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초등학교 야구부에서 또 다시 집단 구타 사건이 발생했다. 전지훈련 시합에 졌다는 이유로 코치는 10살 남짓한 어린 선수들을 야구방망이로 구타했다. 선수 폭행으로 징계를 받았던 대학농구 감독이 한 달 만에 또 폭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학원 스포츠계의 폭력은 왜 끊임이 없을까.
10명 중 8명이 폭행 경험
학원 스포츠계의 폭력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지 몇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야구부 구타 사건은 이 같은 현실을 확인시켜주는 단적인 사례다. 나이 어린 선수들은 훈련기간 내내 코치로부터 구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어린 선수들은 야구를 포기하고 전학을 가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극한 상황에 몰렸다.
올해 초 자신이 지도하는 모 대학 농구부 선수들에게 폭력을 가해 지난 2월 대학농구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받았던 감독이 징계 한 달 만에 또 선수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은 폭력의 고리가 쉽게 끊기 힘든 속성이 있음을 드러낸다. 그는 지난 3월 말 부산 경남지역의 고교 농구단 연습경기를 관람하던 중 평소 자신과 친분이 있던 모 고교 선수단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로 선수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중 고교 학생선수들 인권 실태의 심각성은 사실 오래전부터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으며, 1년여전부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지만 근본적 해결이 요원한 상황이다. 작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중 고교 학생선수 1000여명을 상대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78.8% 폭력 경험했고 63.8% 성폭력 피해 겪은 상황이다. 폭력 경험 학생 56.4% “운동 그만두고 싶다”고 고백했으며 나이 어린 학생이 “하루도 맞지 않은 날이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같이 매일 폭력을 경험하는 학생 또한 5%나 되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시민단체 강력한 처벌 요구
시민단체는 이 같은 실태를 비판하며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문화연대는 “선수들의 고백이 알려지게 되는 과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언제나 한동안 감춰져 있다가, 언론에 의해 뒤늦게 발각되고, 관련 협회의 유감표명과 자정노력을 발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된다”며, “한국 스포츠계가 인권유린의 독보적인 장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지경이다”고 성명서를 냈다.
문화연대는 또한, “이번 집단 구타 사건처럼 선수들의 꿈과 행복을 철저하게 짓밟은 가해자들에게 대해 단호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1차적으로 해당 학교 운동부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가해자에 대한 영구제명과 법적인 처벌이 강제돼야 한다는 것. 시민단체들은 폭력을 행사한 코치에 대해 서약서와 사직서를 받는 수준으로 사건을 무마하는 형태를 경계하고 있다. 문화연대는 “이러한 안일하고 미온적인 대처로 인해, 폭력의 가해자가 아무런 반성 없이 다른 학교로 옮겨가서 또 다시 폭력을 행사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재현되었던 경우도 허다하다”며, “그렇기에 폭력의 가해자에 대한 영구제명과 법적인 처벌과 같은 단호한 조치가 내려지지 않는다면, 한국 스포츠계에 만연한 반인권적인 폭력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학교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해당 학교장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
성적 제일 주의가 폭력으로 연결
스포츠계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잇따른 사건들은 학생선수 인권 관련 정책이 미흡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 선수들이 기본적인 수업도 받지 못하는 점을 고려해 최저학업기준을 인정하는 제도를 만들고 수업 결손을 금지하는 등의 기초적 안건은 물론, 감독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행사하게 하고 경쟁의 극단으로 내모는 체육특기자제도와 전국 체육대회를 개선하고 합숙소 시스템을 바꾸는 등의 정책적 진보가 요구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체육특기자제도와 전국소년체육대회 제도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1970년대식으로 만들어진 제도가 계승되면서 경쟁을 심화시키는 스포츠계의 관행이 굳어졌고, 이 결과 폭행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권위는 “1972년 도입된 체육특기자제도는 상급학교 진학 요건으로 학업적 성취 기준(academic achievement)을 배제하고 오로지 경기 성적만을 요구함으로써 대다수 학생운동선수들로 하여금 학업을 포기하고 오직 운동에만 매달리게 하는 현 엘리트 위주 학원스포츠 정책의 핵심 기제로 비판받아 왔다”며 시스템의 변화를 촉구했다. 최근 국회의 ‘학교체육법’ 제정안에 관한 공청회에서도 다수 국회의원들은 학원스포츠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체육특기자제도를 비롯한 입시 제도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1972년 전국체육대회에서 분리돼 초등부와 중등부 학생들이 참가하는 전국소년체육대회는 초등학생들까지 전국 단위 메달 경쟁에 편입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대회 준비 과정의 시합 및 전지훈련으로 인한 수업결손 문제가 심각해 학생선수 학습권 침해의 주요원인 중 하나로 비판받아 왔고, 이 과정에서 폭력과 성폭력의 개연성도 높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실제로 2004년 충남 지역 소년체전 수영 대표팀 코치의 학생선수 다수의 성폭행 사건이 전지훈련 숙소에서 발생 등 폭행의 온상이 돼 왔다.
무엇보다도 스포츠계 전체가 인권에 무감한 인식부터 바꿔야 ‘자멸’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문화연대는 “성적이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인식의 타파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며,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관련 협회는 한국 스포츠계가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장이 된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자성하고, 변화하기 바란다. 이것만이 한국 스포츠계에 만연한 반인권적 폭력 사태를 근절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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