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오히려 추모 받아야 하는 이들은 노무현이나 김대중이나 용산 철거민 열사들이 아닌 살아 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궁핍과 무지와 나약함인지도 모른다. 살아서도 도대체 살아 있다는 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그래서 어떤 우상이 필요한, 어떤 허위가 필요한, 어떤 감상이 필요한, 어떤 대리 만족이 필요한, 우리 시대 모든 이들의 죽음이 추모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죽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단지 자본에 충실한 일하는 기계로, 소비하는 기계로만 살아가는 우리들과 우리 시대에 대한 묵념, 우리 자신들에 대한 고별사인지도 모른다. _송경동(시인) 애도의 시간, 성찰의 시간을 준비하며
당대비평 기획위원회가 ‘당비의생각’ 3번째 책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으로 다시금 논쟁과 담론의 마당을 펼친다.
이 책은 독일출생‘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불온한’(?) 줄임말을 공유하던 386세대가 이제 40줄에 접어들어 40평대 아파트를 점유하는 ‘안온한’ 생애를 추구하는 2009년, 그 봄에서 여름까지 한국 사회에 불시에 충격적으로 찾아온 ‘누구에게나 기억되는 죽음’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을 제재로 불편하고도 불길한 질문을 던진다.
수많은 죽음을 에워싸고 진행된 한국의 민주주의 혹은 정치적 삶. ‘민주화’ 뒤 우리는 정치적인 죽음을 더 이상 전과 같은 열정 속에서 애도하지 못하고 빠르게 잊어버리거나 지워버렸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바로 그러한 죽음과 기억의 정치 동학을 보수 프레임과 ‘노빠’ 현상학으로부터 떨어져 면밀하고도 비판적으로로 성찰하고자 시도하였다.
죽음을 애도하는 일은 살아 있는 자들의 삶을 반성으로 이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분노할 때, 그것은 우리가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었던 믿음에 일격을 가하며, ‘우리’라는 공동체적 환상을 깨트린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삶의 간극
그것은 살아 있는 우리와 죽은 자 사이를 나누었던 삶의 간극을 확인하고 ‘정치적인 것’에 대한 물음으로 이끈다. 오늘 ‘우리’는 그런 애도의 정치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1년이 되어 가는 용산 참사를 둘러싸고 우리가 맞이하는 상황은 어떠한가. 용산 참사로 죽은 이들이 죽은 자들로 온전히 애도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의 죽음을 애도할 정치적인 공간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을 장례 치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뜻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죽음 이후 찾아온 애도와 우울증의 스펙터클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서 기획을 시작하였다. 처음 질문은 전국적인 ‘노무현 애도 현상’의 분석에서 시작하였으나 뒤이은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을 맞닥뜨리고서 기획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용산-노무현-김대중이라는 질문의 축과 폭을 다시금 구성하였다.
많은 이들이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을 구별하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러한 주장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일 수도 있다.
노무현의 죽음 뒤 국가기관의 공식적인 추모에서 자발적인 시민의 애도 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들과 많은 말들이 출현했다. ‘추모’라는 행위가 발휘하는 윤리적인 압력은 민주주의적 정치 공간이 가진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일 ‘성찰’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노무현은 한국 사회에서 매우 독특한 정치지도자였다. 서민 대통령, 비주류 대통령이라는 그의 배경과 활동 방식이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적 정치 비판을 억압한 요소란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항하는 주체’와 ‘민중’
민주주의적 투쟁을 스펙터클한 고발과 폭로, 즉 ‘원한’의 정치를 상연하는 무대로 굴절시킨 결과는 ‘저항의 정치’를 박탈하였다. 노무현의 죽음을 둘러싼 ‘애도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애도 이벤트 속에서 ‘지켜주지 못한’ 자신의 윤리적 타협을 용인하는 자기만족적인 환상에 머물렀다.
용산의 죽음이 애도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런 애도하는 주체의 정체성에 거슬리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주체의 형상은 무엇인가. 모두가 서민을 지향(?)하는 때에, 지금 ‘저항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민중’은 무엇이며, 정치적 주체의 형편은 어떠할까.
언제나 남은 것은 ‘법의 판단’이었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노무현에서 용산까지 법의 판단은 지긋지긋하게도 불공정했다. 언제나 정의를 이해관계의 각축으로 환원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2009년의 죽음은 법적 판단의 무력함을 증언하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법 자체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민 사회는 ‘불타는 몸들’을 빠르게 망각했다. ‘무관심’이라는 말이 더 적확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MB정부가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다. 시민들은 무관심했지만, 정부에 지지를 표하지도 않았다.
그 주검들은 어느 편에게도 ‘이미지의 힘’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토록 강렬했던 죽음의 이미지가 그토록 빠르게 망각 혹은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답변과 재질문을 담은 2편의 기획의 말과 10편의 비평, 2편의 시각 이미지 화보로 책을 꾸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당대의 날선 비평가들이 참여한 이 에세이와 이미지 사이에서 용산을 애도하는 목소리는 점차 상승하며, 노무현과 김대중에 대한 기억의 침식 작용을 잠시 멈춰 세운다. 가격은 14,000원 / 문의 : 02-3670-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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