발한
활동은 없었다. 손씨는 동호회 사이트 게시판에 적힌 웨딩드레스 제작 관련 질문에 대해 답변을 올리곤 했는데, 한번은 문자로 설명하는데 답답함을
느낀 손씨가 무심코 “직접 보고 이야기하면 편할 텐데”라고 말했다. 이 말은 스터디를 만드는 작은 불씨가 됐다. 스터디를 운영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손씨는 “자신이 배운 것까지만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제안에 응했다.
‘웨딩드레스 만들기’는 스터디 외에도 정기모임에서 작은 패션쇼를 열기도 하고, 자신이 만든 웨딩드레스 사진을 전시하기도 한다. 회비는 한달에
2∼3만원 수준. 일주일에 5,000원으로 책정된다. 재단 가위나 쵸크 정도의 도구는 따로 구비해야 하지만 미싱은 작업실에 있기 때문에
필수 항목은 아니다. 20여만원 정도면 시중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근사한 웨딩드레스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입을 수 있다. 무엇보다
세상의 단 하나뿐인 드레스를 입는다는 것이 결혼식의 의미를 더해준다. 거기다 직업이나 부업으로도 활용가능하고, ‘특별한 날’을 함께 축하해주는
‘사람’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