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세계 어느 곳 어느 전쟁기록에도 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북한 인민군과 국군·경찰 등 좌·우세력에 의해 번갈아 가며 집단으로 학살되는 전쟁의 참상으로 기록되고 있다.
좌우익 세력의 구분 없이 만삭의 임산부를 비롯해 젖먹이 유아와 노인, 장애인 등 지역주민들을 무차별적이고 잔인하게 살해하였으며, 일가족이 한꺼번에 희생되거나 집 안의 노인과 장애인들이 불에 타 죽는 등 전쟁의 잔혹성을 보여주었다.
한국전쟁기에 지역 주민들이 점령세력에 따라 번갈아 희생된 경우는 당시 전국적인 현상이었고, 좌우대립이 심하지 않았던 화순지역에서도 수많은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는데, 이는 전쟁으로 인해 이성을 잃은 잔인한 현실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로 보여진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아래 진실화해위)가 '화순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및 강제연행사건'을 조사한 결과, 1950년 8월부터 1952년 4월까지 전남 화순군 남면, 북면 등 화순지역 주민들이 인민군, 빨치산, 지방좌익 등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되거나 강제연행 된 사실을 확인했다.
진실화해위는 공보처의 <6·25사변피살자명부>, 미(美)전쟁범죄조사단의
화순군에서 발생한 사건 대부분은 인민군이 퇴각하던 1950년 9월 말부터 1952년 4월까지 치안이 확보되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발생했는데, 화순지역은 전라남도 각 지역으로 연결되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당시 빨치산 총사령부가 있던 백아산을 비롯해 모후산, 화악산에 거점을 둔 빨치산들이 지서나 초소를 습격하거나 전주·전선 절단, 철로 폭파 등 무장유격투쟁을 잇따라 벌였다.
특히 화순읍, 동복면 등지에서는 빨치산들의 야간 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경찰의 지시로 경찰초서에서 보초를 서던 마을주민들이 빨치산의 기습으로 희생되는가 하면, 빨치산에 의한 전주·전선 절단 피해가 심해지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야경을 돌던 주민이 빨치산에 의해 죽창에 찔려 살해됐다.
또한 군·경, 면장 등 공무원 가족이거나 우익인사,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이유 등으로 화순지역 주민들을 학살하였으며, 남면, 북면, 도암면 등지에서는 지방좌익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되는 등 가족단위 희생이 다수 발생했는데 희생자들은 유아, 여성, 노인, 심지어는 임산부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살해하였다.
이 가운데 도암면 호암리 강 씨 일가의 경우 공무원 가족이라는 이유로 10살 미만의 어린이 8명과 여성 6명을 포함 일가족 19명이 한꺼번에 희생되기도 했다.
1950년 9월 인민군과 정치보위부원들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퇴각을 앞두고 광주형무소와 화순내무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던 경찰, 한청단원, 공무원, 주민 등 수십 명을 화순출신 일부를 선별해 석방을 해준다며 화순정치보위부로 끌고 간 뒤, 화순내무서 유치장 수감자들과 함께 화순읍 교리 화순저수지에서 총격을 가해 살해했다.
또한, 춘양면에서는 병력과 군수물자 수송을 차단하기 위한 매복기습 작전을 벌이던 빨치산에 의해 열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여 열차에 타고 있던 주민이 희생되었으며, 도곡면 쌍옥리 주민 1명이 지방좌익에 의해 강제연행 된 이후 행방불명되기도 함
조사 결과 강제연행 1명을 포함 총 143명의 신원을 확인했으나,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았거나, 일가족이 몰살된 경우, 유족이 타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이는 최소한의 희생자 수로 판단되고 있다.
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전쟁의 참극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제물로 희생시키고, 공동체 사회를 갈등과 대립으로 몰아 이유 없이 서로 죽이고 죽는 야만사회를 조성한다"며 "전쟁시기는 누구라도 인간이성을 잃고 잔인한 살육전에 가담케 하는 또 다른 폐해를 낳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에 대해 국가가 위령사업 지원과 가족관계등록부 등 관련 기록을 정정할 것과 한국전쟁 당시의 지역사를 바르게 기술하고 교육기관을 통해 이를 교육할 것 등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