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씨앗을 곡식으로 만들어내는 창조적 행위다. 농업의 과정과 결과는 아름답다. 농업인은 곧 예술인이다” 이것이 바로 테마공원 ‘율봄예원(율봄농업예술원)’의 철학이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 삼거리 산자락을 끼고 자리한 ‘율봄예원’은 농업과 예술이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농원이다. 1만평 정도로 규모도 크지 않고, 그 흔한 음식점도 카페도 없다. 시골 외할머니집 같은 정겨움, 자연과 인공 사이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율봄예원’의 매력이다.
관람과 휴식, 학습 개념 어우러져
여름에 꽃이 피는 어리연. 여러해살이 수초로 식용, 약용에 쓰인다. |
농업 예술가 최후범-허금순 씨 부부가 직접 설계하고 구상해서 만든 이 예원은 전체 구조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개인이 제작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형미가 탁월하다. 허씨가 야생화를 가꾸고 최씨가 주로 가공한다. 허씨는 “남편이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최씨의 미학은 자연에서 나온다. “버려진 것, 생활 속의 것들을 모아서 만든다. 일상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자연친화적인 가공으로 은은한 분위기지만 알록달록한 야생화에 울창한 수목은 화려하다. 약 700여종의 식물이 있는데 주인은 식물 하나 하나의 특징을 꿰뚫고 있다. 기억력을 신기해하니 허씨는 “관심이 있으면 다 알게 된다”고 말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는 원리다.
‘율봄예원’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은 분재다. 분재 분야를 맡고 있는 김석주 씨는 한국 최고의 분재전문가다. 그의 분재는 예술적 독창성과 거장의 경지를 오롯이 품고 있어 문외한이라도 깊이에 취한다.
야생화 정원, 정크 미술관, 분재 전시관 등 테마별로 공간이 구성돼 있고, 산책길과 계곡 등 휴식을 취할 공간이 곁들여져 있다. 도시락 싸들고 와서 여유 있게 관람하며 자연을 만끽하기에 알맞다. 허씨는 “한여름에 계곡에 발 담그고 돗자리 깔아 낮잠도 자고 책도 읽으면서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면 좋으련만 대부분 바쁘고 무언가에 쫓기고 급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여름 야생화 패랭이가 한창이다. | 경기도 광주시에서 가장 수질이 좋다고 평가받은 지하수. 물맛이 정말 좋다. | 진백 분재. 수준 높은 분재 작품 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
예쁜 농업은 사치다?
솔방울바위솔(왼쪽)과 애기기린초로 만든 작품. 깨어진 도자기 등 일상에서 버려진 폐품들을 활용해 멋스러우면서도 정겹다. |
‘율곡예원’은 진행중이다. 최씨 머릿속에는 무궁무진한 아이템이 들어있다. 최씨는 “요즘 아이들은 벼를 ‘쌀나무’라고 하지 않나. 더 많은 종의 식물을 꾸준히 구비해 농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세대에게 학습의 장이 되고 싶다” 말했다.
하지만 자칭 농사꾼인 최씨-허씨 부부는 홍보나 상업적 운영능력은 부족해 자금이 바닥난 상태다. 최씨는 “대를 이어 천천히 하나씩 만들어 가면 된다”며 농사꾼다운 끈기를 보였지만, 허씨는 “돈벌려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보는 농업’에 대한 인식 부족 세태다. 2001년 사비를 털어 부부가 손수 가꾸고 돌탑을 쌓고 다듬어 예원을 개장했지만 관공서의 포크레인이 싹 뒤엎어버렸다. 농업이 아니라 사치라는 것. 그린벨트에 상수도보호지역이라 농업 외에는 금지 돼 있었다. 아름다운 농업은 농업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은 부부가 넘기 힘든 단단한 벽이었다. 하지만, 부부는 다시 일어섰다. 구름다리 연못 등 시각적 자극적인 볼거리는 포기했다. 농업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 하우스를 설치했다. 허씨는 “하우스는 환경에도 안 좋다. 하지만 이걸 설치해야 농업이라고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입장료 3,000원을 아까워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모두 농업과 예술에 대한 인식 부족 탓이다. 허씨는 “이 예쁜 꽃과 나무들보고 그늘에 앉아 하늘 한 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3,000원어치는 충분히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시인들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마시는 하루 저녁 술값, 사우나비, 영화관람료 등에 비한다면 3,000원은 싸다. 휴일에는 야생화 강좌, 계절별 체험행사 등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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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