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판타지가 필요하다. 크리스마스가 종교적 행사를 넘어서 세계인의 축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판타지적 요소 때문이다. 비 종교인에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집단 최면에 빠지는 로맨틱한 기념일 정도가 될 것이다. 넉넉한 웃음을 짓는 산타클로스, 빨강과 초록이 뒤섞인 호랑가시나무 장식, 선물을 기다리는 양말, 따뜻하게 타오르는 벽난로 등 크리스마스의 ‘상징’들은 모두 크리스마스의 마법에 빠지게 하는 주문인 셈이다. 그리고 이 주문은 12월이면 여러 가지 변주를 거쳐 크리스마스 상품으로 쏟아진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개봉하는 ‘폴라 익스프레스’도 이 같은 크리스마스 상품 중 하나다. 분위기를 달구는 캐롤이나 전구 장식이 황홀하게 반짝이는 트리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답게 만들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영화의 원작은 1985년에 첫 출간된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동명 동화로 이미 크리스마스의 상징물이 될 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정의롭고 따뜻한 백인 소년과 총명한 흑인 소녀. 내성적인 아웃사이더 같은 캐릭터에서부터 모험과 꿈의 세계라는 미국적 판타지, 그리고 사랑이나 신뢰 등의 교훈까지 이 동화는 전형적인 크리스마스용 작품의 특질을 보여준다. 영화 역시 그 동화적 세계를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겼다.
크리스마스 이브 북극으로 가는 특급열차를 타게 된 한 소년의 모험담을 담은 영화의 핵심 테마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만을 믿게 되고 그러면서 인생의 아름다운 일면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인데, 재미있게도 ‘폴라 익스프레스’는 이 주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게 만든다. 바로 이 상상의 세계를 눈으로 보는 시각의 향연이 이 영화의 실질적인 가치다. 크리스마스 카드나 동화의 삽화에서 본 듯한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생생한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에 앉는 행위 자체가 환상적인 북극 세계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과 같다.
영화제작의 신기원, 퍼포먼스 캡쳐 기법
‘폴라 익스프레스’는 헐리우드 최고 배우 톰 행크스가 원작 동화를 가지고 저메키스 감독을 찾아가면서 시작됐다. 감독은 동화의 삽화가 가진 아름다운 감성을 얼마나 재현해내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판단, 이를 위해 시각효과의 귀재인 제롬 첸과 켄 랠스턴 시각효과 감독에게 방법을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제시된 기법이 바로 배우의 실사 연기를 컴퓨터가 내장된 카메라로 디지털화시켜 가상 캐릭터의 청사진을 만드는 일명 ‘퍼포머스 캡쳐’라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퍼포먼스 캡쳐 작업의 핵심은 인간의 감정과 표정을 섬세하고 또렷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들이 입고 연기한 몸에 딱 맞는 다이버 복장 같은 수트에는 광반사 물질로 된 60개의 표식 장치가 달려있어서 배우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디지털 카메라에 전달시켜준다. 카메라가 각 동작들을 3차원 점들의 연결로 기록하면 이것이 가상 세계에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배우들의 미묘한 표정과 눈꺼풀의 떨림, 동작 하나하나까지 섬세히 잡아낼 수 있을 만큼 정교할 뿐만 아니라 360도 회전하는 디지털 카메라 시스템으로 배우 여러 명의 표정과 동작을 3차원적으로 동시에 기록할 수 있다.
퍼포먼스 캡쳐 기법은 원작의 세계를 생생히 화면에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캐릭터들의 연기에 현실성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또한 실사 속의 사물을 디지털화 시킬 수 있는 범위를 넓혀주었고 감독의 스토리텔링 선택권을 넓히며 영화촬영의 신기원을 연 기법이기도 하다. 기존의 영화 제작 방식에서는 촬영이 끝난 뒤 감독이 촬영된 샷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지만 퍼포먼스 캡쳐로 촬영한 경우에는 감독이 어느 때고 새로운 시각과 각도로 다시 장면을 구성할 장점이 있다. 모든 버츄얼 세트에는 모든 샷과 앵글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놀라운 기술적 진보가 있다 해도 작품성을 결정짓는 것은 연출력과 연기력인 점만은 변함없다. 상대역도 배경도 없이 상상력만으로 연기를 해야 했던 상황에서도 톰 행크스는 주인공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 차장, 떠돌이, 산타의 1인 5역을 훌륭히 소화했다. ‘포레스트 검프’ ‘죽어야 사는 여자’ ‘콘택트’ ‘왓 라이즈 비니스’ 등 헐리우드 공식을 바탕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수려한 영화적 솜씨를 자랑해왔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연출력도 빛난다. 기독교 문화권이 아닌 우리에게는 다소 이질적이거나 진부한 느낌은 있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북돋아줄 판타지로서 손색없는 작품이다.
왕년 히어로의 복귀 인크레더블 감독 : 브래드 버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의 무리들을 일망타진하는 세계 최강의 슈퍼 히어로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은퇴한지 벌써 15년. 이젠 ‘몸꽝'이 돼버려 초강력 허리띠조차 튕겨버리는 그에게 정체불명의 특명이 떨어진다. 그러나 특명을 내린 사람조차 알 수 없는 1급 비밀 작전, 출동할 곳도 본토와 아득히 떨어진 섬. 과연 평범한 시민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다시 빛나는 영웅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세상을 재패한 고독한 영웅 역도산 감독 : 송해성 1963년 12월 8일 자정 일본 동경의 거리. 빗길을 다급하게 달리는 차 안에는 일본 최고의 프로레슬러 역도산이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10분전, 클럽에서 술을 마시던 역도산은 누군가의 칼을 맞았다. 1950년 9월. 일본 대 스모협회에서는 거구의 스모 선수들과 임원들이 단 한명의 남자에게 쫓겨 다니고 있다. 의자를 휘두르며 덤벼드는 상투머리의 사내는 현재 스모 랭킹 3위 역도산이다. 순수 일본인이 아니면 스모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말에 난동을 부리는 중이다. 그는 이방인이다. |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