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되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는 등 남북관계가 온화하게 풀리던 가운데 지난달 27일 강동림 씨가 월북한 사건에 이어 남북 해군사이에 교전까지 벌어져 남북관계가 또다시 냉각 국면으로 돌아가지 않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발표에 의하면 지난 10일 오전 11시 27분 북한 경비정이 서해 대청도 동쪽 11.3㎞에서 북방한계선(NLL)을 2.2㎞ 넘어오자 월선을 전후해 모두 네 차례 ‘북상하라’는 경고 통신을 했으나 무시하여 남한 고속정이 11시 32분 ‘경고사격을 하겠다’는 경고 통신을 한 뒤 교전규칙에 따라 11시 36분 북한 경비정 1㎞ 앞쪽에 함포로 경고사격을 했다.
북한 경비정은 오전 11시 37분 3㎞가량 떨어져 있던 남한 고속정을 향해 50여발의 ‘조준사격’을 했으며, 남한 고속정은 40㎜ 함포 등 200여발로 반격했다. 11시 39분까지 2분 동안 교전이 벌어졌으며 남한 고속정은 왼쪽 함교와 조타실 사이 외부 벽에 15발정도 맞았으나 인명과 장비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북한 경비정은 반파되어 11시 40분에 NLL을 넘어 북쪽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으로 합참은 전군에 대북경계태세 강화를 하달했고 접적지역을 책임지는 여단장과 함대사령관, 비행단장급 이상 지휘관을 책임지역 내에 정위치하도록 하고 우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즉각 대응태세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지난 15일 오후에는 북한군의 해안포 레이더가 작동한 사실이 포착되어 군 당국이 대청도 항에 정박해 있던 구축함을 사정거리 밖으로 급히 옮기는 등 한 때 비상이 걸리기도 했으나 국방부는 “최근까지 서해 NLL 해상에서의 북한군은 서해 접적해역에서 근무를 강화하고 있지만 추가 도발과 관련한 특이징후는 식별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국방부 김태영 장관은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렸던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 서해교전에 대해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무게를 실어 발표했다.
반면 북한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4시간여 만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이름으로 “우리(북한) 해군 경비정이 영해에 침입한 불명 목표를 확인하기 위해 긴급기동했다가 목표를 확인하고 귀대하고 있을 때 남한 해군함들이 우리(북한) 해군 경비정을 뒤따르며 발포하는 등 엄중한 도발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며 우리 군 당국에 ‘사죄’와 재발 방지를 위한 ‘책임 있는 조처’를 요구했다.
또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2일 논평에서도 “이번 무장충돌은 단순한 우발적 사건인 것이 아니라 조선반도의 긴장격화를 노리는 남조선 군부의 고의적이며 계획적인 도발행위”라며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고, 다음날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 대표단장 명의의 통지문에서도 “서해에는 오직 우리(북한)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 있다”며 “지금 이 시각부터 그것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지난 17일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앞으로도 우리는 북남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면서 “북남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조국통일을 위한 선결조건이고 민족문제 해결의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교전 뒤 맹비난해오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온화한 입장으로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북한의 입장이 온화하게 바뀐 점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있으며 이번 교전이 우발적 충돌인지, 의도적 도발인지에 대해서도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북한 경비정이 남하할 때 근처엔 중국 어선들이 조업중이어서 중국 어선들의 불법 어로 행위를 단속하다 넘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일단 정운찬 국무총리를 통해 도발이 아닌 우발적 충돌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단 한 척의 배로 도발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예전과 달리 경고방송에도 북한 경비정이 계속 남하해 의도적 도발에 대해서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이 서해에서 교전한 것은 1999년 6월 15일과 2002년 6월 29일에 이어 세 번째로 7년여만이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앞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고자 당시 청와대 행정관을 비롯한 3명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를 만나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총풍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현재 정치적 상황으로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
대북 전문가들은 우리측에 피해를 가하기 위해 도발했다기보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상태를 상기시켜 미국측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성격으로 보고 있다. 이들 분석가는 북한이 북미대화를 앞두고 느슨해질 수 있는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고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군부의 조치라고 파악하면서 북미 사이 평화협정의 시급성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의도된 도발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서해교전 사태가 장기화하거나 남북관계가 완전한 경색국면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긴박한 서해와는 달리 10월 남북교역 규모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증가하고 북한 물품의 반입 규모는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입장도 남북 교류·협력을 현재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 16일 오전 9시에는 인천 내항 1부두에 북한 화물선 ‘금빛호’가 입항했고, 매주 금요일 정기적으로 의류 원자재와 북한 구호물자 등을 싣고 남한과 북한을 오가는 정기화물선 ‘트레이드포춘(TRADE FORTUNE)’호가 예정대로 북한을 출발했다. 인천~남포항로는 개설 뒤 8년동안 단 한 번도 운항을 중단한 적이 없다. 지난 2002년 서해교전 때도 서해는 긴박감이 흘렀지만 동해에서는 금강산 관광객을 실은 ‘금강호’가 운항된 바 있어 정부는 통일부 천해성 대변인을 통해 “방북 인원 최소화 등 남북 교류협력에 인위적인 조정을 가하는 조치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교전으로 대북 옥수수 지원이 또다시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옥수수 1만t은 당국 차원의 대규모 지원이 아닌 적십자사 차원의 소규모 지원인 만큼 서해교전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실무적으로 이미 이뤄졌어야 할 옥수수 인수ㆍ인계 관련 남북 접촉이 이번 서해교전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북한에 옥수수 1만t 지원 계획을 통보한 지 오래됐으나 북한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북한이 애초부터 남한의 지원 품목과 규모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서해교전이 발생하자 침묵하고 있고, 정부도 인수ㆍ인계를 위한 추가 연락관 접촉을 미루고 있다. 월북사건과 서해교전으로 남북관계가 껄끄러워져 북미대화와는 관계없이 남과 북의 원활한 관계 유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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