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평단은 ‘빈집’에 대해 사랑과 고독에 대한 아름다운 시라고 찬사했다. 김기덕은 2000년 ‘섬’부터 꾸준히 유럽평단의 사랑을 받아온 감독이었다. 특히 베니스는 김기덕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여 왔다. ‘섬’과 ‘수취인불명’을 연이어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했고, 세 번째 베니스 행에서 김기덕은 드디어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의 한 쪽 손에는 이미 지난 2월 ‘사마리아’로 받은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이 쥐어져 있었다.
절제된 대사, 담백한 시적 판타지
태석(재희)은 오토바이를 타고 집집을 돌며 열쇠구멍에 전단지를 붙인다. 그리고 오랫동안 전단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은 집을 열고 들어가 얼마간을 살고 나온다. 그렇게 살아가던 태석은 어느 빈 집에서 멍투성이의 한 여자를 만난다. 전직 누드모델인 그녀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대학교수 남편의 학대로 인해 피폐해진채로 유령처럼 살아가는 선화(이승연)다. 태석은 남편의 손에서 선화를 구해 도망친다. 두 사람은 빈 집을 찾아다니며 해방감과 사랑을 맛본다. 행복한 시간도 잠시, 갑자기 들이닥친 집주인에 의해 무단 가택 침입죄로 그들은 경찰에 연행되고 선화는 태석의 남편 손에 이끌려 집으로 끌려간다. 감옥에 갇힌 태석은 누군가의 등 뒤의 180도에 숨어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유령연습을 한다. 출감한 태석은 선화의 남편 뒤에 숨어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김기덕 감독의 11번째 작품인 ‘빈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부터 폭력적이고 마초적인 세계와 결별한 김기덕의 변화된 작품 세계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김기덕의 변화는 없다. 여전히 그는 최대한 대사를 절제하고, 리얼리즘을 훼손하며, 시적 판타지를 펼치는데 주력한다. 폭력과 억압 속에서 소외받은 영혼과 구원은 변함없이 그의 영화를 간통하는 주제다. 여성성 왜곡 논란에 휩싸여왔던 김기덕은 ‘빈집’에서 남편의 뺨을 때리는 여주인공의 적극적 제스처를 넣기까지 했다. 물론 그렇다고 여성 캐릭터가 능동적으로 변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섬세한 감정 표현과 자극적 묘사를 배제한 담백한 미학적 정서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을 덮어주는 편에 가깝다.
유머인지 은유인지
김기덕 영화 중에서는 비교적 편안히 볼 수 있는 작품이며, 상징이나 은유적 기법도 단순해서 난해하지는 않다. 이미지로 연결되는 영화적 기법은 여전하지만 강렬한 이미지의 전달 자체보다 내러티브의 연결에 더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대사가 없어도 지루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정체를 파악하기는 어려운데 그것은 황당한 판타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말을 해야 할 부분에도 굳이 입을 다물며,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들을 한다. 이를테면 여주인공이 모르는 집에 찾아가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소파에서 잠들었다 나가는 식이다. 이 같은 코믹한 상황을 김기덕은 진지하게 전달한다. 이것을 어떤 이는 김기덕식 유머라고도 하고, 어떤 관객은 시적 은유라고도 한다. 분명한 것은 인물들의 행동을 리얼리즘적인 논리성이 아니라 욕망의 논리성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쯤은 누구나 알 수 있는데 문제는 그 욕망의 논리가 그다지 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빈집’은 미국의 소니픽쳐스 클래식과 호주와 뉴질랜드의 홉스코치, 독일의 판도라, 이탈리아의 미카도, 프랑스의 프리티 픽쳐스, 스칸디나비아의 트라이언젤, 베네룩스의 브라이트 앤젤, 러시아의 인터시네마 아트, 스페인 지역의 알타 클래식 등에서 판권을 구입해 개봉전에 이미 수익을 남겼다. 판권을 구입한 곳은 대부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판권을 산 회사.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동양적 세계관이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상당한 관객을 이끌었다. 유럽 영화계에서 이미 자리매김한 김기덕의 파워가 흥행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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