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미 넘치는 노년의 대학교수 데이비드(벤 킹슬리). 이혼남인 그에게 순수하면서도 섹시한 매력을 지닌 대학원생 콘수엘라(페넬로페 크루즈)가 등장한다. 첫 눈에 반한 그녀와 충동적으로 성관계를 맺는 데이비드.
허나 그 일이 있고나서부터 예상치 않은 번민에 사로잡힌다. 하룻밤 욕망의 대상으로 그녀를 만났는데, 점점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섹스만 할 뿐 사랑을 믿지 않았던 데이비드는 이제 그녀에게 집착한다. 만남이 계속될 수록 서른 살 나이 차가 자꾸만 생각나고 그녀가 떠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을 원하자 두려워하며 피하고 만다.
결국 헤어지는 두 사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어느 날, 콘수엘라가 그의 앞에 나타나는데 (중략)
영화의 타이틀 엘레지(Elergy)는 '슬픔의 시' 혹은 '슬픔을 나타내는 악곡'을 의미한다. 필립 로스의 단편 소설 'The Dying Animal'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애잔한 내용의 수필을 읽는 것 같다. 만남과 헤어짐, 잠깐 나오는 격정적인 베드신, 그리고 극적인 반전이 있지만, 관객은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다.
말초적인 자극보다는 사고(思考)하게 만드는 <엘레지>. 사랑의 의미와 조건이 무엇인지를 생각게 하고 인간이 늙어가는 것과 사랑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이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흥미를 위한 영화적 장치를 가급적 배제하고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행동에 공감이 간다는 점이다. 우선 이 영화에는 지나치게 착하거나 악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이혼을 경험한 후에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현명하게 살아간다고 자위하지만, 결국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더욱이 편모슬하에서 성장해 어느 덧 가장이 된 아들이 찾아와 애인이 생겼다며 이혼 문제를 상담하러 오는 웃지못할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그리고 절친한 친구인 조지(데니스 호퍼)는 데이비드와는 대조적인 삶을 살지만, 곧 닥쳐올 죽음 앞에서 눈물만 흘릴 뿐이다.
<그림1>
과연 데이비드와 조지 중에서 어느 한 쪽의 인생을 취하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까? 물론 정답은 없다. 그러나 콘수엘라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녀는 자신에게 닥쳐온 사랑 앞에 진솔하고 당당했다.
남들 눈을 의식하는 데이비드와 달리,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만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어차피 그녀는 떠날 테니까." "나만큼 당신을 이해해 줄 사람은 없어!" 주변 사람의 이러한 대사는 단지 그들의 판단일 뿐, 정작 그녀의 사랑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필립 카우프먼의 <프라하의 봄>이 떠올랐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원작인 이 영화에 나오는 사비나(레나 올린)는 진지하거나 무거운 방식의 삶에 부담을 느껴 가벼운 것만 추구한다.
사랑은 없고 섹스만 추구하는 삶에 회의감도 들지만, 정작 그녀를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온 대학교수가 청혼하자 도망쳐 버린다.
데이비드도 대학 강단이든 라디오 방송이든 인생을 논함에 있어 체계적이고 유려한 화술로 막힘이 없지만, 정작 그 상황이 자신에게 해당되자 자기변명과 몸 사리기에 급급했다. 그 역시 사비나처럼 진지한 삶을 추구하기에는 너무도 개인주의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그의 인생이 콘수엘라의 전화 한 통으로 바뀌어 졌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염원했는지 깨달았으며 죽음과 싸우는 그녀의 고통마저 함께 하고 싶어했다.
<그림2>
흔히 '사랑에는 국경선이 없다' 고들 말한다. 신분이나 나이 차이 심지어 불륜처럼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아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한번쯤 용기(?)를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생이란 되풀이 할 수 없어 그 존재가 너무 가벼워 참을 수 없다" 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의미를 비틀어 보고 싶어진다.
어차피 한번 뿐인 인생, 미리 걱정부터 하면서 아무 일도 못할 바에야, 차라리 당당히 받아들이는 게 덜 후회할 지도 모르는 게 인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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