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아난드 샤르마 인도 상공장관이 지난 7일 오전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에 정식 서명했다. 이로써 인도는 우리의 경제성장을 모델로 커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한국은 12억 인도 시장의 수출길이 열리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체결과 관련해 “이번 CEPA 체결은 경제뿐 아니라 문화, 인적교류 등 양국간 전반적 관계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 통하였도다’
한국과 인도는 상호 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인 자유무역협정(FTA) 대신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실질적으로 FTA와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인도측의 상황을 배려해 표현을 달리 쓰고 있을 뿐이다. 이런 배경에는 인도의 자국내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 여론을 우려한 정치적 판단이 깔려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인도의 경우 상품시장에서의 열세로 서비스와 투자 등의 포함을 강조하는 CEPA 용어를 선호한다”며 “FTA 하면 자국 산업들이 상품시장의 관세가 집중적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인상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2003년 태국과의 FTA 기본합의서 체결 후 일부 품목을 먼저 개방하는 선자유화 조치를 단행했다가 심각한 후유증을 겪은 적이 있다.
이번 한·인도 CEPA 협정은 중국, 일본에 앞서 신흥 경제대국인 브릭스(BRICs) 국가 중 인도와 처음으로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어서 선점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인도는 11억5000만명 세계 2위의 인구와 구매력 기준 세계 4위의 국내총생산(GDP)을 자랑하고 있다.
한·인도 CEPA 협상 수석대표인 최경림 FTA 정책국장은 “인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라며 “인도 시장에서 일본, 중국보다 더 빨리 특혜를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칠레 등에 이은 6번째 FTA 서명이자 신흥 경제국인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와는 처음으로, 앞으로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인도에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것이라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 샤르마 장관은 주요 경제국 중 한국을 첫 무역협정 체결국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의 경제 성장과 인도와의 상호 보완적인 경제 잠재력이 크고 그동안 한국 정부와 한국 산업계가 인도에 보여준 노력과 투자 증대의 결실"이라고 설명했다.
한·인 양국은 이번 협정을 체결한 것에 대해 ‘역사적 인연’과 관련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과 인도 모두 과거 식민지였다가 비슷한 시기에 독립했고 독립기념일도 8월15일로 같다는 점이다.
단기적 효과보다 장기적 포석에 중점
한·인도 간 CEPA 협정은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타결한 기존 자유무역협정(FTA)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합의다. 협정문만 놓고 보면 표면상으론 인도쪽이 유리한 게 사실이다. 인도는 한국산 수입품의 71.7%에 대해 관세장벽을 완전히 없애기로 한 반면 한국은 인도산의 88.6%나 포함시켰다. 철폐기간도 인도에 유리하다. 인도는 3.9%의 품목만 협정 발효 즉시 없애면 되지만 한국은 당장 관세를 없애야 할 품목이 60.6%에 달한다.
다른 FTA에 비하면 개방폭이 좁고 속도가 느린 것도 불리하게 보일 수 있다. 우리 수출품 가운데 완성차 등은 아예 양허(개방) 대상에서 빠졌고, 냉장고·컬러TV 등은 8~10년내 50%만 감축된다. 수입품목 가운데는 쇠고기·돼지고기 등 농수산물과 직물 등 민감 품목이 일찌감치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인도와의 협정은 단순히 ‘숫자’로만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단기적 효과보다 장기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일단은 인도가 세계 인구 2위로 12억의 인구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의 거대시장이라는 가능성만 가지고도 모든 설명이 된다. 한국은 12억 인구 시장을 교두보로 확보하게 됐고 이미 인도시장에서 경합중인 일본과 중국, EU 제품에 비해 경쟁력도 강화될 전망이다.
인도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의 첫 무역협정 체결했다는 의미 외에도, 자국의 강점인 서비스 전문직 인력 이동을 이뤄냈다는 성과로 장기적으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한편 양국은 2006년 3월 협상을 시작해 지난해 9월 제12차 협상에서 타결을 선언했으며 법률검토 작업을 거쳐 올해 2월 뉴델리에서 가서명을 마쳤다. 우리 측은 9월 정기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쳐 내년 1월 협정 발효를 추진할 계획이다. 인도는 최근 내각에서 비준안을 승인했으며 별도의 의회 비준 절차는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