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한번 키워보실라우?
청정지역 산골에서 멧돼지 사육…1년 순수익 3억원 이상 올려
멧돼지
날쌔기가 마치 사냥개 같았다. 150kg이 넘는 그야말로 ‘돼지일 뿐인 놈’이 가파른 산을 타고 오르는데 도무지 좇아갈 재주가 없었다.
집돼지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사납기도 이를 데 없었다. 저마다의 몸뚱아리에 영광의 상처 서너 개는 가지고 있었다. 주도권 싸움을 벌이다
난 것이다.
충북 제천시 청풍면 연론리 우주농원. 이곳 주인장 김구상(63) 씨 ‘슬하’에는 얼추 1,000마리의 멧돼지가 있다. 멧돼지 사육만 30여
년. 김씨는 ‘멧돼지 할아버지’로 불린다.
구제역과 콜레라로 돼지값이 폭락해 돼지사육농가들이 울상을 지을 때도 그의 멧돼지 농원은 끄떡없었다. 청정지역에서 키우는데다가 멧돼지들이
병에 대한 내성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멧돼지 사육을 통해 1년에 3억원 이상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
김구상 씨의 청풍 소재 농원에서는 3만평이 넘는 산에 멧돼지를 놓아 기른다. 야생성 때문이다. |
1,000여 마리 사육, 멧돼지 대부
“땡, 땡, 땡…” 김구상 씨가 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을 쳤다. 그러자 멧돼지들이 산 속에서 슬슬 모습을 드러냈다. 잘 훈련된 양을 보는
듯 했다.
김씨는 멧돼지들을 돼지우리쪽으로 불러들이지 않고 산 이곳저곳 지정된 장소에 먹이를 가져다 놓았다. 사육을 시키기는 하지만 원래가 야생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분만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멧돼지를 우리에 가두지 않는다고 전했다. 멧돼지들은 평상시 산에서 지낸다.
3만여 평 넘는 산이 멧돼지 농원이다. 멧돼지들이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 하게 산을 철책으로 둘러친 형태였다.
김씨의 농원은 이곳 청풍 외에도 4군데가 더 있다.
정선 미탄 대화 제천에 적게는 100여 마리에서 많게는 300여 마리씩 멧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멧돼지를 100마리 이상 키우는 사람은 5∼6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김씨가 제일 먼저 시작을 했고, 사육 마리
수도 가장 많다.
멧돼지를 기른지 30년이 넘는 '멧돼지 할아버지' 김구상 씨. |
일본에도 수출
김씨가 멧돼지와 인연을 맺은 것은 30여 년 전. 산림청에서 멧돼지를 분양하면서 길러보라고 권유했던 것.
당시 겨우 다섯 마리를 분양받았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그 다섯 마리가 1,000여 마리로 늘어났다.
처음에는 판매 활로를 뚫지 못 해 어려움을 크게 겪었다. 멧돼지 고기를 취급하는 전문식당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멧돼지 고기의
좋은 점을 홍보하고 무상으로 공급하면서 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그 결과 멧돼지고기 전문식당이 점점 늘어났고, 고급음식으로 인식되면서 호텔에서도 많이 찾고 있다.
올림픽 선수촌에도 멧돼지고기가 공급되고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 때 5개월 동안 무상으로 공급한 게 인연이 돼 여지껏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국위선양을 하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멧돼지고기를 먹고 금메달을 많이 따서 86아시안게임 때는 일본을 제치고 종합2위를 했고 88올림픽 때도 종합4위를 한 거예요. 우리 멧돼지가
효자노릇했다니까요. 주위에서 나보고 대한체육회장 하라는 소리도 있었어요.”
멧돼지고기는 국내만 공급되는 게 아니고 일본에 수출도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는 꺼먹소가 1kg에 12,000원 하는데, 우리 멧돼지는 1kg에 15,000원 받아요. 찬바람이 부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20~30톤 정도 수출합니다.”
병에 강하고 수익성 탁월
멧돼지는 집돼지에 비해 수익성이 월등하다. 현재 집돼지는 100kg 산지가격이 13만5,000원으로 지난 6월에 비해 8만원 정도 폭락해
생산원가도 건지지 못 하는 상태다.
하지만 멧돼지는 100kg에 50만원 이상은 너끈히 받는다. 단지 하나 사육기간이 다소 길다. 집돼지의 사육기간이 220일인데 비해 멧돼지는
2년 가까이 된다.
긴 사육기간은 더 값싼 사육비와 병에 대한 내성으로 보상받는다. 게다가 가격도 세 배 이상 받을 수 있으니 훨씬 이익이다.
멧돼지를 2년 동안 키워서 출하하는 데는 12~15만원이 든다고 한다. 이 때 멧돼지는 150~180kg 가량 된다. 가격은 70~80만원
정도. 집돼지를 220일 동안 키우는 데 드는 비용보다 오히려 적게 들고, 가격은 서너 배 이상 더 받는 것이다.
사육비용이 덜 드는 것은 멧돼지의 야생성 때문이다.
“멧돼지들은 산에서 뱀을 잡아먹기도 하고, 풀을 뜯어먹기도 해요. 흙을 파먹고 미네랄을 보충하기도 하구요. 이 놈은 별 거 다먹는 잡식성이예요.
짚을 가져다주면 소 여물 먹듯 해치워요. 희한한 놈이지요. 이러니 기르는 데 돈들 일이 별로 없지요.”
사육기간이 긴 것 또한 야생성 때문이다.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탓에 살이 빨리 찌지 않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집돼지에
비해 비계가 적고 육질이 좋다.
운동량이 많은 데다 청정지역에서 사육되니 구제역이나 콜레라와도 무관하고 그 외의 병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사골 증탕 엑기스, “무릎 연골에 좋다” 평
김구상 씨는 단순히 멧돼지고기를 공급하는 것에서 벗어나 분양도 하고 건강식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홈페이지(www.universalfarms21. com)나 전화(043-646-5888)를 통해서 신청하면 많게는 수십마리에서 적게는 한두
마리라도 분양한다.
“멧돼지 기르겠다는 양반은 찾아오기만 하면 교육도 시켜주고 좋은 놈으로 분양시켜줘요. 봄에 가장 많이 찾아오는데 하루에 열댓 명도 더 온
적이 있어요. 이 농장에 가 있으면 저 농장에서 오라 그러고 정말 바쁩니다.”
건강식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농원직영 식품가공소(02-535-6888)에서 제조, 판매하고 있다. 유명대학의 한의학 박사들에게 자문을 받은
결과, 멧돼지 사골에 건강 약재를 넣어서 증탕을 해서 먹으면 연골 생성에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김씨는 전했다.
“나이 먹은 분들이 무릎 때문에 고생하시는데 멧돼지고기를 먹으면 참 좋아요. 또 풍도 예방한다데요. 한의학 박사들이 동의보감에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또 연구결과도 그렇게 나왔다고 그럽디다.”
김씨의 충북 청풍 농장은 멧돼지사육에 관심이 있다거나 멧돼지를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이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잠시 들러 견학하는 코스로도 그만이다.
‘육지 속의 바다’ 충주호를 끼고 있고 명산으로 유명한 월악산이 지근거리에 있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