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송두율 쇼크
검찰 조사결과 처벌 수위 관심
국가보안법
혐의를 받고 있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에 대한 검찰조사가 지난 10일 4차 소환을 끝으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서울지검 공안
1부는 조사결과 송 교수가 실정법을 위반한 것으로 잠정 결론짓고,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검찰 조사의 핵심은 송 교수가 서열 23위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인가와 그가 펼친 독일 내 친북 행위의 수위다. 아직 검찰 조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속단할 수 없지만, 지난 국정감사 기간에 국정원이 밝힌 내용만으로도 송두율=후보위원 김철수=국가보안법위반의 등식은 성립했다.
문제는 그가 정치국 후보위원임을 언제 알았으며, 무슨 활동을 했느냐다.
말 번복한 송 교수 불신키워
국정원과 검찰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송 교수에 대한 의혹은 남한 내 이념갈등의 불씨가 됐다.
9월22일 귀국 당시만 해도 송 교수 측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가 아니다”며 “정정당당히 검찰 수사를 받아 혐의를 풀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9월23일 국가정보원의 조사가 시작되자 송 교수의 말은 조심씩 바뀌었고, 충격적인 사실들이 하나씩 송 교수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9월25일 내일신문이 머리기사로 “송두율은 북 노동당 김철수”라고 정부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자, 송 교수 측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김철수)라는 호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임명돼서 활동한 게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송 교수가) 김철수라 하더라도 정치국 후보위원과는
분리되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체의 혐의사실을 부인했던 것과 달리 송 교수와 김철수의 연관성을 최초로 시인한 것이었다.
10월1일 국정원 국정감사에서는 송 교수가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서열 23위의 노동당 후보위원인 것과 북한으로부터 15만 달러 상당의 돈도
지원받은 사실을 진술한 것으로 국정원 국감결과 밝혀졌다.
송 교수에게 주어진 혐의 등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고, 그를 이해하고, 두둔하던 사람들에게도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10월2일 송 교수의 기자회견에 앞서, 김형태 변호사는 작가 황석영 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자신이 변호를 맡은 의뢰인의 새로운
사실들이 알려지자 그도 많이 당황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황 씨에게 송 교수가 이미 전향의사를 밝혔으니, 모든 사실을 털어놓도록 설득해
달라는 것이었다.
“국정원, 송 교수 서열 23위 노동당 후보위원”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지난 1일 한나라당 정보위 간사인 정형근 의원은 국정원 보고를 전제로 “송 교수는 1973년 9월 처음 방북해
노동당에 입당한 뒤 올 3월까지 18회에 걸쳐 대남공작활동 등의 목적으로 방북한 것으로 국정원측이 이날 국회정보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밝혔다” 전했다. 송 교수는 또 1991~1995년까지 매년 2만~3만달러를 연구비 명목으로 받는 등 북측으로부터 모두 15만달러 정도를
받았다고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영구 국정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송 교수를 소환해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본인 자백
등을 통해 확인했다’며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송 교수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고 정 의원이
전했다.
송 교수는 독일 체류 당시 서울대 출신 재독 북한공작원인 이재원(71)씨에게 포섭돼 모스크바를 거쳐 1973년 입북해 초대소에서 주체사상
및 공작원 교육을 받고 노동당에 입당했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이후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때 자신이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북한 장례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된 사실을 재독 북한공작원에게서
통보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1991년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정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고 정 의원은 전했다.
송 교수는 또 1996년 8월 부친 사망시 재독 북한 공작원을 통해 1500마르크의 조위금을 받았으며 이후 노동당 창당일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 등에 친필로 ‘(김정일) 장군님 만수무강축원문’과 ‘충성맹세문’을 10여 차례 작성해 북측에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은 지난 1일 송 교수의 친북 활동 혐의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 짓고 기소 의견과 함께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국정원은 송 교수를
조사한 결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가입(북한 노동당 가입-3조1항2호) △특수탈출(초청을 통한 북한 방문-6조2항) △회합·통신(김일성
주석 등을 만난 점-8조1항) △금품수수(북한에서 항공료 등을 받은 점-5조2항) 등의 혐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송 교수를 4차례 소환 조사했다. 송 교수가 받고 있는 대부분의 혐의가 인정돼, 늦어도 이달 중순이면 송
교수의 신병처리 방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지검 공안1부는 그동안 송 교수의 친북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그가 월북을 권유했다는 오길남 씨와 최초로 송 교수를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지목한 황장엽 씨를 시내 모처에 불러 조사했다.
송 교수 사법처리 반대 움직임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과 교수들은 지난 8일 미카엘 가이어 주한 독일대사에게 송두율 교수를 도와줄 것을 요청하며 필요할 경우 서울에 가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마티아스 그룬트만 학과장 등 사회학과 교수 13명은 ‘독일 국적 송두율 교수의 한국 방문과 관련한 상황’이란 제목의 전자우편에서 “한국에서
조사를 받는 송 교수에 대한 대사의 배려와 지원”을 요청했다. 이들은 “주한 독일대사가 한국 당국과 접촉하며 활동하고 있다고 믿는다”면서
“대사를 어떤 형태로든 지원해주고 경우에 따라 대사관 직원들을 지원해주기 위해 우리 동료들을 서울로 보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서한에 서명한 한스-위르겐 크뤼스만스키 교수는 “송 교수 문제는 기본적으로 통일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분단국 학자로서 한 일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위르겐 하버마스 프랑크푸르트대학 명예교수가 휴가에서 돌아오고 대학이 개학하면 독일 지식인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4개 종단의 진보적 종교인들의 협의체인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공동대표 함세웅 신부, 청화 스님, 나핵집 목사, 이정택
교무)도 이날 오전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송 교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용을 호소했다.
협의회는 “우리 사회는 송 교수 문제를 너그럽게 포용하고 넘어가더라도 국가안보에 전혀 문제가 될 소지가 없는 성숙한 사회임을 자부한다”며
“시대를 거스르는 매카시즘 선풍에 흔들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송 교수가 함께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0일 검찰 조사에 응한 송 교수 측 김형태 변호사는 “송 교수가 독일로 돌아갈 생각이 없고, 한국에 정착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학술활동을 하고싶어 한다”며 “송 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만큼 재판부가 공정하다면 승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범수 기자 skipio@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