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조오현 지음/ 아름다운 인연 펴냄/ 9,800원 |
“인생은 여행과 같다고 했는데 그 종착역인 죽음이 온다면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죽음은 죽음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부는 꽃이 될 것이고, 일부는 나무가 될 것 같아요.”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대화다. 우리시대의 거장 신경림이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 오현스님을 설악산에서 만나 인생과 문학, 종교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눴다. 이 책은 여행 사랑 환경 욕망 통일 전쟁 문학이라는 7개의 주제로 나눠 두 사람의 성찰과 교감의 대화를 담았다.
인생에 대한 통찰력
날카로운 통찰력과 메시지를 담아내면서도 어려운 용어나 지적 허영심을 철저히 배제해 난해하거나 지루한 느낌이 없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서문에서 신경림 시인은 “적어도 이 만남이 말장난으로 끝나지 않는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의 소리인 점만은 크게 내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만남은 사변으로 그치지 않고 주제는 묵직하지만 전달하는 방식은 이론이나 주장이 아닌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온 자의 연륜이다.
특히 허심탄회한 일화들이 풍부해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시인의 아버와의 관계, 짝사랑, 술값을 벌기 위해 치기로 부른 노래 때문에 감옥에 가야 했던 이야기나 스님의 상식을 뒤집는 거리낌없는 삶과 출가, 사랑 이야기, 문둥이 부부를 따라 다녔던 일화 등은 하나 하나가 한 편의 문학 작품을 보는 듯 흥미롭다.
속세의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
시인과 스님의 의견이 치열하게 대립되기도 하지만 동등한 입장에서 합일점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를테면 환경문제에 대해 오현 스님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자연이 무너지면 결국 인간도 살 수가 없습니다”고 말한다. 반면, 신경림 시인은 “자연이 개발되기 이전의 삶이 무조건 행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고 주장한다. 결국 “개발이 불가피하더라도 자연치유력을 넘어서는 것은 조심해야한다”는 것으로 대립된 의견은 승화된 결론을 얻는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 떠나고 안락에서 떠나고 상식에서 떠나는 것’ ‘공존하지 않으면 결국 다 빼앗기게 된다’ ‘전쟁은 어떤 경우라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등 속세의 복잡한 질문에 대해 두 사람은 명쾌한 해답을 도출해 낸다.
불교적 깊이와 문학적 흥취가 어우러진 두 사람의 대화는 삶의 연륜을 동반하고 깊이와 순수함을 간직한 ‘무욕의 법문’과도 같다. 이 법문은 교과서적인 틀에 박힌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상식을 깨며 진리에 접근해 가는 방식이 이런 류의 책이 빠지기 쉬운 공허함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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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