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아무런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경찰에 의해 정신적, 신체적 위협을 받는다면? 어디에 신고해야 할까요?
내가 찾은 답은 '경찰'이다.
경찰에게 위협받고 경찰에게 신고하는 코미디가 5월 2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덕수궁 근처의 큰길에서 벌어졌다. 관객도 주연도 모두 경찰과 시민이다.
광화문에서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나는 경찰들이 한 시민을 에워싸고 무언가 요구하는 모습을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목격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옆에 서서 사건의 개요를 들어보니 한 시민이 한 손에는 국화,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전경들이 단체로 다가와 촛불을 끄기를 요구했다. 그 시민은 거부했고 전경들은 계속하여 촛불을 끄기를 요구했다. 시민과 전경의 실랑이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 추이를 지켜보는 와중에 전경들은 기습적으로 시민에게 달려들어 촛불을 강제적으로 껐다.
그뿐 아니라 그 주변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던 몇몇 시민들에게까지도 기습적으로 다가가 모든 촛불을 껐다. 그 가운데는 여고생도 있었고 연로하신 어르신도 있었다.
내가 직접 촛불을 들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경찰들이 시민들에게 가한 압박은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시민이 길에서 개인적으로 촛불을 켜고 있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그런데 전경은 그들의 무기인 방패를 이용해서 시민을 밀면서 위협적으로 들고 있던 촛불을 껐다.
"법적 근거가 있습니까? 시민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왜 근거 없이 시민의 자유를 침해합니까?"
나는 반복해서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시민들과 전경들이 함께 격앙되어가는 와중에도 전경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촛불을 강제적으로 껐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위협감을 느낄 만큼의 충돌이 있었다. 여고생들은 굴하지 않고 촛불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전경들은 그 촛불을 끄려고 다시 압박해 와 시민들이 여고생들을 지키려고 전경과 충돌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공권력이 시민의 자유를 근거 없이 침해하고 있고, 그 주체가 경찰이라니...
전경들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집단으로 시민들을 위협하다니... 전경들이 그런 행동을 할 근거는 전혀 없었다.
내가 평소와 같은 퇴근길에 본 시민들의 동향은 전혀 폭력적이거나 반사회적이지 않았다.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집단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형태로 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여기저기서 전경들이 시민들의 촛불을 강제적으로 끄고 시민들이 반발하는 동안 나는 우리를 지켜줄 거라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았던 112에 신고 전화를 했다.
"제가 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위협을 받았습니다.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고 그 장소를 신고했다. 차마 경찰이 가해자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돌발적인 충돌이 이어졌다.
내 신고전화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고 나는 출동한 경찰에게 시민에게 근거 없이 위협적 행동을 가한 전경을 신고했다.
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에게 사건 정황을 설명하기도 전에 큰길을 가로막고 시민들과 대치하고 촛불을 끄던 중대가 상황을 파악한 듯 어디론가 급히 자리를 이동했고 그 자리를 새로운 중대가 메웠다. 내가 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과 자리를 급히 피하는 중대를 따라가며 소속을 밝히라고 요구했으나 금방 시민들에게 달려들어 촛불을 끄던 기개는 어디로 갔는지 다들 급하게 시선을 피하며 이동하느라 바뻤다. 이젠 시민들이 촛불을 켜는 것을 인정해주겠지 하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이 되돌아가자 정말 믿을 수 없게도 경찰에 의한 시민들의 촛불 꺼뜨리기가 곧 재개되었다. 조금 전 행동과 같은 방식으로...
상황의 시작부터 지켜보고 그 현장에 있었던 시민으로서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 있던 분에게 촛불을 얻어 경찰들 앞에 섰다. 혼자서는 무서웠다. 다행히 다수의 시민들이 함께 있었고 몇 명의 언론사 기자들도 주위에 있었다.
"자! 제 촛불도 끄실 건가요? 근거는 어디있습니까? 설마 기자분들이 계신데 근거 없이 탄압하실 수는 없으시겠죠? 왜 근거 없이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십니까?"
목소리를 높였을 때 경찰 중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만약 근거가 있었더라면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논리적으로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에게 설명했더라면 타당한 이유라면 시민들은 이해했을 텐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촛불은 꺼뜨려지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초가 작아져서 더 이상 들고 있을 수 없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자리를 떠나면 다시 재개될 촛불 꺼뜨리기를 막고 싶었다. 내 뒤에 경찰들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촛불을 든 내 앞으로 가벼운 표정으로 촛불을 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아마 그 사람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냥 촛불을 들고 걷기 위해 오늘 많은 시민들이 경찰들과 대치하고 몸싸움을 벌였다는 것을...
거리는 평화로웠다. 경찰이 있건 없건 사람들은 질서를 지키며 아무런 충돌이나 문제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가끔은 촛불을 들고...
오히려 혼란을 부른 것은 경찰이었다.
이것은 작은 자유다. 촛불을 켜고 거리를 걸을 자유.
하지만 이 작은 자유가 위협받을 때 훗날 더 큰 자유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는 것은 괜한 걱정이 아니다.
그리고 현 정권은 국민들과의 소통을 무시한 채, 권력의 이름으로 너무 많은 것을 제한하려 한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마음은 떠날 수 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님, 대한민국을 사랑하신다면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세요!
상식이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에 가슴 깊이 애도를 표합니다. 오늘의 촛불은 당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편집자주]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 조사에 의하면 촛불과 관련해 충돌이 있었던 전경은 서울지방경찰청 1기동단 김포지구대 1016중대로 밝혀졌다. 단순하게 촛불하나 든다고 해서 막아나선 경찰의 행동은 덕수궁 분향소 주변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이다. 분향소에서 벗어나 서울시의회 건물 앞부터 경찰은 반사적으로 막고 나서는 이러한 행동은 1016중대 단독으로 벌린 일이 아니고 윗선의 지시에 의한 행동이라고 보이지만 그 윗선의 생각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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